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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Z Dec 17. 2023

나에게서 날 구원하소서

우린 생각보다 어리석다. 

학기말 밀린 업무와 함께 학점 똥줄 타는 학생들이 수시로 연락을 하니 정신이 한 개도 없다.  동시에 바쁘게 돌아가는 병원일을 하면서 딸아이 생일파티까지 챙기려니 가장 하고 싶은 글 쓰는 일은 나중의 가장 끝자락에 미뤄야 하는 것이 되었다.  


강의 세 개를 하루에 다 몰아서 하고 나머지 날은 병원에서 일을 하는데 12월 31일에 올해의 보험 혜택이 소진되기 때문에 모두들 미뤘던 치료를 다 받으려 병원에 몰린다. 


사실 미리미리 했으면 숙제도, 과제도, 시험도, 치과 치료도 다 받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인생은 제때에 되는 게 없는 법이고 늘 예상하지 못한 일 투성이며 귀찮은 일은 원래 제때 하지 않고 미뤄 미뤄 마지막이 되어서야  몸과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그래서 12월은 학교도 병원도 가정도 바쁘다. 


그 가운데 시간이 멈춰있는 학생이 있다. 

학기 중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의 학생은 내게 도저히 무엇을 할 수 있는 힘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무력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는 그녀의 말에 약간의 안도감을 느낀 건, 그래도 미래는 조금 나은 상태가 될 거라는 희망을 품고 있는 것 같아서다. 그래서 그녀에게는 숙제와 과제를 최대한으로 연장해 주었다. 


항암을 중단했던 그 환자의 시간도 다른 이가 느끼는 시간과 다르다. 

더 이상 항암을 받지 않겠다던 그는 예약날짜에 올 수 없었다. 응급실에 입원을 했기 때문이다. 그의 몸은 더 이상 그의 의지와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게 되었고 매일 더 약해지고 있다. 그가 올 해를 넘길 수 있을까? 모를 일이다.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크리스마스에 그는 죽음을 마주하고 있다. 


삶은 분명 공평하진 않지만, 상대적으로 수월해 보일 수는 있어도 삶 자체가 쉬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삶 속에서 나는 늘 약자에 서있는 느낌이 드는 건, 나보다 더 거대한 힘이 내 의지와 바람과 계획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음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Jenny Holzer, Protect me from what I want.

Jenny Holzer는 Barbara Kruger와 함께 글귀로 여운을 남기는 개념작가로 유명하다. 물론 작가가 선택하는  간결한 문장의 의미는 현대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느끼고 바라고 원하는 모든 것들을 향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Babara Kruger 가 흑백의 사진과 함께 매거진 포스터 같은 느낌의 작품을 만든다면, Jenny Holzer는 더 긴 문장을 돌 같은 것에 새겨 넣거나 전광판을 이용하거나 번쩍이는 라이트와 대형 프로젝터를 사용하여 전시를 한다. Babara Kruger의 작품은 빨리 읽히기 때문에 작품의 사진을 글과 함께 음미하면서 짧은 문장을 곱씹는다면, Jenny Holzer의 작품은 한참을 서서 글을 읽는데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런 그녀가 만든 작품 중에 가장 강력한 문장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Protect me from what I want라는 작품이다. 


내가 원하는 것들로부터 나를 보호하라. 

이게 무슨 소리인가? 

이대 나온 여자는 아니다만(김혜수의 그 대사가 너무 찰져서 꼭 이럴 때 사용하고 싶었다), 그래도 내가 배울 만큼 배우고 경험할 만큼의 경험을 한 나름의 베테랑인데 왜 작가는 내가 원하는 게 나를 파괴할 것이라 믿는 걸까?  나는 내가 무얼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고 그것이 나를 좀 더 멋지고 영화로운 삶을 살게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데 왜 작가는 그 믿음을 위험으로 보는 걸까? 나는 나를 너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내 삶의 주인은 나인데 내가 뭘 원하는지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그녀의 질문은 매우 중요한 삶의 가치를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가 원하는 게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일까? 내가 원하는 것이 과연 선하고 바르고 좋은 것이어서 내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인지 독약으로 쓰여 날 황폐하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다.  내가 바라는 대로 원하는 대로 삶이 이뤄진다면 과연 삶은 행복할까?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지고 이루고 누릴 때 삶의 공허함과 허무함은 사라질까? 


과학은 발전하고 그 어떤 때보다 가장 풍족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은 왜 아직도 부족함을 느끼는 걸까? 이 정도로 발전하고 잘 살면 인간의 욕구던 걱정이던 불안이던 뭐 하나가 완벽하게 해결되었어야 하는 거 아닐까? 왜 우린 아직도 끊임없이 원하고 채우려 할까 뭐가 그리 부족해서. 


나의 학생이 정말 원했던 것은 아버지가 조금 더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었을 것이고 그 암환자가 원하는 것은 어쩌면 덜 고통스러운 죽음일지도 모른다.  아니, 암발병하기 전으로 돌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삶과 죽음의 문제에서는 진실할 수밖에 없다. 물질은 늘 구입할 수 있고 대체될 수 있지만 생명은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Jenny Holzers 가 말하는 "내가 원하는 것의 위험"은 우리가 진실하고 절실해야 것을 방해하는 모든 것일지도 모른다. 


난 무얼 원하는가? 

그게 정말 내게 필요한 것일까? 

아님 날 파괴시키는 것일까? 


인생은 결국 내가 선택하는 모든 결정이 모이고 쌓여 날 이끈다.

난 어디로 가나. 

내가 진심으로 절실하게 구하고 필요한 건 평안일 것이다. 

그것만이 날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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