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탈출행렬

by 리틀래빗

오늘도 신규 직원이 면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1년 사이 그 팀에서 벌써 2명이 면직을 했다. 업무를 바꿔주겠다며 회유도 했지만, 결국 다 필요 없다며 그만두었다고 한다. 민원이 많은 팀이었는데, 안 해주면 ‘안 해줬다’고 시달리고 학연, 지연, 혈연 등 온갖 관계를 들먹이며 압박해 억지로 해주게 만든다. 그런데 막상 해주고 나면 ‘규정을 어겼다’며 징계. 아마도 면직을 결정한 그 직원은 유형은 다를 수 있겠지만, 업무만 바뀐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질 리 없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일자리 관련 부서에서 근무할 때 있었던 일이다. 한 민원인이 부서를 찾아와 집기 비품을 집어던지고 고함을 지르는 등 막무가내로 행동했고, 결국 경찰이 출동해 제지하는 사태로까지 이어졌다. 이후에도 그 민원인은 며칠 동안 계속 부서를 찾아와 업무를 방해했다. 공공근로사업에 신청했지만 탈락한 것이 이유였다. 그는 "너 때문에 굶어 죽게 생겼다"고 분노를 터뜨리며, 일자리를 줄 때까지 매일같이 찾아올 거라며 악에 받쳐 소리쳤다.


사실 공공근로사업은 미취업 청년이나 저소득 취약계층에게 임시 일자리를 제공해 생계를 지원하고, 민간 부문의 (재)취업 기회를 돕기 위해 추진되는 사업이라 (재)취업 기회와 경제적 자립 지원이라는 취지에 맞춰 자격 요건이 정해져 있다. 신청자의 재산 상황이나 주소 등 자격이 바뀌면 조건에 부합할 수 없을 수도 있고, 최대 근로기간도 정해져 있어 무한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악을 쓸 정도의 기세와 체력이라면 다른 일자리를 찾고도 남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공공일자리만큼 좋은 일자리가 없기 때문인지 어쨌든 그 민원인은 자신의 처지가 절박하다며 이미 선정된 인원이 모두 찬 상황에서도 채용해 달라고 단체장까지 찾아갔다. 그러자 단체장은 국장에게, 국장은 과장에게, 과장은 팀장에게, 팀장은 담당자에게 "불쌍한 사람이니 어떻게든 챙겨주라"는 지시를 전달했다. 담당자는 원칙상 어렵다고 설명하며 반대했지만, 결국 상부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그 민원인을 공공근로에 억지로 투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담당자는 해 줄 수 있는 방법이 있음에도 해주지 않은 못된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안되는데 욱여넣어 자리를 마련해 준 것이라 당장은 문제가 되지 않으면 조용히 지나가지만, 나중에 문제가 터지면 감사부서에서는 상부의 잘못된 지시면 따르지 말았어야 한다며 담당자만 지적한다. 그걸 누가 모르나. 말이야 쉽지, 과연 단체장 지시를 거절하고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것도 저연차 직원이라면, 더더욱. 결과적으로는 막상 문제가 불거졌을 때는 가장 큰 책임은 고스란히 기안한 담당자에게 돌아간다. 사명감이 급락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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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과 원칙이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된다는 걸 모르는 직원은 없다. ‘큰소리치고 진상을 부리면 다 해준다’는 잘못된 인식이 퍼지고 “저 사람은 해주는데 나는 왜 안 해주냐”는 제2, 제3의 민원이 끊임없이 유발될 것이라는 사실도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럼에도 연차가 많은 직원들조차 쉽게 입 밖에 내지 못하는 말을, 경력이 짧은 직원이 ‘이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문제들이 지금의 젊은 공무원들이 버티지 못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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