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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주 Nov 20. 2021

마지막 입원

죽는 일상의 기록(7)

기어이 내가 먼저 탈이 났다.

지난 주에 급하게 달려가 맞은 코로나 백신 교차 접종 후유증인 줄 알았더니 장염이란다.

엄마는 새벽에 호흡곤란으로 응급실에 실려갔다.

저혈압 쇼크로 의식 잃었다.

의식 잃 말기암환자의 보호자들에게 의사는 또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당부를 다.



아침 나절에 눈을 뜨자마자 전해 들은 엄마의 응급실행 소식 때문인지, 진짜로 나도 탈이 난건지 알 수도 없게 나는 명치가 찢어질 듯 했다. 

살면서 이런 통증은 또 처음이라 뉴스에서만 보아 온  백신 후유증인 심장관련 병인가 의심부터 되었다. 백신을 맞은 병원에 전화를 했더니 지금 바로 병원으로 오라한다.

그 와중에 의식이 없는 엄마는 또 어찌해야 하나, 어느 병원으로 먼저 뛰어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이러한 순간에도 늘 고민하고 망설이는 나약한 내가 싫어 그저 소리없이 끅끅 울음 삼키며 침대에서 기어내려 왔다.

'아프면 안돼, 나는 아프면 안돼.. 내 정신력아 내 몸이 버텨낼수있게 정신차려라.' 나를 다그치며

잠시 바닥에 쓰러져 있었더니 깐동안 픔이 쉬는 타이밍을 발견했다. 그때에 맞추어 재빨리 정신차려서 동네 내과 병원으로 먼저 .

오늘도 백신맞으려는 대기자가 많아 로비가 꽉찼다. 간호사가 하얗게 질린 나를 일단 좀 누우라며 주사실에 눕혀 주었다. 대기환자가 많다고 좀 기다리라더니 30여분이 흐른 뒤,

의사가 주사실로 왔다. 증상을 듣고 내 배를 꾹꾹 누르더니 장염이라며

"링겔 한 대 맞고 가세요~ 백신 후유증은 아닙니다." 한다. 심장관련 질환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며

"아, 지금은 안 되고요. 오후에 와서 다시 링겔 맞아도 되나요?" 하고는 우선 약만 받아 먹고 병원을 뛰쳐 나왔다. 살면서 장염이란 병에 처음 걸려 보아서 증상도 몰랐다.


그러고는 도저히 운전을 못 할 거 같아서, 아니 운전을 하다가는 먼 일이 날 것 같아 겁이 났다.

침착하게 택시를 불 탔다. 그 사이에 아무일도 없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원으로 어떻게 갔는지도 기억도 나질 않는다. 도착서 보니 멀리 응급실 앞을 서성이는 오빠가 보였다.


그 모습에 몇 해 전, 의식을 잃은 지 반나절이 된 아빠가 누워 있던 응급실 안으로 차마 걸어 들어 오지 못하고 무릎으로 기어 들어 오던 오빠의 모습이 떠올랐다.

목포근처 어느 섬에 환경 조사를 하러 들어 가려고 배를 기다리다가 아빠의 소식을 전해 들은 지 3

간 반 만에 오빠는 응급실에 누운 아빠의 마지막 모습을 마주했었다. 거의 1년만의 재회 마지막이라니, 오빠는 내내 한이 되었으리라. 

그 이후로 오빠는 백수가 되기로 스스로 작정을 하고 서울 살림을 몽땅 정리해서 혼자 된 엄마에게, 우리에게 다.

아직은 아니야. 아니야. 하고 고개를 저으며 데없는 생각은 떨쳐 버리고 발걸음을 돌렸다.



엊저녁에 11시까지 엄마와 함께 있었다. 기운 더욱 없음식물을 삼 유난히 힘들어 했다. 그래도 먹어야 기운이 난다는 신념으로 엄마를 앉혀 미음을 한 숟가락 입에 넣어주니 힘겹게 삼키고는 엄마는 고개를 위로 쳐 들었다. 음보는 행동이어서

"왜 안 넘어가? 물 주까?" 하며 급히 등을 쓸어내리고 목을 받쳐주니 다시 고개를 내린다. 미음 한술이 이리도 힘겨운 엄마를 지켜보았다. 엄마 기운은 없지만 단단한 눈빛으로 나를 빤히 쳐다 본다.

