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원 Dec 10. 2023

첫사랑 딸

관계: 아빠

쿠크다스는 나에게 특별하다.     

내가 좋아하는 과자 중 하나이기도 하고,  

그 과자를 보면 항상 아빠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내가 쿠크다스를 처음 만났을 때가 기억난다.     

아마 내가 유치원 들어가기 전이거나     

유치원생 이거나 그때쯤인 것 같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그때 아빠는 다른 지역에서 일하셔서     

집에 자주 오시지 못했다.     

가끔 오셔서 며칠 있다가 가셨는데     

아빠가 오시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었다.                    

하루는 아빠가 오시는 날이었는데     

늦게까지 오시지 않아 먼저 잠이 들었다.     

아주 늦은 밤 아빠의 인기척에 벌떡 일어나니     

빨간 상자와 함께 아빠가 방문 밖에 계셨다.     

그런데 나를 보시곤 당황해하셨다.               


“아이고 깼구나. 근데 이를 어째.     

아빠가 급한 일이 생겨 다시 가봐야 하는데... “               


아빠는 빨간 상자를 나에게 안겨주시고는     

미안하다 사과하시며 바로 떠나셨다.     

오랜만에 보는 아빠였는데 바로 가버리시니     

나는 너무 속상해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에게 남겨진 빨간 상자.     

그게 바로 쿠크다스였다.                  


그 당시에도 빨간색 상자에 포장되어 있었는데     

그런 상자에 든 과자를 처음 먹어봤던 것 같다.     

떠나간 아빠 때문에 슬펐지만     

처음 먹어본 과자의 맛은

슬픔을 잊을 만큼 황홀했다.                   


그 뒤로 아빠는 항상 쿠크다스와 함께 오셨다.     

어느 날은 아빠가 오시자마자 쿠크다스부터 찾으니     

쿠크다스를 반기는지 아빠를 반기는지     

모르겠다고도 하셨다.



                              

다정한 아빠     


동생들이 태어나기 전에 여행을 참 많이 다녔다.     

여행의 기억이 온전하지는 않지만

그 당시 아빠와 나눴던 순간의 대화들이며,     

인상 깊었던 상황들이 추억이 되어 남아있다.


특히 아빠의 다정함을 기억한다.         


한 번은 배를 탔는데 멀미가 심하게 났었다.     

배 갑판에서 갑자기 토기가 느껴졌고,

그때 아빠가 두 손을 모아 입 근처에 가져다 대셨다.     

급한 나머지 아빠 손에다 실례하고 말았는데     

엄마는 한껏 화가 나서 성질을 내셨고,     

아빠는 아무 말 없이 다 정리하시고는     

눈치를 보는 나를 괜찮다 달래주셨다.                   


그날 우리가 어디를 갔었는지 무엇을 했는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아빠 손에 토하고 나를 달래주시던     

아빠의 다정한 모습만은 선명하다.                  


이것도 동생이 태어나기 전 기억인데

식사 전에 이제 내가 어느 정도 컸으니

생선을 혼자 먹을 줄도 알아야 한다며

도와주지 말라고 엄마가 아빠에게 단단히 일렀다.     

그런데도 그날, 갈치의 뼈를 다 발라서

나의 밥 위에 몰래 올려주셨다.

그때 엄마에게 핀잔을 들으며

머쓱하게 웃으시던 아빠의 모습을 기억한다.     


나는 학창 시절 아빠에게 열심히 공부하라는     

소리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성적표를 보여드려도 별말씀 없으셨다.     

그래서 내 성적엔 아무런 관심이 없는 줄 알았다.     

고등학교 때 반에서 처음 1등을 한 날     

성적표를 받자마자 아빠에게 전화를 드렸는데,     

‘그래, 잘했네.’     

무미건조한 대답뿐이셨다.           


그날 밤, 갑자기 잠깐 아빠 차로 나와보라고     

전화가 와서 나갔더니 트렁크에서     

내가 그토록 갖고 싶어 했던 새 CD플레이어를     

아무런 말 없이 꺼내어 안겨 주셨다.     


아빠는 맛집을 다녀오시면

항상 우리를 데려가 주셨다.

고등학생 때 처음 맛본 바닷가재 코스 요릿집,

무한리필 대게 집, 한우갈비 집...

아빠와 같이 갔던 맛집 기억이 한가득하다.              


잘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반수 하겠다고 했을 때,     

반수에 실패하고 다시 원 대학으로 복학했을 때,     

갑자기 대학원을 간다고 했을 때,     

졸업하고 임용시험 준비로 집에만 있을 때,     

아빠는 나의 결정에 싫은 소리 한번 없이

누가 뭐라 하든 묵묵히 지지해 주셨다.     


아빠는 그랬다.

말로 '사랑한다.', '잘했다.', '믿는다.',

직접적으로 해주신 적은 없지만

행동 하나하나에 그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첫사랑 딸     


나는 애살스러운 딸은 아니다.

그 아빠의 그 딸이다.

아빠가 보고 싶은 날이 자주 있지만

아빠에게 직접 말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맨날 아빠가 없는 곳에서 한다.

"아, 오늘은 아빠가 무지 보고 싶다."

이 말은 정작 남편이 더 많이 들었다.     


아빠는 여전히 다정하시다.

이번 주만 해도 한우 불고기 맛집이 있다며

나와 아들을 데려가 주셨다.     


"아빠, 나 요즘 글을 좀 쓰고 있어서요.

저는 아빠에게 어떤 딸인가요?"     


옆에 함께 있던 동생들이 웃었다.

다들 질문 유경험자이다 보니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했던 것이다.

다들 아빠의 대답을 기다리며 집중했다.     


"어떤 딸이긴. 내 첫사랑이지. 내 첫 아이, 첫 딸."     


나와 내 동생들 모두 아빠의 대답에 놀랐다.

우리가 아는 아빠라면 쑥스러워하시며

피상적인 대답을 할 거라 예상했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애정 어린 표현이었다.


이것은

아마 내가 기억할 수 있을

아빠가 최초로 말로 한 사랑의 표현이 될 것 같다.





이전 07화 종합세트 언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