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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웨비 Oct 24. 2022

밴드 티셔츠의 역할

빈티지 티셔츠가 꼭 좋은 것일까


아무래도 빈티지 샵을 운영하는 입장이다 보니 굉장히 옷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지만, 아침 운동을 갈 때만큼은 후줄근하게 입고 다닌다. 오늘도 옷장에서 가장 땀에 젖어도 될 것만 같은 티셔츠를 집어 들어 입고 나왔는데, 찬바람을 맞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한 때 내가 굉장히 좋아하던 소닉 유스의 앨범 커버가 그려진 티셔츠였다. 물론 요즘 없어서 못 구하는 90년대 오리지널 빈티지 티셔츠는 아녔지만. 나는 소닉 유스를 좋아하기에 굉장히 아끼는 옷이었다.


물론 잘 만든 앨범의 커버란 충분히 비쌀 가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의 빈티지 락 티셔츠란 너무 비싸다. 밴드 티셔츠들도 여느 빈티지 옷들이 그렇듯 그래픽, 년도, 베이스 등등 수많은 요소에 그 가격이 달라진다. 정말 비싼 제품은 그 티셔츠를 찍어낸 노동자의 임금보다도 비쌀 것이다. 


패션 산업의 소비 구조에 따른다면 너무나도 당연한 현상이지만, 원래의 의미는 굉장히 많이 퇴색 되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밴드 티셔츠의 의미란, 내가 좋아하는 밴드들을 말 그대로 피부로 느낄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내가 이 티셔츠를 입음으로써, 본인은 취향을 촉각으로 느낄 수 있고 타인은 취향을 시각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경험은 꼭 값비싼 빈티지 티셔츠를 입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라이센스를 따 만든 티셔츠들은 계속 생산 되고 있고, 충분히 내가 어떤 음악을 듣는지, 어떤 밴드를 좋아하는 지, 내 취향은 무엇인지 나타낼 수 있다. 


예전에 영국에 여행을 갔을 때, 한 레코즈 샵에서 핑크 플로이드의 명반 “Dark side of the moon” 앨범 커버가 그려진 티셔츠를 구매해 입고 다닌 적이 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마주친 중년의 신사 한 분이 나에게 말을 걸며, 본인이 젊은 시절 번지 점프를 하며 이 앨범을 들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물론, 서로 이름도 성도 나에겐 없는 미들 네임도 모르는 사이의 아저씨였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이틀 뒤, 똑같은 티셔츠를 입고 대영박물관을 방문했다. 박물관을 들어서자 직원으로 보이는 노신사 한 분이 또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나는 혹시나 영국만의 문화에 잘 섞여들지 못한 아시아인이 됐을까봐 두려운 마음으로 돌아보았으나 놀랍게도 그 노신사는 엄지를 세운 채로 딱 한마디를 건냈다. “masterpiece”. 내 티셔츠를 보고 건낸 한 마디였다.  


나는 20파운드 짜리 천조각을 입음으로써 문화를 통해 동서고금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한 것이다. 청년인 나도, 중년인 아저씨도, 노년인 경비원도 프리즘을 통해 무지개가 뻗어나가는 그래픽 하나로 각자의 추억과 각자의 유스 컬쳐를 연상해낸 것이다. 지금은 소닉 유스 티셔츠도, 핑크 플로이드 티셔츠도 제 역할을 하고 빈티지가 되었다. 프린팅도 벗겨지고 봉제도 다 틀어져버렸다. 물론 순전히 나만의 빈티지가 되었기 때문에, 처음 산 가격보다 저렴한 가격에 팔아야지만 팔릴 것이다. 그래도 그 값어치는 내 티셔츠 위에 프린팅 된 앨범 커버 속에서 고스란히 낡고있다.


그렇다고 해서 빈티지 티셔츠를 비싸게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을 욕하려는 의도는 절대 아니다. 그 또한 하나의 가치를 가지고 낡은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다른 사람과 함께 그 의미가 덧 입혀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무엇보다도 생각 하나로 시장을 거스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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