"누워" 

"어, 알았어. 눕혀줄께. 좀 있다 먹을 수 있겠으면 말해." 귀에 대고 속삭였다.

휴대폰에서 오빠가 가게서 출발한다는 톡이 왔다. 엄마의 손을 잡고 엄마 눈 앞에 앉았다.

"오빠 출발했대. 머를 이렇게 하나도 못 먹어서 우짜노. 머 먹고 싶은 거없어? 먹을 수 있겠는 거 말해. 내일 내가 해 올께. "

엄마는 대답없이 내눈만 빤히 쳐다본다.

"오빠오면 죽 좀 먹어래이. 어?"

또 눈으로만 그떡인다. 가만히 한참을 천장만 바라보더니 엄마가 가냘픈 목소리로

"족발." 한다.

"어? 족발? 족발 먹고싶어? 잠깐만" 하고는 후딱 오빠에게 전화를 했다.

"어디쯤이고? 엄마가 갑자기 족발이 먹고싶다는데 오는 길에 살 데 있겠나? 아니면 내가 배민으로 주문해놓고 갈께. 먹을 수 있을란지는 모르지만. "

"먹고싶다니까 믹서기에 갈든지 으깨든지 해서 함 줘보자." 그새 오빠가 멀리까지 왔을까봐 다급하게 얘기했다.

"알았다. 내 다 와간다. 있어 봐라." 하고 좀 있다가 오빠가 왔다. 근처 족발  다 들려보았는데 문이 닫혔드라며, 어차피 문 닫아서 배달도 안 될꺼라며, 낼 낮에 족발시켜서 함 줘보자 했다.




그러고 왠지 족발을 못 주고 집으로 가는 길이 내내 발길이 떨어지지가 않더니, 새벽에 오빠가 불안해서 엄마 침대옆에서 졸고 있엄마 숨소리가 너무 거칠고 호흡이 가끔 끊어지는 느낌이 들어 급하게 119를 불러 응급실 왔단다. 엊저녁에 음식을 삼키려고 고개를 드는 게 숨을 쉬기 힘들어 그랬던건데 자꼬 먹지 못 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내가 한없이 바보같았다.

마침 지난 주에 병원갈 때 왔던 그 구급대원이 와서 엄마를 알아보고는 지난 주에 외래가시더니 이게 먼 일이냐고 하며 위로해주었단다.


응급실 대기실에 큰언니와 큰형부가 먼저 와 있었다. 장염이라더니 괜찮냐고 큰형부가 물었다.

안부를 전할 겨를이 없이 응급실 안에 있던 작은언니에게 대하자고 했다. 엄마부터 봐야 겠다 했다. 

"링겔 꼽을 데가 없어서 목에다가 바늘 꼽아났데이. 놀라지마래이. 의식은 없는데 한번씩 손을 휘저서 줄을 땡기면 피 쏟을지 모르니까 잘 지켜봐야 된데이. " 그러면서 수혈을 몇 통이나 고 한다.



창백한 엄마 몸에 전기줄이 대여섯개 엉켜 있다. 앞섭도 정신 없이 풀어 헤쳐져 있다. 담요를 끌어다가 얼른 덮어 주고 풀어진 앞섭을 매만지며 찬찬히 몸을 훑어 보니 여기저기 급한 처치를 하느라 가슴팍도 손등도 어깨도 멍 투성이다.

눈길이 오른쪽 목덜미에 가는 순간 주저 앉고 말았다. 목에는 핏자국과 푸른 멍자국이 범벅이 된 채 그 위를 투명 테이프로 겨우 주삿바늘을 고정시키고 그 위를 언니가 손수건으로 받쳐 살에 닿지 않게 해두었다.

창백한 엄마의 손을 잡고 엄마의 차가운 볼을 스다듬었다.

