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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원 Dec 31. 2023

편하지 않은 며느리

관계: 시부모님

결혼 9년 차,

나는 이제껏 시댁에서 설거지를 한 적이 없다.

“나는 설거지 같은 건 할 수 없다!! “

라고 생각하고 의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다.


며느리라면 시댁에서 집안일을 으레 해야 한다

생각했던 부류 중 하나였다.

그래서 요리는 못하니 뒷정리와 설거지는 하겠다고

나섰지만 시부모님께서 극구 말리셨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편하게 있어.”


초반에는

“어머님 제가 할게요.” 말이라도 했었는데

이젠 어머님이 차려주시는 밥을 맛있게 먹고

소파에 가서 가만히 앉아 있는다.


이 이야기를 주변에 하면 다들 놀란다.

내가 속한 세대는 애매한 세대이다 보니

우리 시부모님 같으신 분들이 드물다.

명절 증후군, 김장철 스트레스와 같은 것을

한 번도 겪어 본 적이 없으니

그런 면에서 나는 참 복이 많다.



좋은 시부모님


시부모님은 나를 엄청 예뻐하셨다.

특히 시아버님이 나를 예뻐하셨다.


과거형으로 말하는 이유는

지금도 물론 어느 정도 예뻐하시지만

결혼 초반에 꿀이 뚝뚝 떨어지는

그 정도는 아님이 확실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결혼하고 처음 2년 정도

우린 주거지가 딱히 없었다.


중등교사는 지역별로 선발하는데

지역별 교과 선발 인원도 다르다.

나는 일반사회 교과로

선발 인원이 많은 과목은 아니었다.

그래서 어느 해, 어느 지역은

과목 선발 인원이 0이기도 했다.

보통 거주지역에 응시하지만

이런 사정상 다른 지역으로 응시하기도 하는데

내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거주지역에서 그나마 가까운 지역이긴 하나

워낙 넓으니 어떤 곳은 출퇴근이 불가했다.

첫 발령은 아주 먼 곳이었다.

그래서 학교 근처 작은 빌라에서 자취를 했었다.

그 와중에 결혼을 했고

특정된 신혼집 없이 우린 주말 부부가 되었다.

남편이 주말에 내가 있는 곳으로 오기도 했고

내가 가기도 했는데 그럴 때는 시댁이나 친정이나

골라서 머물러야 했다.

어른들 입장에선 신혼부부가 떨어져 지내며

발생하는 이런 상황들이 아주 안타까우셨을 것 같다.

“임용시험을 다시 한번 쳐보는 건 어떠냐?”

시아버님이 말씀하셨다. 그냥 웃음으로 넘겼다.

하지만 한두 번 반복될수록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재합격률이 가장 높은 시험이 공무원 시험이라더라. OO 지역으로 다시 시험 쳐보지.”

“에이~ 아버님, 임용시험이 운전면허 시험도 아니고

그렇게 쉽게 턱턱 붙지 않아요. 호호호.

그리고 저 시험 친지 한참 지나 공부한 거 다 잊었고

무엇보다 이제 더는 공부하기 싫어요. “


그때 나의 대답에 당황하시던

아버님의 표정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나로서는 큰 용기를 내어 그만 이야기하십사

에둘러 말한 것이었다.

앞으로 여러 지역을 옮겨 다녀야 하는 직업 특성상

주말부부의 운명이 어느 정도 예견되니

그 상황들이 애달파 권하신 건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이해되는 것과는 별개로

그 이야기를 듣는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냥 웃음으로 넘기면 계속하실 거 같고

그렇다고 그만 말하시라 기분이 안 좋다 하기엔

무례한 거 같아 고민 끝에 택한 것이

웃으며 부드럽게, 하지만 할 말은 하자였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나니

임용 재시를 더 이상 권하지 않으셨다.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하면서

주말부부를 청산했다.

하지만 그 시기도 찰나였고 내가 복직을 준비하며

거주지를 두고 고민하였다.

시아버님께서는 아이를 키워줄 테니

거주지를 그대로 두고 나만 근무지역으로 가서

지내다 주말에 오는 건 어떠냐고 제안하셨다.

우리 부부 모두 나고 자란 곳이기도 하고

아이의 교육을 고려했을 때나 여러모로

결국 돌아와야 할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어찌 보면 가장 최선의 방법을 제안하신 거였다.

그러나 내가 낳은 내 아이를 뺏기는 기분이 들어

그 당시 너무 서운한 맘이 들었다.

그래서 그때 청개구리 기질이 발현했던 것 같다.

“저는 아이랑 떨어져서 절대 못살아요.ㅠㅠ“

결국 아이와 남편 모두를 데리고 나의 근무 지역

근처에 터를 잡았다.


이런 일을 포함하여 크고 작은 다양한 일을 겪으며

내가 고분고분하고 순종적인 며느리는 아님을

시부모님도, 나 스스로도 깨달았다.



편하지 않은 며느리


지금은 시부모님과 같은 아파트 바로 옆동에 산다.

이 말을 주변에 하면 다들 안타깝게 생각한다.

하지만 난 더 편하다.


솜씨 좋은 어머님이 반찬도 자주 해주시고

아이를 믿고 맡길 수도 있으니 일석이조이다.


가끔 반찬 가지러 가기 귀찮거나

밥 먹으러 가기 싫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때는 아이만 보내던지 남편과 둘이 보낸다.

그동안 난 혼자 쉴 수 있으니 일석삼조이다.


나는 불편한 정도 까진 아니지만

편하지 않은 며느리이다.

가족이긴 하지만 법률로 맺어진 가족이라 혈육으로

맺어진 가족 보단 편하지 않은 게 당연하다.

결혼했다고 해서 ‘우린 한 가족이야!!’

막무가내로 격 없이 편하게 대하고,

그렇게 해서 격이 없어져야만

진짜 가족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시부모님은 나를 존중하며 배려해 주신다.

나도 우리 시부모님을 존중하며 예를 갖춰 대한다.


편한 관계는 서로 무례하기 쉽다.

편하지 않은 관계이기에 서로 조심하고 더 살피며

지금과 같은 좋은 관계가 유지되는 것 같다.


편하지 않은 며느리인 지금,

더할 나위 없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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