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은 무엇으로 하는가

오롯한 나를 마주하기

by 조은영 GoodSpirit

수영 7주에 접어들었다. 시작 30분은 자유영을 하다가 호흡이 가쁘면 배영을 병행한다. 이후에는 자유롭게 그때 배움의 단계에 있는 것들을 연습하고 있다. 어제는 평영과 돌핀킥을 연습했다. 평영은 3주째 연습 중인데 나에게는 가장 어렵다. 처음에는 한 자리에서 허우적대는 수준이라 앞으로 밀고 나가지를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글라이딩을 조금 느끼는 수준이다. 물론 자세는 여전히 서툴다. 손발이 동시에 나간다거나 팔을 너무 넓게 연다거나 몸통 뒤까지 팔꿈치를 뻗어 물을 잡는다거나 다리가 너무 벌어진다거나 하는 문제들이 따라다닌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앞으로 나가고 있으며 죽을 지경까지는 아니고 할 만하다는 것이다.

통증은 여전히 있다. 2주 전 얻게 된 쇄골 아래 심장 주변 근육 통증이 아직 남아있다.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지만 말이다. 다행히 수영할 때는 아프지 않아서 통증을 핑계로 수영을 멈추지 않는다. 몸이 뻐근하고 불편한 곳이 있어도 물속에 들어가면 편안하고 유연해짐을 느낀다. 어쩌면 인간이 모태에서부터 물속에서 지냈기 때문에 몸에 태생적으로 입력된 친화력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럼에도 수영장에서는 물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수영장에서 만난 한 지인은 어렸을 때 물에 빠져 죽을뻔했던 적이 있어 아버지가 절대로 물 근처에는 가지도 말라고 해서 여태 물을 피해 살아왔다고 했다. 하지만 너무 힘든 시기를 겪던 해 죽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고 그때 물이 생각났다고 한다. 죽을 마음까지 먹었는데 뭘 못하겠냐는 생각에 수영을 선택한 것이다. 처음에는 물과 싸우듯 죽기 살기로 했기에 물에 들어오면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었으므로 힘든 현실을 잊을 수 있어서 오히려 그 시간을 버티게 해주었다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렇게 시작한 수영이 어느덧 6개월이 되었다는 그녀는 괴로운 시간을 잊게 해준 수영을 진정 좋아하게 되었다.

한 번은 내 옆에서 샤워하는 사람과 얘기를 나눴다. 그녀는 26년째 매일 아침 수영을 하고 있다고 했다. 원래 자신이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는 별명이 있었는데 수영을 하면서 병원이 필요 없어졌다고 했다. 마치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이 하루하루를 버티게 해줬던 것처럼 하루 수영이 그녀의 하루를 버티게 해준다는 것이다. 지금 69세인 그녀는 나이보다 더 젊고 건강해 보인다. 요즘은 먼저 30분을 걸은 다음에 수영을 하는데 걷지 않을 때보다 수영이 더 잘 된다고 얘기해 줬다. 그녀는 항상 유연하고 온화한 표정을 짓는다. 26년을 물과 친밀하게 지낸 덕분에 얻은 수용인(수용성 인간)의 참모습이 느껴진다.

A씨는 3개월간 저녁 초급반을 다녔고 12월에는 나와 같은 오전 초급반으로 넘어왔다. 4개월 차에 접어들었는데도 그는 여전히 킥판을 잡고 발차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는 너무 힘들다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았고 이제 킥판을 잡고 팔 젓기를 하며 제법 속도를 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가 수영을 기필코 해내려는 이유는 아직 모르지만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조만간 킥판을 놓고 자유영을 해내는 날이 분명 올 것이다.

B 씨는 물이 무서워 처음부터 개인강습으로 수영장에 먼저 발을 들였는데 2개월을 해도 킥판을 놓지 못해 길게 가겠구나 싶어 12월에 오전 강습반에 들어왔다. 그녀는 꾸준히 연습한 덕분에 지난주에 처음으로 킥판을 놓고 1번 레인 끝까지 중간에 쉬지 않고 자유영에 성공했다. 그녀는 숨이 끊어질 것 같다면서도 기쁨에 넘쳐 외쳤다. "저 킥판 놓고 자유영 성공했어요!" 나는 그녀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내 일처럼 기뻤다.

우리는 모두 같은 경험을 했다. 그 기쁨이 무엇인지 너무 잘 안다. 첫걸음마에 성공한 기쁨에 비견할 만한 것이겠지만 그 옛날의 기쁨은 도무지 기억할 수 없으니 첫 자유영 성공의 기쁨이 배가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수영장에 오래 나오는 사람들은 누구나 말한다. 포기만 하지 않으면, 나오기만 하면,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누구나, 수영을 할 수 있다고 말이다. 설령 포기했더라도, 다시 나오기만 한다면, 수영을 할 수 있다. 내가 산 증인이다. 당신이 지금 초급반에서 한 달간 킥판을 잡고서 발차기를 하는 것도 벅찬데 당신 옆에서 1주일 만에 자유영을 성공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기죽을 거 없다. 그 사람은 초급반만 네 번째인 경험이 있을 수도 있고(나처럼) 아니면 개인강습을 몇 개월 했거나 저녁반에서 3개월간 연습을 했던 사람일 수도 있다. 혹은 드물게 수영에 특별히 재능이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어느 쪽이든 무슨 상관인가. 수영은 운전면허증을 따는 것과 비슷하다. 이론을 배우고 실습을 하고 면허증을 한 번에 쉽게 땄더라도 막상 운전이 무서워서 운전대를 잡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론이든 실습이든 수차례 떨어지더라도 면허를 따고 운전이 미숙해서 경미한 사고를 종종 내더라도 용감무쌍하여 운전을 계속한다면 그 사람의 운전실력은 처음보다는 나아질 것이다. 실제 그런 사람을 봤다. 때문에 보험료가 상당히 오르긴 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도로주행을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곳에 스스로 가기 위해서이다. 결국 수영을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물을 가르며 나아갈 날은 올 것이다.


수영은 궁극적으로 나를 만나고 들여다보는 일이다. 선수가 아니고서야 경주를 하거나 팀플레이를 하는 일도 없다. 레인의 구조는 오른쪽에서 출발해서 왼쪽으로 돌아오는 구조라 나란히 헤엄치는 일이란 불가능하다. 굳이 원한다면 옆 레인과 나란히 동시에 출발할 수도 있겠지만 나란히 간들 서로 대화를 나눌 수도 없고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하는 운동이다.

타인에게 나를 드러내거나 과시하지도 않는다. 수영모자를 쓰고 물안경을 쓴 얼굴만 물 위에 떠서는 누가 누군지도 쉽게 구분이 안 가기 때문이다. 수영을 하러 가기 전 공동 샤워장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씻어내는 순간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헐벗은 나를 만날 수 있다. 타인과 나를 비교할 필요가 없다. 오롯히 나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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