"엄마, 주야 왔어." 답이 없다.

대답이 없는 엄마를 확인하고서야 눈물이 나왔다. 눈을 떠서 알은 척을 해주었다면 다시 눈물을 훔치고 더 단단해질 자신이 있는데 눈을 뜨지 못하는 엄마의 얼굴을 계속 붙들고 있으려니 하염없이 눈물만 .

정신을 차려 의사든 간호사든 누구든지 붙들고 무슨 상황인지 질문같은 도움을 청했다.

"병실로는 언제가요?" 울다 생각난 말을 그냥 내 뱉았다. 수술복에 슬리퍼를 꺾어신은 내 아들뻘은 되어보이는 어린 의사에게 마치 엄마를 잃어버리고 길을 잃고는 말하는 법도 잊어버린 한없이 여리고 불쌍한 아이처럼 물었다.

의사는 무슨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혈압이 너무 낮아서 사진을 찍을 수가 없어서 혈압이 돌아 오기를 기다리는 중이라 했데, 아이가 된 44살의 나는 그 말들을 도대체 다 알아 들어먹을 수가 없었다. 저 기다리고 있다. 엄마가 돌아와 나를 찾아 주기를. 나와 눈을 마주치며 눈인사해주기를.

엄마의 퉁퉁 부은 발이 너무 차갑다. 발등에는 주사 바늘구멍 자국이 여기저기 움푹 패여있다.

담요를 또 끌어다 발에 덥어주며 아이처럼 울며 앉아 있었다.

다시 김천으로 출근하러  하는 큰형부가 가기 전에 엄마 얼굴을 보고 가겠다고 나오라고 전화가 왔다. 그제서야 눈물은 닦았지만 그세 엄마가 어디로 가버릴까 봐, 아이처럼 보채며 알은 체도 안하는 엄마의 귀에 대고 "차서방이 엄마보러 온대. 주야도 좀따 다시 올 꺼니까 어디 가지말고 여기 딱있어. " 했다. 응급실 밖으로 나오니 햇살이 따워서 눈이 부셨다. 따가운 햇살에 눈물을 감출 수 있어 다행이다.




넷이서 응급실앞에 섰다. 번갈아 교대하며  다니느

라 넷이서 모두 한자리에 마주하기는 처음인듯 하다.

새벽부터 병원에 있으며 지금껏의 상황과 의사들의 치료과정을 작은 언니와 오빠가 차례로 전했다.

의사가 이번  힘들거 같다고 했단다. 사실은 새벽에만 해도 쇼크상태에서 혈압도 너무 낮고 호흡도 불규칙하고 의식이 없어서 오늘을 버텨낼까 했단다. 그런 환자를 겨우 호흡만 살려 놓은 상태라고 혈압을 올리려고 이 한 여름에 온풍기를 틀어서 보온담요를 덮어 두었다고. 혈압이 올라오긴 했는데 아직은 사진을 찍고 하기에는 위험하니 혈압이 돌아 오면 다시 여러 조치를 하겠다고 했단다.


넷이서 마주하고 둘러서서 담담하고도 차분하게 상황을 이야기했다.

제 이것이 엄마의 마지막 입원이라고.

앞으로 엄마는 다시는 엄마 집으로 못 돌아갈  같다고. 

응급실 입구 앞에서 넷이서 마치 작전 회의를 하는 농구선수들처럼 둘러서서 이 슬프고 기가 막힌 상황들을 의논하다 보니 생각보다 담담하게 또 현실에 적응해서 다음을 준비하게 되었다.

둘러 싼 언니들, 오빠의 어깨가 맞닿으니 다시 없는 기운도 짜내게 되었다. 모두들 나와 똑같은 기분일 터이니 어느 한 어깨가 무너지면 와르르 다같이 무너질거라는 것을 너무 잘 안다. 엄마는 눈을 뜨고 알은 체를 하지 않았지만 독수리사남매덤덤하고 단단한 눈빛들 속에서 다시 기운이 쏟아났다.


