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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Z Oct 21. 2023

민물장어의 꿈을 사무실에서 꾼다

신해철의 노래는 순수한 희망의 덩어리다.

마치 누구의 삶이 더 비참한지 시합이라도 하듯 기가 막힌 사연들의 환자들이 줄을 지어 들어왔다.


6개월 시한부 환자는 딱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치아를 원했지만, 그 먹을 수 있을 만큼이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진료라는 걸 알게 되었다. 살기 위함인지 죽기 위함인지 아직 알 수 없는 이 진료는 앞으로도 몇 번의 방문을 필요로 한다. 처음 방문 때는 우리 모두 눈물이 글썽였지만 이제는 그가 잘 먹어서 6개월이 9개월이 되고 12개월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모든 의료진과 스태프가 그를 맞이하고 있다. 우린 그가 살기 위해 진료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말이다.


그가 나가자 케빈의 엄마가 왔다.

아이가 세상을 떠난 지 이제 딱 5개월이 되었다. 자식을 잃은 어미는 어린 딸을 데리고 왔다. 우린 더 이상 눈물을 글썽이진 않고 미소를 주고받는다.  하지만, 그 미소는 늘 슬프고 안쓰럽다. 매번 볼 때마다 그녀의 얼굴이 작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딱 살 수 있을 만큼만 먹고 있지는 않을까? 떠나간 아이를 생각하면 밥이 넘어가지 않을 테고 남은 아이를 생각하면 한 숟가락이라도 들어야 하는 게 지금 그녀가 처한 현실이 아닐까?


그녀가 가자마자 두 노부부가 손을 잡고 들어온다.

70이 훌쩍 넘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두 손을 다니는 모습은 얼마나 다정하고 귀여운가! 하지만 이내 아이가 된 할아버지는 나를 향해 "안녕하세요! 네네 네!"라고 아이처럼 말한다. 치매를 앓고 있는 남편을 보살피는 아내는 그 혼자 집에 놔둘 수가 없어서 그녀가 가는 모든 장소에 그를 데리고 다닌다. 마치 어린아이를 돌보는 엄마처럼 말이다.  아내가 치료받는 동안 남편은 의자에 앉아서 박수를 치고 까르르 웃고 머리를 쉴 새 없이 움직인다.


그는 무얼 보고 박수를 치는 걸까?

그는 무얼 보고 웃는 걸까?

그는 무얼 보고 머리를 흔드는 걸까?

어린아이가 돼버린 그가 지금 사는 세상은 어떤 세상이길래 이리도 해맑을까?

그런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는 지금 어떤 세상에서 살까?


두 시간에 걸쳐 만났던 이들을 한 명 한 명 바라보며 내게 물었다.


너는 어떤 어려움을 미래에 마주할까?

그럼 너는 어떤 모습으로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있을까? 아니 견뎌내고 있을까?

너는 잘 버티고 있을까?

너는 겨우 버티고 있을까?

너는 희망을 가지고 있을까?

너는 이미 포기를 했을까?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뿐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다가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스피커에서 들리는 마왕의 노래에 답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이 너무 푸르고 단풍이 막 지기 시작한 가을날 세상은 너무나 다른 스토리를 지닌 이들이 화음과 불협화음을 함께 만들어내고 있다.


나의 글은 무겁지만 지금 흘러나오는 그의 노래는 위로를 던져준다.

어떻게든 이겨내고 견뎌내며 살아갈 거라고 말이다.


젠장 그는 왜 이리 빨리 죽었나.

조금 더 살았어도 참 좋았을 인생인데...

그가 살았다면 그는 어떤 새 노래로 날 위로했을까?

그는 어떤 새 노래로 타인을 위로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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