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학생
“선생님, MBTI 아세요?”
“그게 뭔지는 알아. “
“해보셨어요?”
“아니 해보지 않았어.”
“그럼 제가 선생님 MBTI를 맞춰볼게요."
"그걸 추측할 수도 있는 거야?"
다른 아이들이 말했다.
"선생님, 얘 진짜 잘 맞춰요.
지금까지 모든 사람의 MBTI를 다 맞췄어요."
"오~ 그럼 한번 맞춰봐 봐. 난 뭘꺼 같아?"
"음... ISFJ! ISFJ일 거 같아요."
"ㅋㅋ 그래 테스트해 보고 맞는지 말해줄게."
MBTI 테스트가 한창일 때
학생 한 명이 나의 MBTI를 추측해 주었다.
그때까지 그런 게 있다고 알고만 있었지
테스트를 해봐야겠다는 의지가 전혀 없었다.
사실 혈액형별 특징 같은
신빙성이 희박한 심리테스트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주변에서 막 성화일 때 잠시 해볼까 했지만,
문항이 너무 많아 귀찮아서 포기했었던 것도 있다.
그런데 학생의 추측이 진짜 맞는지 궁금해서
의구심과 귀찮음을 이겨내고
시간을 내서 테스트해 보았다.
그 결과...
ISFJ
그 아이의 통찰력이 놀라웠다.
그리고 ISFJ의 특징을 살펴보며
학생들에게 보이는 나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ISFJ의 특징>
1. 예의 없거나 무례한 사람 극혐
2. 자신만의 선이 확실. 하지만 선은 관대
3. 친해지는 데 오래 걸림
4. 생각이 너무 많음
5. 소심한 내적 관종
6. 갈등 상황 싫어해 최대한 타인에게 맞춰줌
7. 조직에 잘 적응하나 리더는 부담스러움
8. 높은 공감 능력
9. 자신에게 엄격, 타인에게 관대
10. 상처를 잘 받고 뒤끝이 김
11. 눈치를 많이 봄
⦙
너무나 나의 모습이었다.
이때부터 MBTI를 어느 정도 믿게 되었다.
새 학기가 되어 첫 수업을 들어가면
꼭 하는 활동이 있다.
과목 소개, 수업 시간에 지켜야 할 규칙 정하기.
수업 시간에 지켜야 할 규칙의 틀은
내가 먼저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말한다.
그 규칙들은 정말 기본 중에서 기본들이다.
1. 수업 시작 전 교과서 미리 준비하기
2. 수업 시간에 떠들지 않기
3. 수업 시간에 자지 않기
4. 수업 시간에 돌아다니지 않기
5. 숙제 제시간에 해오기
규칙을 먼저 말하고 아이들에게
만약 지키지 않을 시 벌칙을 함께 정하자고 한다.
아이들은 종종 벌칙으로
맞기, 벌서기, 청소하기 등을 말한다.
하지만 난 평화주의자라
그런 벌칙은 정할 수 없다 말하고는
아이들이 살짝 수치스럽지만
재미있다고 할 규칙들을 제안한다.
노래 한 곡 하기, 무반주 댄스,
선생님께 애정의 편지 쓰기 등의 제안을 하면
아이들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우수수 쏟아져 나온다.
내 생각에 난 편한 선생님이다.
아이들이 선을 넘지 않는다면!
그 선이라는 것을 정의하기 참 어렵지만
기본 예의가 근본이 된다.
편하지만 쉬운 선생님이 되지 않기 위해서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현재 진형형)
그러기 위해서
아이들과 나 사이에 선이 존재해야 하고,
그 선은 서로에 대해 예의를 지키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선을 지키는 선에서
나는 한없이 관대하지만,
그 선을 넘어서는 순간...(이하생략)
중고등 아이들은 덩치는 컸지만,
아직 미성숙한 존재이다.
물론 어른인 나는 성숙하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만도 않다.
하지만 나는 더 많은 경험을 한 어른이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에게 가장 강조하고,
가르치고 싶은 것은 ‘예의’이다.
그 예의의 기본은 ‘인사’라고 생각한다.
요즘 아이들은 인사하는 것이 인색하다.
아침에 출근길에 만나면
먼저 인사하는 학생이 반
그냥 쳐다보고 지나가는 학생이 반이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 ‘죄송합니다. ’등의
인사도 잘하지 않는 아이들이 태반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제발 인사를 잘하라고 부탁한다.
가장 쉬운 인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고 누누이 이야기한다.
그리고 인사를 하지 않는 아이들을 자주 지적한다.
그 아이의 잘못을 혼내기보다는
모르거나 놓치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인데
과연 아이들은 내 맘을 알까?
그저 인사와 예의에 집착하는
꼰대로 생각하는 건 아닐까?
혼자 소심히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아니면 누가 알려줄까 싶어
나름의 사명감을 가지고
예의 전도사로서의 길을 가고 있다.
또 나는 낯가림이 있어
아이들과 친해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우스갯소리로 아이들에게
난 3학년이랑 제일 친하다고
1학년은 만난 지 얼마 안 돼서 어색하다고 한다.
반 이상 진심이다.
3년 동안 보아온 아이들과는
내적 친밀감이 쌓여 어느 정도 친하지만,
갓 입학한 1학년 아이들에게
의도치 않게 데면데면하다.
그런 1학년 들 중
막 친근하게 다가오는 아이들은 경계하게 된다.
절대 그 아이들을 싫어해서 그런 것이 아닌데
이런 내 맘을 알 길이 없으니
나에게서 벽을 느낀 아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이 장벽을 뚫고
나와 친해지는 아이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
이런 점을 좀 고치고 싶은데 여전히 쉽지 않다.
내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학부모가 된 지금, 느끼는 바가 있어 결심했다.
친근한 선생님이 되자!!
과연 지켜질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앞으로 새 학기에 첫 수업에서
한 가지 이야기를 더 추가하려고 한다.
그건 바로 나의 MBTI인 ISFJ.
MBTI 맹신자는 아니지만,
나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에게
나를 소개하는 쉬운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나의 MBTI를 맞춘
통찰력이 뛰어난 학생은
과연 나를 제대로 이해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