다시 병원에서의 일정으로 맞추어 돌아가자고 했다. 월, 수 오전, 금 종일에는 큰언니. 화, 목 오전과 토 낮동안에는 작은 언니. 월, 화, 수, 목 저녁타임과 토 밤에는 나, 금, 토를 뺀 밤 불침번은 오빠... 이런 식이 병원스케쥴이었다.

"언니, 니는 오늘 있는 날이니까 지금 형부랑 점심을 먹고 온나. 그동안 내가 응급실에 있다가 언니오면 교대하고 집에 갔다가 저녁에 다시 오께. 라마 다시 언니는 돌아가고.

주야, 니는 다시 병원에 가서 링겔을 맞든 약을 먹든 장염을 나사가 낼 저녁에 교대해주고. 개안나? 니!" 하고 농구부 코치처럼 작은언니가 일사분란하게 지시했다.

"어, 약 먹었더니 인자 살만하다."

"우야 니는 오늘부터 다시 가게 마치면 잠은 병원서 자야 될끼니까. 필요한 거 지금가서 챙겨서 차에 실어놓자"

그렇게 일정을 조정하고 병원에 남을 큰언니를 빼고 우리 셋이 작은 언니차로 움직이기로 하고

큰언니가 식사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작은언니는 응급실 안으로, 나랑 오빠 잠시 응급실 앞에서 멍때리며 앉았다.




간간히 구급차가 와서 흰 우주복같은 옷을 입은 구급대원이 급하게 환자를 의사에게 전달하고 가는 비일상적인 모습을 봄날의 아지랑이인냥 평화롭게

멍하니 둘이서 한참을 쳐다 보았다.

누군가는 살기 위해 병원에 오고, 또 누군가는 그를 살리려고 분주하고, 또 저 자동문 너머에 누군가는 의식도 없이 죽어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비현실

적인 사실 그저 멍하니 넋을 놓고 있었다.

그러다 오빠가, 말 많은  부잣집 외아들의 생존본능처럼 어설픈 속내를 잘 드러내놓지 않는 오빠가 입을 떼었다.

"엊밤에 니 가고나서부터 엄마 상태가 급격하게 안 좋아 지더라고. 응급실에 와서도 의사들이 오만 거 다  싸의식이 안 돌아올거 같더니. 아직 시간을 좀 더 주려는 갑다. 엄마가..." 하고 낮게 웅얼거렸다.

그러고는 가장 가까이서 오래 지켜본 오빠가 마치 잠꼬대처럼 만히,

"엄마 진짜로 많이 아데이. 참기 어려울 낀데 참고 있는 거데이." 한다. 봄날의 아지랑이같은 저 방지턱너머시선을 돌렸다. 우리팀은 무너지면 안 되니까. 담담한 눈빛을 지켜야 하니까.



작은언니가 우리 동네 내과 앞에 내려주었다. 버티지말고 더 아프기 전에 링겔 한 대 맞으라고 단단히 일렀다.

링겔을 맞으며 카톡에 집중했다. 엄마는 아직 의식이 완전히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저녁답에는 일반병실로 올라갈 것 같다는 소식이 들렸다. 병실 번호도 미리 알려 주었다며 오늘 밤안에는 10

응급병동으로 갈 것 같다했다. 그린라이트이길 굳게 믿으며 링거액이 떨어지는 것을 쳐다 보았다.

언니들 말을 듣기를 잘했다. 링거를 한대 맞고나니 한결 몸이 가벼웠다.

내일 오후에는 내가 병원으로 가겠다고 카톡을 했다.




다음 날 병실에서 다시 만난 엄마는 눈을 뜨고 알은 체 했다. 나는 엄마 손 위에 내 손을 포개어 두고 침대 머리맡에서 한 순간도 떠나지 않기로 다짐을 하고 엄마와 눈을 맞추었다.

함께하는 이 단 한 순간도 놓치기 싫었다.


"엄마~ 엄마~ 엄마, 보고싶어." 엄마가 엄마의 엄마를 찾았다. 언니들이 의식은 돌아 왔지만 정신은 어디에 가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라 했다.

