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을 잡아라
초급반 강습 첫째 날 11월 3일 월요일 새벽 6시, 1번 레인에 살포시 들어가 몸을 담갔다. 예상보다 물은 따뜻했다. 주변 온도에 따라 쉽게 체온이 변하는 나에게 지속가능한 수영의 긍정적 외부요인 하나가 추가됐다. 시작이 좋다. 6시 10분에 수영강사를 따라 준비체조를 간단히 하고 강습이 시작됐다. 20명의 초급반원들은 수준이 다 달랐다. 초급반은 1번과 2번 레인을 쓰는데 1번 레인은 처음 등록한 초급과 자유형을 할 수는 있지만 아직은 호흡이 딸리는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25미터 레인을 연속으로 2번 왕복하여 총 100미터를 헤엄쳐도 괜찮은 호흡이 유지되면 2번 레인으로 넘어간다고 했다.
1번 레인에 몸을 담근 12명의 로망은 그 선을 넘는 것이었다. 그중 새로 나온 사람은 나포함 3명. 강사는 우리 셋에게 숨 참고 물 위에서 수평 유지하는 것과 숨을 뱉으면서 바닥으로 내려가 엉덩이를 바닥에 찍고 올라오는 것을 시켰다. 그런 연습이 호흡법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수영장에 걸터앉아 발차기하는 법, 수영장 벽을 잡고 물속에 머리 집어넣고 콧구멍으로 날숨 음~ 고개를 들어 올리며 입으로 들숨 파~ 동작까지 속성으로 가르치고 바로 첫날부터 킥판 잡고 음~파! 호흡과 발차기를 세트로 시켰다. 지금까지 초급반 경력이 4번째인 나로서는 이렇게 빨리 실전에 밀어붙이는 강사는 처음 봤다. 기본 동작은 이미 다른 세 강사들에게 충분히 배웠으니 너무 많은 시간을 쓰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기쁨도 잠시, 14년 만에 다시 잡은 킥판으로 호흡과 발차기를 동시에 하는 것은 힘이 들었다. 일단 숨이 너무 찼다. 끝 지점에 도달하기 2~3미터 전쯤 멈추어 걸어갔다. 끝까지 멈추지 않고 도달하고 싶은데 안 됐다. 오늘 수영이 처음인 A는 나보다 더 숨이 차서 중간도 못 와서 멈추었고 B는 끝까지 잘 갔다. 하지만 전혀 마음 쓰이지 않았다. 나는 그저 내 페이스대로 차근히 배워 나가면 될 터였다. 7시에 강습이 끝나고 1시간 더 연습을 했다. 그 덕에 중간에 멈추지 않고 끝에 겨우 닿았다. 숨이 가빠 죽을 지경이었다. 얼굴에 열이 오른 게 느껴질 정도였다. 일단 첫날 목표는 달성했다!
강습 둘째 날 5일 수요일, 킥판을 양손으로 붙잡고 25미터를 쉬지 않고 갔지만 끝에 닿을 때면 숨이 너무 찼다. 강사가 나를 보며 팁 하나를 줬다. 숨을 너무 크게 내쉬고 들이쉬지 마세요. 우리가 생활하면서 숨 쉬는 것을 그렇게 과장되게 하지 않잖아요. 편안하게 들이쉬고 내쉬어야 숨이 차지 않아요. 물속에서 숨을 편안하게 쉰다는 게 뭘까. 뭔가 알 듯 말 듯했다. 그래서 숨을 천천히 내쉬는 연습을 했다. 음~ 하며 숨을 내쉴 때 숨을 코로 토해내듯이 급하게 내쉬던 것을 느리게 내쉬니 숨이 턱끝까지 딸리는 느낌이 덜했다. 숨이 너무 딸리면 마실 때도 급하게 들어가니 다시 숨이 딸리는 현상이 반복되었는데 내쉴 때 어느 정도 남겨두니 호흡이 좀 더 편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덕분에 숨 가쁨 현상이 조금 개선됐다. 끝까지 가는 게 죽을 정도까지는 아니고 할 만했다. 둘째 날 이 정도면 흡족하다!
강습 셋째 날 7일 금요일, 호흡이 좀 더 편안해지니 욕심이 생겼다. 킥판 잡고 발차기만 하며 나아가니 속도가 나지 않아 자유영 팔 젓기를 함께 하고 싶었다. 때마침 강사가 자유영을 하는 반원들에게 팔 젓기를 다시 지도하기에 나도 덩달아 배웠다. 강사는 팔 젓기는 아직 무리일 수 있다고 했지만 배운 김에 도전은 필수다. 두 팔을 뻗고 발차기를 하며 나아가다 왼팔 저을 때 날숨 음~ 오른팔을 저을 때 오른쪽 고개를 옆으로 들며 들숨 파! 완벽하게 나아갔으면 좋았겠지만... 두 팔로 킥판을 붙잡고 갈 때와 달리 왼팔과 오른팔을 차례대로 휘젓고 나아가다 보니 몸이 휘청휘청거리고 자세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들숨 파!를 할 때 물이 공기와 함께 그대로 목구멍으로 넘어왔다. 윽! 끔찍했다. 입이 물밖으로 다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입을 크게 벌려 그대로 물을 마신 것이다. 100을 다 내쉬지 않고 타이밍에 맞게 숨을 들이쉬는 것에 집중했다. 반복해서 연습하다 보니 물을 대놓고 들이켜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한 번씩 입 안으로 들어오면 멈춰서 레인 끝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강습이 끝나고 연습을 하는데 강사가 와서 칭찬을 했다.
"하나를 가르치면 두 개 세 개를 하시네요."
