평포자가 많다는데
5주의 강습과 개인연습시간들. 물속에서 보낸 시간 수십 시간. 내 삶에서 하나의 운동을 단기간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한 종목. 그 결과로 얻은 종합선물세트는 바로 통증이다. 그야말로 온몸 구석구석 어디 하나 소홀하지 않게 다 아파온다. 그 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일단 통증은 두 부류로 구분할 수 있다. 어느 정도 감당하면서 수영을 할 수 있느냐? 이거 안 되겠군을 절감하며 잠시 쉬어야 하느냐?
첫 한 달은 첫 번째 부류의 통증들이었다. 왼쪽 어깨에 처음 찾아온 통증은 대수롭지 않았다. 물속에서 수영하면 하나도 아프지 않았으니까. 두 번째 찾아온 것은 오른쪽 어깨 통증. 이 역시 심하지 않았다. 그냥 좀 쑤시고 뻐근한 느낌. 수영하는 데는 별 무리가 없었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통증은 점점 완화되었다. 다리는 그간 빠른 걷기와 러닝, 그리고 등산으로 단련되어 아프지 않았다.
어쩌면 다시 자유영과 배영을 할 수 있게 된 나에게 꽤나 순조로운 출발이었다. 하지만 고난은 언제나 자신만의 때가 있는 법. 한 달이 꼬박 지나고 12월 첫째 주 월요일 강습에 강사는 배영까지 할 수 있는 몇몇에게 평영 발차기를 지도했다. 평영 발차기는 자유영과 배영 발차기와는 완전히 달랐다. 먼저 무릎을 가까이 붙이고 천천히 접어 엉덩이까지 다리를 접어 올린 다음 발목을 바깥쪽으로 꺾는다. 그 자세로 양 다리를 빠른 속도로 둥글게 외회전하며 물을 잡으면서 엄지발가락 끝이 서로 닿을 정도로 쭉 뻗어 글라이딩 한다. 이론은 빠삭하다. 수도 없이 영상을 봐온 덕분에 선명하게 눈앞에 그려진다.
허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는 좀체 좁혀지지 않는다. 다리를 엉덩이 쪽으로 접을 때마다 몸은 자꾸 아래로 기운다. 초보연습자가 쉽게 범하는 실수다. 연습이 끝나고 물 밖으로 나오니 평소보다 몇배의 중력이 느껴진다.
다음 날, 허벅지 안쪽 근육이 몹시 욱신거린다. 허벅지 앞쪽과 뒤쪽에는 종종 근육통을 겪어봤지만 안쪽이라니... 처음 겪어보는 위치다. 그래도 뭐 연습이 불가능하진 않았다. 다리를 쓰지 못할 지경은 아니니까. 화요일에도 발차기 연습은 계속됐고 사타구니 근육통은 배가되었지만 감당할 수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수요일 강습이 끝난 이후 남아서 개인연습할 때 유튜브에서 본 대로 팔동작을 홀로 연습하고 평영 콤비네이션에 도전에 보았다. 팔동작을 하면서 상체를 들어 올리고 모은 팔을 물 밑으로 쭉 뻗어 상체가 함께 들어가면서 무릎을 접어 올리고 발동작을 이어서 해야 하는데... 현실에서 내 상체는 겨우 머리만 나오고 다리는 가라앉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1시간 30분을 더 연습했다. 최장의 연습시간이다. 물밖에 나오니 숨은 차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점심을 챙겨 먹고 집에서 근거리 초등학교 놀이수업을 진행하기 위해 걸어가는데 갑자기 숨이 차고 왼쪽 가슴 부위에 통증이 느껴졌다. 길을 멈추고 벤치에 앉아 잠깐 쉬니 통증이 경감되고 호흡도 돌아왔다. 일어나 걷자 얼마 안 되어 다시 가슴 통증이 느껴지고 숨이 가빠졌다. 수업시작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마음이 조급하니 더 불안했다. 내 머릿속은 별의별 상상으로 복잡해졌다.
먼저 콜택시를 부른 다음, 학교 담당자에게 바로 연락해서 병원에 급히 가야 할 상황이라며 결강을 알렸다. 택시가 도착해서 가까운 종합병원을 향했다. 택시에서도 통증이 계속됐는데 신기하게도 병원에 도착하니 통증이 씻은듯이 나아졌다. 내과 전문의에게 내 상태를 설명하자 청진기를 대보더니 일단 엑스레이와 심전도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검사를 마치고 다시 진료실에 들어갔을 때, 의사는 심전도검사 결과지를 보며 말했다.
"심장이 젊네요. 운동을 아주 많이 한 사람의 심장으로 보입니다. 심장에는 이상이 없어요. 엑스레이 상에서도 심장과 폐에 아무런 문제가 보이지 않아요. 최근 수영을 많이 하셨다고 하니 수영을 하면서 평소 사용하지 않던 근육의 활동량이 높아져 심장 주변 갈비뼈 사이 근육과 신경에 무리가 갔을 거예요. 그 때문에 통증이 발생한 것 같습니다."
의사는 내 통증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래서 나도 내 통증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로 했다. 진짜 대수로운 건 내 심장이 젊다는 거 아닌가. 심장이 젊다니! 동안이라는 말보다 훨씬 더 듣기가 좋았다.
평포자(평영을 포기하는 사람)가 많다는 말을 수영을 배우면서 처음 들었다. 영법이 너무 달라서 배우기가 만만치 않기에 포기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나 역시 10일째 감을 못 잡고 종합통증 선물세트를 받았으니 여차하면 이럴 때 많이들 포기를 했을 것 같다. 갈비뼈 사이 근육통과 신경통뿐 아니라 지난 금요일 팔동작을 배우고는 오른쪽 어깨와 목 부위에도 새로운 통증세트가 배달되었으니 말이다. 그날 김장까지 하느라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멈출 수는 없는 일. 평포자가 웬 말인가. 일단 회복에 전념하자. 토요일과 월요일 이틀간 한방치료를 받았다. 침술이 내게는 잘 맞아서 이번에도 효과가 있었다. 오른쪽 목과 어깨통증은 거의 사라졌고 왼쪽 가슴 근육통도 조금 완화되어 화요일 오전에는 기어코 수영장에 갔다. 배영과 자유영을 수차례 왕복하다가 평영연습을 조금 했다. 딱 1시간만 연습하고 또 침을 맞으러 갔다. 모든 것에는 Give&Take가 있다. 수영이 내게 종합통증 선물세트를 시즌별로 준다 해도 젊은 심장을 받았으니 괜찮다. 나는 오늘도 평포자가 아니라 평도자로 하루를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