눈을 뜰 수 있는 엄마에게 감사했지만 어디에 가 있는지 모를 엄마가 그리웠다.

"엄마한테 갈래. 나 인제는 엄마한테 갈래. 나 좀 데려가 줘." 하고 애기처럼 투정했다.

44살 내인생을 통틀어 처음보는 엄마였다. 아파하고 못 견뎌하는 모습도 낯설었지만, 그것은 육체의, 껍데기의 모습뿐이었다. 정신은 오롯이 엄마였다. 고집부리고 먹지않는다고 식사를 물리는 엄마는 깡 마르고 해진 육체를 덮어 썼어도 엄마는 엄마였다.

엄마의 엄마에게 가겠고 하는 지금의 엄마는 완전히 내가 모르는 사람이었다.

손을 더 꼭 잡았다.

엄마 눈 속까지 깊이 파고 들어가도록 엄마를 깊숙이 바라보며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 엄마를 위로해 주고 싶었다.

'다 괜찮을 거야. 다 괜찮아. 엄마. 그래. 다 괜찮아질꺼야.' 으로 되뇌이며

"이제 안 아프게 해 줄꺼야. 조금만 참아 보자." 하고 말로는 절대 할 수 없는 의미없는 위로만을 전했다.


전 날 밤에 응급실에서 응급동으로 올라와서 계속 정신이 흐릿한 엄마를 언니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위로했다.

큰언니는 엄마의 정신이 흐릿한 소리를  하나하나 가만히 귀담아 들어 주었고

작은언니는 이렇게는 엄마를 못 보낸다고

"엄마 니는 우리 두고 아무데도 못 간다." 고 협박 했.

오빠는 어젯 밤에 악다구니를 치며 나를 죽여

달라고, 이거는 아니야~~ 를 외치며 살고 싶지가 않다고 병실이 떠나 갈 듯 소리치는 엄마를 달래어 잡으며, 진짜 속으로는

'그래, 소리 실컷 질러 뿌라. 엄마 화나고 억울한거 다 소리치고 내뱉았뿌라.' 하며 악다구니 지르는 엄마를 말리고 싶지 않더라 했다.

밤새 자지 않고 정신없는 소리를 떠들어 대어도, 한참을 죽여달라고 악다구니를 쳐도 병에 어느 한 사람, 불평하지 못 하는 밤이었단다.


요란한 밤을 보낸 다음날 오후의 병실은 고요했다. 엄마 목에는 여전히 주사 바늘이 꼽혀 있고 심장과 손가락, 코에는 여러 장치가 연결되어 있었다. 간성혼수라는 것이 있단다. 엄마는 그래서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것이라 했다. 그래도 엄마는 버티고 있었다.

가끔씩 정신이 돌아올 때, 가만히 나를 불렀다.

"주야."

"응?"

가만히 나를 빤히 쳐다 보았다.

"엄마 인제 되었다. 괜찮다. " 했다.


차리리 죽여 달라고 소리지를 때는 견딜 만했다.

"나쁜 년들, 이건 아니야. 이게 머야!" 하고 욕을 하면서 그냥 나를 곱게 보내달라고 이런 치료

따위 아무것도 하지마라며 엄마 몸에 연결된 줄들을 떼어 내려 해도 암치 않았다.

가만히 나를 빤히 들여다보며 내 눈빛을 읽어 내고 있는 엄마가 더 무섭고 두려웠다. 온전한 정신으로 떠날 준비를 하는 건지 불안해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고요하게 마음을 다 잡아 어디론가 떠나려고 하는 것 같아서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마법의 주문처럼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를 되뇌일 뿐이었다.


어차피 치료의 목적의 줄은 하나도 없었다.

치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더이상 없다 했다.

그래도 손가락의 산소포화도 재는 줄, 심박수를 측정하는 줄이 떨어질 새라, 계속 매만진다.


그저 각자의 방법으로 지켜 볼 뿐이었다.

손 쓸 수 없이 그 지켜봄이 더 처연하고 서러울 뿐이었다. 우리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바람이 부는데... 엄마는 살고싶지가 않은가보다.

바람이 분다. 나는 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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