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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김순호 시

대전 부르스

신작 시

by 김순호



대전 부르스 / 김순호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모르겠다 한 밤

중 산책길에 이 노래가 왜 맴돌았는지


그것은 먼 곳에서 바위가 무너지며 울려오는 발파음 같았

다 밀려온 진동은 가슴골 벽을 두드리고 나는 희미한 가사

를 한 음절 한 음절 떠올려 재미 삼아 녹음해 들어본다


방언 같은 웅얼거림은 갑자기 열어젖힌 냉동고에서 기

어 나오는 냉기처럼 허옇게 꿈틀거리며 피어오른다 죽은 영

혼의 독백인 듯 툭툭 터져 나온다 묻어버린 푸른 그림자를

찢는 지친 떠돌이의 탄식처럼 신음한다


젊은 날 대전 친구 집에 일주일 신세를 진적이 있었다 돈

이 없는 난 목척교를 끼고 흐르는 천변에 홀로 선 '신도극장'

으로 밤마다 빨려 들어가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거꾸로 물에

빠져 몸부림치는 네온사인을 바라보고 앉아 기적처럼 울리는

대전 부르스를 듣고 또 들었다


앞이 보이지 않던 날들이었다 그때 박힌 쇠 못들이 붉게 삭고

삭아 떨어져 나왔으리라 그랬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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