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더 친해져라
초급반 3주 차에 접어들었다. 둘째 주에는 강습이 없는 화요일과 토요일 오후에도 가서 연습을 했다. 유튜버들의 세세한 설명이 있는 영법 강습 영상을 사전에 보고 난 후, 연습하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특히, EBS 평생학교 수영편 김재덕강사의 강의는 매우 유용했다. 강의를 보면 이해가 잘 되고 당장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빨리 수영장에서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강습일 외에 두 번을 더 나갔던 건데 당장 실습을 해보면 이론만큼 간단하지 않았다.
나름 자유영은 한다 생각하고 배영 발차기로 넘어가는데 이 역시 호흡이 가장 큰 문제였다. 아직 자유영 팔 꺾기도 배우지 않은 상태에서 배영 진도가 가능했던 까닭은 내가 속한 초급반 1번 레인이 워낙 시작기간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사는 아주 기초부터 자유영과 배영 동작들을 그날그날 강습생들의 상황을 보고 가르친다. 2주 차에는 이미 배영을 배웠던 강습생들에게 다시 안정적인 배영을 지도하면서 나도 덩달아 배웠다. 두 팔을 쭉 뻗고 귀옆에 붙인 채 누워서 음~ 코로 숨을 내쉬면서 발차기를 하며 나아가기까지는 물을 많이 들이켜가면서 성공하기는 했으나 팔 젓기를 동시에 하는 것이 되지 않았다.
팔을 가슴 위로 들어올리면서 머리 위로 쭉 뻗었던 반대쪽 팔이 자연스레 물속에 잠기게 되면 다리 쪽으로 물을 당기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이론적으로는 잘 아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 순간 내 머리는 수면 아래로 들어가고 숨을 내쉬는 타이밍이 어긋나 자꾸 코로 물이 들어가니 괴로웠다. 한쪽 팔은 진행방향으로 수면 위에 곧게 뻗은 채 발차기를 해서 스트림라인(streamline)을 유지한 채 반대쪽 팔을 들어 올리면서 물속 팔을 저어줘야 하는데 둘이 박자가 맞질 않았다. 엇박자로 기우뚱기우뚱 겨우 레인 끝에 도착하기는 하지만 내내 코에 물이 들어갈까 불안해서 자꾸 몸에 힘이 들어가고 그러면 물속으로 가라앉고를 반복했다. 여전히 배영 물버둥 수난기는 진행 중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가서인지 간혹 무리하면 좋지 않았던 왼쪽 어깨에 통증이 왔다. 말 그대로 무리를 했다. 어깨가 더 나빠질까봐 하루 쉴까를 잠시 고민했지만 지난주 화요일 오후에 수영장에서 만났던 50대 후반의 두 여성들과 나눈 얘기가 떠올라 가기로 했다. 올해 여름부터 수영장을 찾기 시작했다는 두 사람은 강습은 받지 않고 킥판을 잡고 1번 레인 끝에서 몸을 담그고 한들한들 두 발을 자유로이 움직이며 다녔다. 킥판을 붙잡고 발차기를 연습하는 것도 아니고 킥판의 부력을 빌러서 둥둥 떠다니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연습에 방해가 될까 거의 이끝이나 저끝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데 표정이 참 편안해 보였다. 나는 오며가며 그녀들과 눈이 마주쳐 인사를 나누고 짧은 대화를 하게 되었다.
자칭 물놀이 중인 이들은 일상생활에서 관절이 많이 아팠는데 시간 날 때마다 수영장에 와서 물놀이를 하다 보니 관절 통증이 크게 줄었다고 한다. 이들에게 수영장은 일상에서 고통받는 관절을 쉬게 해주며 물과 친해지는 장소였다. 그들은 수영이 아닌 킥판에 의지한 유영에도 즐거웠다. 그녀들 말대로라면 물과 살살 놀기만 해도 아픈 관절이 나아진다는데 조심하면 어깨 통증이 더 나빠질 일은 없겠지. 신기하게도 정말 물속에서는 팔을 돌릴 때 어깨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중력의 영향을 덜 받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를 실감했다. 그래서 관절이 좋지 않은 이들이 수영장을 찾는가 보다.
지난 4월 8일부터 초급반 강습을 시작했다는 50대 후반의 A씨도 관절이좋지 않아 수영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도 킥판을 잡고 발차기 연습을 하는데 물공포증 때문이다. 그럼에도 강습을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나온다. 그녀는 서두르지 않고 물과 친해지는 중이다. 그런 그녀는 나를 볼 때마다 감탄하며 말한다.
"와! 어떻게 그렇게 빨리 배웠어요? 나온 지 얼마 안 됐는데 진짜 잘하네."
나는 14년 전에 한번 배운 적이 있어서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정말 그렇다. 14년 전에 자유영과 배영을 겨우 배우고 다시 자유영을 시도해 본 적이 없는데 그래서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몸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1주일 만에 자유영을 다시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무언가를 잘하지 못했어도 해본 경험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시 배울 때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아예 배우지 않은 초짜가 흰 종이에 새로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제대로 빠르게 흡수할 수 있지 대충 배운 사람들은 제대로 가르치기 어렵다고는 하지만 그건 예전에 잘못 배운 것을 자꾸 고집하려 할 때의 문제일 테고 새롭게 시작한다는 겸손한 마음가짐만 있다면 이전 경험은 다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3번의 초급 경력은 역시 시간낭비가 아니었다.
초급반 2주차를 보내며 깨달은 바가 있다. 내가 배우는 수영은 결코 누군가를 앞서가는 경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겨우 시작인 내가 너무 욕심을 부렸다. 현재 가능한 자유영을 보다 능숙하고 원활하게 수행하는 것에 집중했으면 좋았을 터인데 잘한다 소리에 신이 난 나머지 다음 단계로 나가는 것에 너무 마음을 두었다. 아직 자유영 팔 꺾기도 배우지 않은 상태에서 배영을 배우고 심지어 평영 이론까지 열심히 공부했으니 말이다. 배영을 원활하게 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한데도 못내 아쉽고 어떻게든 빨리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자꾸 몸을 뒤처지게 만들었다.
마음이 몸보다 앞서가 있으면 몸은 항상 늦고 거추장스러워질 것이다. 이제부터는 마음을 데려와 몸과 동행해야겠다. 나는 지금 잘하고 있다. 당장 배영 팔 젓기를 못하면 뭐 어떤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그날그날 따져보기보다는 50대 후반의 그녀들처럼 물과 친해지는 게 수영을 오래 할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오늘도 내 마음을 다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