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 잃은 장갑

장갑 한 짝

by 양월송

요즘처럼 매서운 날이면 나는 저절로 손을 비비게 된다. 장갑을 끼고 있어도 손끝이 시릴 때면 오래전 겨울이 떠오른다.

그 겨울, 나는 오랫동안 누워 있었다. 다리가 아파 수술을 받고 병원 근처 작은 방에 머물던 때였다. 지금처럼 병원이 좋은 시설을 갖춘 것도 아니어서, 시골 병원에는 입원실조차 없었다. 밤이 되면 통증이 밀려왔고, 약효가 떨어질 즈음이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목마름이었다.

그 방 옆 마당에는 펌프 우물이 있었다. 쇠 펌프를 누를 때마다 콸콸 쏟아지는 물소리가 어찌나 크게 들리던지, 마치 내 갈증을 더 깊이 건드리는 것 같았다.

“물… 물 좀 주세요…”

나는 힘없이 말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말은 늘 같았다.

“지금은 물을 마시면 안 된다.”

그 한마디에 어린 나는 절망했다. 한 모금만이라도 삼켜 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손에 닿을 듯 가까운 물을 두고도 마시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수술한 부위를 소독하고 치료할 때의 아픔도 어린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큰 고통이었지만 이를 악물고 참고 또 참으며 몇 달을 견디어 냈다. 시간이 흐르면서 몸은 조금씩 회복되었지만 제대로 걸을 수는 없었다. 하루 대부분을 누워서 지냈다. 시간은 더디게 흘렀고 마음은 점점 지쳐갔다. 짜증이 나고, 많이 울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손이 심심해졌다. 집에 있던 낡은 털 스웨터 하나를 풀어 실을 만들었다. 누가 가르쳐 준 적도 없었다. 서툰 손으로 코를 만들었다가 풀고, 다시 만들기를 반복했다. 몇 번이나 실패했는지 모른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처음으로 만들어 낸 것이 장갑이었다. 손가락 하나하나를 나누어 뜨느라 모양은 고르지 않았고, 여기저기 울퉁불퉁했다. 완성된 장갑을 어머니께 드렸을 때, 어머니는 한참을 말없이 들여다보셨다. 그리고 환하게 웃으셨다.

“이것 봐라, 우리 딸이 만들어 준 장갑이구나.”

어머니는 그 장갑을 끼고 시장에 다니셨다. 매서운 바람이 부는 들판 길과 오르막 내리막이 이어지는 시골길을 걸어 다니실 때마다 늘 그 장갑을 끼셨다.

“손이 하나도 시리지 않다. 참 따뜻하다.”

그 말씀을 하실 때마다 어머니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어린 내가 만든 장갑이 얼마나 서툴렀겠는가. 그래도 어머니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장갑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어머니가 시장에서 돌아오시며 한참을 말없이 서 계셨다. 그리고 조용히 말씀하셨다.

“장갑을… 한 짝 잃어버렸구나.”

잠시 말을 잇지 못하시던 어머니는 이내 이렇게 덧붙이셨다.

“우리 딸이 누워서 떠 준 장갑인데… 미안해서 어떡하니.”

나는 그 표정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시장까지 가는 길은 십 리나 되는 먼 길이었다. 그 길을 몇 번이나 오르내리시며 어머니는 떨어진 장갑을 찾아보셨다고 했다. 그러나 끝내 찾지 못하셨다.

“누가 주워갔나 보다…”

그 말을 하실 때, 어머니의 눈시울은 이미 붉어져 있었다. 장갑 한 짝을 잃어버린 일이 그렇게까지 마음 아픈 일이었을까.

지금도 겨울바람이 매섭게 부는 날이면 그 장면이 떠오른다. 서툰 손으로 뜨고 또 뜨기를 반복하던 어린 나와, 그 장갑을 끼고 들판 길을 걸어가시던 어머니의 뒷모습이 함께 떠오른다. 어머니에게는 장갑 한 짝을 잃어버린 일이었겠지만, 내 마음속에는 아직도 따뜻한 장갑 한 켤레가 그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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