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았다. 내 다 와간다. 있어봐라." 하고 좀 있다가 오빠가 왔다.집 근처 족발집을 다 들려보았는데 문이 닫혔드라며, 어차피 문닫아서 배달도 안 될꺼라며, 낼 낮에 족발시켜서 함 줘보자 했다.
그러고 왠지 족발을 못 주고 집으로 가는 길이 내내 발길이 떨어지지가 않더니, 그 날 새벽에 오빠가 불안해서엄마침대옆에서 졸고 있는데 엄마의 숨소리가 너무 거칠고 호흡이 가끔 끊어지는 느낌이 들어 급하게 119를 불러 응급실로 왔단다. 엊저녁에 음식을 삼키려고 고개를 드는 게 숨을 쉬기 힘들어 그랬던건데 자꼬 먹지 못 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내가 한없이 바보같았다.
마침 지난 주에 병원에 갈 때 왔던 그 구급대원이 와서 엄마를 알아보고는 지난주에 외래가시더니 이게 먼 일이냐고 하며 위로해주었단다.
응급실대기실에 큰언니와 큰형부가 먼저 와 있었다. 장염이라더니 괜찮냐고 큰형부가 물었다.
안부를 전할 겨를이 없이 응급실안에 있던작은언니에게교대하자고 했다. 엄마부터봐야겠다고했다.
"링겔꼽을 데가 없어서 목에다가 바늘꼽아났데이. 놀라지마래이.의식은 없는데 한번씩 손을 휘저어서 줄을 땡기면 피가 쏟을지 모르니까 잘 지켜봐야 된데이. " 그러면서 수혈을 몇 통이나 했다고 한다.
창백한 엄마 몸에 전기줄이 대여섯개 엉켜 있다. 앞섭도 정신 없이 풀어 헤쳐져 있다. 담요를 끌어다가 얼른 덮어주고 풀어진 앞섭을 매만지며 찬찬히 몸을 훑어보니 여기저기 급한 처치를 하느라 가슴팍도 손등도 어깨도 멍투성이다.
눈길이 오른쪽 목덜미에 가는 순간 주저 앉고 말았다. 목에는 핏자국과 푸른 멍자국이 범벅이 된 채 그 위를 투명 테이프로 겨우 주삿바늘을 고정시키고 그 위를 언니가 손수건으로 받쳐 살에 닿지 않게 해두었다.
창백한 엄마의 손을 잡고 엄마의 차가운 볼을 스다듬었다.
"엄마, 주야 왔어." 대답이 없다.
대답이 없는 엄마를 확인하고서야 눈물이 나왔다. 눈을 떠서 알은 척을 해주었다면 다시 눈물을 훔치고 더 단단해질 자신이 있는데 눈을 뜨지 못하는 엄마의 얼굴을 계속 붙들고 있으려니 하염없이 눈물만 나왔다.
정신을 차려 의사든 간호사든 누구든지 붙들고 무슨 상황인지 질문같은 도움을 청했다.
"병실로는 언제가요?" 울다 생각난 말을 그냥 내 뱉았다.수술복에 슬리퍼를 꺾어신은 내 아들뻘은 되어보이는 어린 의사에게 마치 엄마를 잃어버리고 길을 잃고는 말하는 법도 잊어버린한없이 여리고 불쌍한 아이처럼 물었다.
의사는 무슨 사진을 찍어야하는데 혈압이 너무 낮아서 사진을 찍을 수가 없어서 혈압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중이라 했는데, 아이가 된 44살의 나는 그 말들을 도대체 다 알아 들어먹을 수가 없었다. 그저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가 돌아와 나를 찾아 주기를. 나와 눈을 마주치며 눈인사해주기를.
다시 김천으로 출근하러 가야 하는 큰형부가 가기 전에 엄마 얼굴을 보고 가겠다고 나오라고 전화가 왔다. 그제서야 눈물은 닦았지만 그세 엄마가 어디로 가버릴까 봐, 아이처럼 보채며 알은 체도 안하는 엄마의 귀에 대고 "차서방이 엄마보러 온대. 주야도 좀따 다시 올 꺼니까 어디 가지말고 여기 딱있어. " 했다. 응급실 밖으로 나오니 햇살이 따가워서 눈이 부셨다. 따가운 햇살에 눈물을 감출 수 있어 다행이다.
넷이서 응급실앞에 섰다. 번갈아 교대하며 다니느
라 넷이서 모두한자리에 마주하기는 처음인듯 하다.
새벽부터 병원에 있으며 지금껏의 상황과 의사들의 치료과정을 작은언니와 오빠가 차례로 전했다.
의사가 이번주는 힘들거 같다고 했단다. 사실은 새벽에만 해도 쇼크상태에서 혈압도 너무 낮고 호흡도 불규칙하고 의식이 없어서 오늘을 버텨낼까 했단다. 그런 환자를 겨우 호흡만 살려 놓은 상태라고 혈압을 올리려고 이 한 여름에 온풍기를 틀어서 보온담요를 덮어 두었었다고. 혈압이 올라오긴 했는데 아직은 사진을 찍고 하기에는 위험하니 혈압이돌아 오면 다시 여러 조치를 하겠다고 했단다.
넷이서 마주하고 둘러서서 담담하고도 차분하게 이 상황을 이야기했다.
이제 이것이 엄마의 마지막 입원이라고.
앞으로 엄마는 다시는 엄마집으로 못 돌아갈것 같다고.
응급실 입구 앞에서 넷이서 마치 작전회의를 하는 농구선수들처럼 둘러서서 이 슬프고 기가 막힌 상황들을 의논하다 보니 생각보다 담담하게 또 현실에 적응해서 다음을 준비하게 되었다.
둘러 싼 언니들, 오빠의 어깨가 맞닿으니 다시 없는 기운도 짜내게 되었다. 모두들 나와 똑같은 기분일 터이니 어느 한 어깨가 무너지면 와르르 다같이 무너질거라는 것을 너무 잘 안다. 엄마는 눈을 뜨고 알은 체를 하지 않았지만 독수리사남매의 덤덤하고 단단한 눈빛들 속에서 다시 기운이 쏟아났다.
다시 병원에서의 일정으로 맞추어 돌아가자고 했다.월, 수 오전, 금 종일에는 큰언니. 화, 목 오전과 토 낮동안에는 작은 언니. 월, 화, 수, 목 저녁타임과 토 밤에는 나, 금, 토를 뺀 밤 불침번은 오빠... 이런 식이 병원스케쥴이었다.
"언니, 니는 오늘 있는 날이니까 지금 형부랑 점심을 먹고 온나. 그동안 내가 응급실에 있다가 언니오면 교대하고 집에 갔다가 저녁에 다시 오께. 그라마 다시 언니는 돌아가고.
주야, 니는 다시 병원에 가서 링겔을 맞든 약을 먹든 장염을 나사가 낼 저녁에 교대해주고. 개안나? 니!"하고 농구부 코치처럼 작은언니가 일사분란하게 지시했다.
"어, 약 먹었더니 인자 살만하다."
"우야 니는 오늘부터 다시 가게 마치면 잠은 병원서 자야 될끼니까. 필요한 거 지금가서 챙겨서 차에 실어놓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