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일
지금 사는 집에 이사를 한 후 지하실은 말 그대로 지하실처럼 썼다. 온갖 잡동사니는 놔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냥 방치해 뒀다. 그저 가끔 필요한 물건이 있을 때나 내려가서 가져왔던 어두컴컴한 지하실을 리모델링해야겠다고 마음먹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버리는 것이었다.
대학생 때부터 썼던 미술재료와 옛날 작품.
거미줄.
이 집을 지었던 1979년 이후 그 누구도 손을 댄 적이 없어 보이는 더러운 창문.
미술 매거진.
오래된 사진첩.
아이가 더 이상 입을 수 없는 작아진 옷.
나와 남편이 더 이상 입지 않는 헌 옷.
유행이 다 지난 가방.
십 년은 더 되었을 서류.
남편의 신학대학원 시절 논문.
19년 전 우리의 결혼 축하 카드.
학생 시절 끄적이던 나의 노트북과 스케치북.
그것들을 하나하나 꺼내 버리는 작업을 시작했다.
도네이션에 가야 할 물건들
쓰레기통에 가야 할 물건들
간직해야 할 물건들
가라지 세일에 보내져야 할 물건들
이 모든 걸 분류하는 가운데 예전 내가 사용했던 스케치북을 봤다.
그때 나의 그림들은 어쩜 그리도 우울하고 잔인하고 어두웠을까?
스케치북 한가운데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을 그린 나는 이렇게 썼다.
"날카로운 송곳과 잘게 짓이겨져 뭉뚝해진 팔과 슬픔으로 가득 채워져 더 이상 그 어떤 감정도 담을 수 없는 뻥 뚫린 가슴으로 내 삶을 저주한다"
난 정말 더럽게 힘들었고 방황했고 죽고 싶었구나.
그때 난 정말 아무도 없었구나.
너무 외로웠구나.
마흔이 훌쩍 넘은 지금의 나는 20대 방황을 하던 내 모습을 보며 안쓰러웠기에 스스로를 토닥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제자리를 찾았고 잘 지내고 있으니 이 과거는 더 이상 내 삶에 그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치우다 보니 20년 전 나의 사진이 보인다.
젊은 나는 예뻤다.
예뻤지만 불행을 애착인형처럼 안고 살았다.
과거를 마주하며 지하실 청소를 하던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과거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기분이야"
우린 정말 말 그대로 과거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있었다. 징그럽게도 많은 물건에는 우리의 과거가 오롯이 담겨있었고 우린 그걸 버리는 작업을 했고 더 이상 과거가 우리의 발목과 손목을 가슴을 도려내고 있지 않음에 감사하면서 말이다.
기독교가 내게 가장 크게 다가왔던 순간은 예수의 부활이었다.
그의 부활은 더 이상 죄와 죽음이 우리의 마지막 종착지가 아님을 알렸기에 우리 역시도 죄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부활의 가르침이었다. 내 혹독한 과거가 나의 발목과 손모가지를 붙잡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할 수 없는 것은 그것들이 나의 종착지가 아님을 알기에 현재를 살 수 있고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지하실을 다 치우고 지쳐서 뻗어 있다가 한동안 금발을 유지했던 머리 염색을 검은 머리로 다시 염색을 했다.
흰머리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건 막 대학원을 마칠 무렵이었는데 점점 많아지는 흰머리에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생각한 게 탈색이었다. 한 번 탈색을 하면 흰머리가 금발 머리와 조화(?)를 이루며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에 부분염색을 하지 않아도 되서다. 귀찮니즘과 잔머리의 결과라고 해야 하나.
그런 금발을 다시 원래 머리색으로 원상복귀 시키자 낯선 내가 보인다.
(금발을 거의 이 년 동안 유지 했으니....)
과거를 쓰레기통에 쳐 넣고 원래의 검은 머리로 돌아와 글을 쓴다.
부활절.
예수는 부활했고 나는 과거에서 자유로운 40대 아줌마의 삶에 기쁨을 느낀다.
Happy Ea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