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어도 기쁨을 간직하기 위해선 친절을 택해야 한다.
몇 년 전 부활절 즈음으로 기억한다. 출근길에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 장님 한 분이 지팡이 하나만 의지한 체 걷는 광경을 목격했다. 학교 도착하기 전 따뜻한 스타벅스 플렛 와이트를 뽑아 들어갈 여유가 있겠구나 싶었는데 도저히 그를 못 본 체 지나갈 수가 없었다. 당시 다운타운은 길바닥 공사도 많았고 건물 공사 때문에 보도블록이 엉망이었다. 몸 건강한 나도 요리조리 피해 다녀야 하는 참에 눈이 안 보이는 이가 지팡이를 휘저으며 이 길을 어떻게 걷겠나 싶었다. 혹시라도 넘어지면 도저히 할아버지 혼자 감당을 할 수 없을 것 같아 보였기에 위태로운 그를 향해 걸었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제가 당신의 손을 잡아도 될까요? 어디 가세요?"
그는 성당에 가는 길이라 했다. 학교 방향과 너무 반대 방향이라 성당까지는 갈 수 없었지만 적어도 이 난장판 공사 현장은 빠져나갈 시간은 있을 것 같았다. 그와 나는 두 손을 맞잡고 공사현장을 요리조리 피해 가며 무사히 빠져나와 큰길로 나왔고 조심히 성당에 가시라는 인사와 함께 꼭 잡았던 손을 놓았다.
그는 연신 내게 고맙다는 말과 신의 은총과 축복이 있을 거라는 말을 반복했다.
위스콘신주에 갔다가 전혀 계획에도 없는 전시를 보러 들어갔다. 섬유작품을 좋아하는 나는 특히 퀼트를 좋아한다. 각기 다른 조각들을 짜 맞추다 보면 큰 그림이 되는 게 마치 퍼즐조각 같다. 그곳에서 처음 들어본 작가의 이름 Rosy Petri 작품을 만났다.
각기 다른 천에 잉크로 프린트가 된듯한 무늬들이 각각 다른 모양으로 오려지고 붙여지고 바느질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기쁨으로 가득 찬 미소를 짓는 여자가 보였다. 노래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큰 소리를 내고 웃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는 여자의 표정에는 오직 기쁨만 있어 보였다. 화려한 색감, 패턴들은 조화를 이루지 않을 것 같으면서 조화를 이루고 시끄러울 것 같은데 신이 난다. 작품이 뿜어내는 기쁨의 에너지는 매우 크고 시끄럽고 화려하다.
기쁨!
얼마나 소중한 감정인가! 기쁨이라는 감정은 나이를 먹을수록 작아지는 것 같은데 지금 이 여자의 얼굴에는 기쁨만이 존재하는 것 같아서 그게 좋았다. 그녀의 다른 작품들도 기쁨 말고 다른 감정이 비집고 들어올 수 없을 만큼 함박웃음이 가득하다. 이런 작품을 만드는 작가는 분명 그 안에 그 기쁨이라는 빛을 품고 살 거라는 확신이 들자 그녀는 분명 따뜻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얼마 전 병원에는 그때 그 할아버지처럼 앞을 보지 못하는 환자가 왔다. 그녀는 몽골 사람인데 나를 만날 때마다 인자한 미소와 눈웃음으로 내게 인사말을 건넨다. 그녀의 차례가 되면 나는 그 할아버지에게 했듯이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의자까지 안내해 주는데 그녀는 매번 내게 고맙다고 신의 축복이 있을 거라고 한다. 그때 그 할아버지처럼 말이다.
나는 그런 순간들이 내게 기쁨이 된다. 내가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고 누군가가 내게 친절을 베풀고 그 안에서 우리만의 색감들이 터져 나와 기쁨으로 체색이 된다고 느낀다. Rosy Petri 작품처럼 그 기쁨들이 마구마구 터져 나와 세상을 조금씩 더 활기차게 밝게 만들어줄수록 살아갈만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아니 그럴것이다. 정말 활기차고 기쁨이 가득하고 살아갈만한 세상이 될것이다. 살아가면서 친절을 베풀고 느끼는 기쁨을 경험하고 배우고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반복하면 사람은 정말 사람답게 살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너무 순진하게도 나는 아직도 그걸 절실하게 믿고 붙잡고 산다. 그래야 내 새끼가 살만한 세상으로 변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