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에서 한 달
지난 11월 3일 수영장에서 첫 강습을 시작한 지 꼬박 한 달이 지났다. 30일 동안 수영장에 21번 갔다. 집 다음으로 가장 많이 찾은 장소다. 그래서 이제 꽤나 친숙한 장소가 되었다. 강습이 아닌 날 가더라도 아는 얼굴들을 종종 마주친다. 그들 역시 나처럼 자주 수영장을 찾는 이들이다. 이들 중 대부분은 탈의실이나 샤워실에 들어올 때나 나갈 때 특정 누구에게랄 것 없이 모두에게 인사를 한다. 그 누구에게도 배타적이지 않은 수용하는 자세이다. 나 역시 매번은 아니지만 자주 그런 인사를 한다.
수영장과는 별개로 원래 알던 사람들도 만났다. 같은 교회에 다니는 젊은 부부와 초등학생 아들, 같은 학교에 수업을 다니는 요리강사, 셋째 딸 초등학교 동창의 엄마, 오래전 학부모 책동아리 멤버, 심지어는 나와 같은 동 같은 라인에 살지만 가벼운 인사 외에는 대화를 나눈 적 없는 50대 여자 이웃까지 수영장에서 마주쳤다. 몇몇은 샤워실에서 벗은 모습으로 첫 대면을 했다. 사실 수영장을 다니기 전에 이 상황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가장 꺼려지는 일순위였다. 친밀한 사이가 아닌데 맨몸을 마주한다는 게 상당히 민망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그 상황이 펼쳐졌을 때 우려했던 것만큼 불편하지 않았다. 수영이라는 교집합이 다른 무엇보다 상대에게 끈끈한 호감을 갖게 만든달까. 요상한 전우애가 느껴졌다. 사실 수영장은 일종의 전쟁터 같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수영 강습을 받는 우리들은 물과 각개 전투를 벌이고 있으며 매일매일 고전을 면치 못하는 와중에 어느 날 갑자기 패자는 사라진다. 그렇게 따지면 나 역시 3번의 패잔병이었으리라. 하지만 이제 나는 다르다. 매일 물과 벌이는 각개 전투에서 패하지 않는다. 이제 인식의 방식을 바꿨기 때문이다. 이제 물은 나와 싸우는 적군이 아니라 나의 스텝과 손동작, 그리고 온몸을 받쳐주는 파트너이니까 말이다. 또한 물은 공포의 대상도 아니다. 물이 없는 또는 얕은 물에서 수영을 하는 것이 더욱 공포스러울 테니 말이다.
절대 포기하지 않기를 작정하고 한 달을 꾸준히 수영장에 나오면 여러 사람들과 소통하게 된다. 일단 수영장에 입수하는 순간에도 인사를 하면서 자연스레 영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긴다. 지난 금요일에 강습시간에 맞춰 1번 레인에 입수했을 때 평소보다 사람이 적어 의아해하던 차에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강습이 없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한가한 1번 레인에서 배영을 연습하고 있었는데 한 남성이 내 동작을 유심히 보더니 조언을 줬다. 스트로크를 할 때 팔이 얼굴에 바짝 닿아 안쪽으로 기운다면서 살짝 바깥쪽으로 향해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Y자 형태로 팔을 저어야 하는 건 알고 있었는데 내가 내 동작을 볼 수 없으니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조언대로 스트로크 연습을 하니 축이 흔들리지 않고 스트림라인이 잘 유지되어 더 빨라짐을 느낄 수 있었다. 72개월째 홀로 수영을 배우고 있다는 그 남성은 다른 사람들의 동작을 관찰함으로써 좋은 동작은 취하고 좋지 않은 동작을 보면 자신의 동작을 살펴보고 수정하는데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 남성 외에도 내 동작을 보면서 문제점들을 찾아서 얘기해 주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나는 그 말들이 고맙다. 내가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조심스럽게 일러주는 말임을 알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내가 너보다 잘하니까'라는 잘난 마음이 아닌 '우리는 함께 배우는 중'이라는 겸손함이 묻어있다. 또한 잘한다는 칭찬도 한 번씩 듣는다. 나 역시 칭찬은 종종 하는 편이다. 아직 한 달밖에 되지 않은 나로서 조언을 하기에는 이르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하지만 누군가 호흡이 딸린다거나 유선형이 잘 유지되지 않는다고 하는 말을 들으면 내가 도움을 받았던 특정 유튜버들을 소개한다. 나는 여러 유튜버를 참조하는데 같은 영법이라도 조금씩은 다른 그들만의 경험에서 나온 꿀팁이 소개되어 다 도움이 된다. 덕분에 자유영과 배영은 어느 정도 감을 잡았고 지난 월요일 강습에 처음으로 평영 발차기를 연습했다.
예로부터 인간들은 물가에서 만나면 언제나 이야기꽃을 피웠다. 꽃은 물이 있어야 하기 때문인지 유독 물가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빨래터, 우물가, 목욕탕, 탕비실, 카페, 그리고 수영장. 물은 말라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시고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물에 녹아드는 수용성이다. 수용성 인간들이 모이는 수영장에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수용의 꽃을 피운다. 12월, 나는 수용성 수영인들과 함께 자유로운 평영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