내가 수영에서 이런 칭찬을 듣게 될 줄이야. 상상도 못 한 말이다. 어떻게 보면 당연히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 강사가 보기에는 3번째 강습을 받은 초급자가 이 정도면 상당히 잘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다분히 양심적인 나는 강사에게 강습 첫날부터 자유영을 배운 적이 있노라고 이실직고했지만 기초부터 시작했으니 나는 초급자가 맞는 것이다. 또한 그 칭찬이 강습이 끝나고 나서도 계속된 나의 연습을 지켜본 강사가 해준 말이라서 더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그 칭찬을 고스란히 만끽하기로 했다.
강습 넷째 날 10일 월요일, 다른 강사가 나타났다. 기존강사가 개인 사정이 있어서 대신 나왔다고 한다. 3번밖에 안 봤는데 정이 들었는지 많이 서운했다. 대타 강사는 자세를 봐주면서 스트로크(Stroke) 할 때 킥판에 뻗은 팔의 힘을 빼라고 일러주었다. 그 말에 신경을 쓰면서 킥판을 붙잡는 느낌보다는 손바닥을 올려놓는 느낌으로 연습을 이어갔다. 호흡은 이제 안정화되었다.
호흡의 안정화는 일요일 밤 잠들기 전, 수영 유튜버들의 다양한 강의를 들으며 나에게 최적화된 방법을 찾은 덕분이었다. 그 꿀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왼팔이 입수하는 엔트리(Entry)에서 손이 물속에 들어가서 물을 잡듯 손바닥으로 미는 캐치(Catch), 그리고 물을 뒤로 끌어주는 풀(Pull)까지는 숨을 참는다. 엄지손가락이 허벅지를 스치면서 마지막으로 물을 밀어내는 푸시(Push)와 수면 위로 왼팔이 돌아오는 리커버리(Recovery), 오른팔이 캐치를 시작하며 오른쪽 고개를 수면 위로 트는 순간까지 코로 숨을 내쉬고 곧바로 파! 숨을 들이쉬고 고개를 수면 아래로 돌린다. 그리고 또 숨을 참았다가 이 과정을 반복한다. 숨은 100을 다 내쉬면 안 되고 50만 내쉰다고 생각하고 천천히 내쉰다. 몸속에 50이 남아있어야 부력이 유지되며 숨이 차지 않는다. 스트로크를 시작하면서 발차기는 좀 더 쉬엄쉬엄 하면 된다. 이 방법은 나에게 잘 맞았다. 덕분에 호흡은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강습이 끝나고 개인 연습을 할 때 킥판을 내려놓고 자유영에 한번 도전해 보았다. 킥판이 없으니 숨을 들이쉬는 파! 동작에서 몸이 아래로 더 내려가서 물이 입에 들어갔다. 물이 입에 들어가도 목구멍으로 넘어가지만 않으면 아무 문제없다. 고개를 물속으로 집어넣으면서 바로 뱉으면 되니까. 이것도 유튜브를 보며 배운 조언이다. 강습을 하면서 강사를 통해 배우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다. 20명이나 되는 강습생들에게 일일이 하나씩 다 가르쳐준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세한 이론은 사전에 학습하고 현장에서 강사에게 교정을 받는 것을 권한다. 사실 강사가 필요시마다 찾아와 교정을 해주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를 알고 먼저 적극적으로 묻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 비록 킥판을 떼지는 못했지만 스트로크를 병행하면서 호흡이 안정화된 것으로도 만족스럽다.
11일 화요일 아침, 수영 강습이 없는 날인데도 5시 반에 잠이 깼다. 다시 잠을 청했다. 화요일은 쉬는 날이라 오전에 EBS반디로 모스와 정클클을 들으며 일용할 양식을 준비했다. 청국장을 끓이고 연근조림을 했으며 양배추를 데치고 밥을 했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정리하고 이불빨래를 하고 점심을 먹으면서 킥판 없이 자유형을 하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몸이 고단해서 쉬고 싶은데 자꾸 자유영에 성공하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다.
결국 오후 2시 30분경 수영장에 갔다. 수영장은 한가했다. 1번 레인에 나포함 4명. 강습시간에는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어서 마음껏 연습도 어려웠는데 오후에 오니 기다릴 필요 없이 연습할 수 있어 좋았다. 킥판을 잡고서 서너 번 자유영을 왕복하고 나서 킥판을 놓고 했다. 처음에는 호흡이 잘 안 잡혀서 중간에 멈추기도 하고 물을 먹기도 하다가 30분쯤 지나니 호흡이 안정화되었다. 드디어 14년 만에 다시 자유영을 하게 되었다! 호흡이 안정화되니 연속해서 4번까지 왕복할 수 있었다. 자유영 200미터를 해낸 것이다! 아, 이제 선을 넘을 날이 코 앞이다.
네 번의 강습과 한 번의 오롯한 개인 연습에 쏟은 시간은 10시간이다. 매번 2시간을 연습했다. 그 결과 호흡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수영강사들이 호흡의 중요성을 강조하듯이 나 역시 수영은 호흡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전에 강습을 받을 때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이 호흡이었다. 14년 전 자유영에 성공했을 때도 사실 간당간당하게 했다. 그래서 나는 수영을 못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때는 호흡을 잡지 못했다. 왕복 1번에 숨이 찼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자유영을 하면서 4번을 왕복하면서도 할 만했다. 더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다만 2시간을 연습한 터라 기력이 없어서 나왔을 뿐. 말이 트인 아기가 말을 술술 하듯 호흡이 트이면 수영도 쉬워진다. 숨이 가쁘면 가만있기도 힘들지 않은가. 수영은 호흡이 8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