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 ) 닫힌 문 앞에서
문(門)을 암만 잡아당겨도 안 열리는 것은 안에 생활(生活)이 모자라는 까닭이다.
밤이 사나운 꾸지람으로 나를 조른다. 나는 우리 집 내 문패(門牌) 앞에서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나는 방 속에 들어서서 제웅처럼 자꾸만 감(減)해 간다. 식구(食口)야 봉(封)한 창호(窓戶) 어디라도
한구석 터놓았다고 내가 수입(收入) 되어 들어가야 하지 않나. 지붕에 서리가 내리고 뾰족한 데는
침(鍼)처럼 월광(月光)이 묻었다. 우리 집이 앓나 보다 그러고 누가 힘에 겨운 도장을 찍나 보다.
수명(壽命)을 헐어서 전당(典當) 잡히나 보다. 나는 그냥 문고리에 쇠사슬 늘어지듯 매어 달렸다.
문(門)을 열려고 안 열리는 문(門)을 열려고.
문을 암만 잡아당겨도 안 열린다는 것은 문이 잠겨서가 아니라 닫힌문을 열고 선뜻 들어가기가 두려운
가장 (家長 )의 궁핍이 표현된 글이라 내 마음을 붙잡고 놓칠 않았다. 해법도 없는 삶의 고단함이 느껴져서일까 나는 오래도록 이 시에 눈을 박고 헤어나질 못했다. 고비고비 숨차게 뛰어도 끝나지 않는 한 가정의 의무, 그 경제력을 짊어진 가장의 어깨는 늘 무겁게 짓눌렸을 것이다. 시인이 살았던 시대와 달리 현대는 여성들이 함께 짐을 나눠지면서 가장의 애환이라고만 할 수없게 됐지만 인생의 최고 정점인 중년을 일부를 제외하곤 대부분 이렇게 흘려보내고 있을 것이다.
어느 날 잠시 굽어진 등을 펴고 일어서 뒤돌아섰을 때 비로소 보이는 인생, 그제야 삶을 지배한 건 정신이 아니라 경제였음을 알게 된다. 누구도 물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삶, 그것은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도 하지만 한없이 기를 죽이기도 피폐하게도 한다.
백 년 전 어제가 그랬고 백 년 후 내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미래를 모른다. 그것이 내일을 꿈꾸고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이다. 다행히 지쳐있는 영혼에게 위로가 되는 모든 예술은 극도의 궁핍에서 창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