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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Z Jul 12. 2024

욕쟁이 할아버지의 쓴 뿌리

억울함이 뿌리를 내리자 쓴맛이 난다.

남편은 욕쟁이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이라 했다.

"욕쟁이 할아버지? 그런 환자가 있었어?"

"어. 말의 시작과 끝이 욕이야. 성질도 대단하고. 툭하면 사람들한테 욕하고 화를 내니까 거기 있는 환자들도 간호사들도 그 사람 되게 많이 힘들어해."


전에도 말했다시피 남편이 만나는 환자들은 죽음을 앞둔 시한부 환자다. 각종 질병뿐만 아니라 노환으로 삶이 몇 달 남지 않은 이들이 모이는 병동에 가서 남편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밥을 먹여주기도 하고 기도와 예배를 인도하기도 한다.


욕쟁이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은 건 최근이다. 그가 중풍에 걸리자 도저히 그를 감당할 수 없던 가족들은 그를 호스피스 병동에 보내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에 동의했다. 자신이 병원에 와서 생활해야 한다는 게 큰 상처가 된 욕쟁이 할아버지는 식지 않는 분노와 억울함을 욕에 녹여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내뱉는다.


남편이 욕쟁이 할아버지를 처음 만났던 날 그는 남편을 향해 다짜고짜 어떤 새끼가 내 안경을 훔쳐간 게 분명하다며 욕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남편은 바닥에 떨어진 안경을 주워주며 그 누구도 당신의 안경을 훔쳐가지 않았다며 전해 주었다. 그러자 그는 분명 어떤 새끼가 훔쳐 가려다가 떨어트렸을 거라는 확신 어린 표정으로 안경을 집어 들었다고 한다.


욕쟁이 할아버지는 처음 만난 남편에게 아내와 자식 이야기를 하며 추스를 수 없는 분노를 터트리기 시작했다.

"그 썅년이! 그 썅년이 날 병원에 쳐 넣었다고! 내 연금 받아가면서 난 여기에 처박아 넣고 그년은 잘 처먹고 있지! 내 집에서 말이야! 그년은 원래부터 싹수가 그런 년이었어. 몸뚱이나 파는 천박한 년 같으니라고! 그 년 때문에 내가 내가 내가! 여기에 있잖아 그 개 같은 년 때문에!"


자신이 호스피스 병동에 온건 순전히 아내 때문이라 굳게 믿는 그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적으로 여겼다. 몸을 씻겨줘야 하는 간호사에게도 욕을 하고 아버지를 보러 온 자식과 아내에게도 욕을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목사를 향해서는 병원과 간호사와 아내와 자식을 한 대 엮어서 "종합선물 세트" 마냥 다 싸잡아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한 거다. 걸쭉한 욕이 가득한 푸념 말이다.


그의 그런 태도로 인해 병원 관계자들이 그를 꺼려할 수밖에 없다. 간호원들은 그들이 해야 하는 일을 할 뿐인데 욕만 먹으니 하고 싶겠는가? 옷 갈아입히고 샤워를 시켜주려 해도 온몸으로 거부하며 질퍽한 욕만 하는 그를 그 누가 가까이할 수 있을까? 오랜 시간 내버려진 상태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그의 몸에서는 지린 네가 진동하고 수염에는 음식물이 묻어있고 병실 옷은 더러워질 때로 더러워진 체 병원에 방치되어 있다고 한다.


그가 아프지 않고 건강한 육체를 가졌을 때도 그랬을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으니까.


그의 내면에는 깊숙한 억울함이 쓴 뿌리가 되어 깊이 박혀 있는 것 같아 보였다. 무슨 억울함인지 알 수 없지만, 죽음을 앞둔 사람이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감정이 분노라면, 그것은 분명 깊숙이 박힌 쓴 뿌리에서 흘러나오는 감정일 것이다. 그의 아내는 어쩌면 그런 그를 병원에 보내고 나서야 겨우 살겠다 싶은 생각이 들진 않았을까?라는 상상을 해봤다.


남편과 나는 우리 안에 있는 쓴 뿌리가 우리의 태도와 감정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 있다. 특히나 억울함이라는 감정에 집중을 하게 되는 건 그 감정이 내리는 뿌리가 불신이기 때문이다.

억울함의 뿌리가 깊어질수록 나는 세상에서 가장 딱하고 불쌍한 사람이 되고 내가 아닌 상대는 비난의 대상이 된다. 나를 보호할 수 있는 건 오직 나 자신 밖에 없고 세상의 모든 사람은 나를 헤칠 사람처럼....  칼같이 비수를 꽂는 말로 상대에게 생채기를 내지만, 자기는 그게 잘못된 거라 느끼지 못할 것이다. 억울함이 클수록 상대에 대한 민감성은 낮아지고 나에 대한 민감성만 높아질 테니까.




Nicola Samori, June 27 - crowned 2014

이탈리아 출신의 Nicola Samori는 이탈리아 거장들의 작품을 지금 현시대로 제해석 하는 작품을 만든다. 200년이 훌쩍 넘은 옛 초상화의 얼굴을 드러내고 추상적인 형태의 그림을 접목시키면서 표정을 잃은 초상화로 만든다. 그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처음 던져야 할 질문은 예전 초상화는 어떤 목적이었는가?이다. 예전 초상화가 상당한 인기를 누리게 된 것은 자신의 업적과 얼굴을 기념하는 동시에 자신의 legacy를 후세에게 대대 손손 전해지기 위함이 가장 큰 목적이었다.


날 좀 보란 말이다! 내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 만천하에 알리겠노라!


하지만, 물질은 곧 사라지고 건강한 몸도 젊음도 사라지는 게 진리 아닌가. 작가는 외적으로 보이는 멋진 모습이 아니라 작품 깊숙이 숨어있는 내적고통 즉 피곤하고 병들고 상처받은 영혼을 외관으로 꺼내 까발린다.

저 사람이 완벽해 보인다고요?

저 사람이 행복해 보인다고요?

내가 그 속내를 다 꺼내 보여드려도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을까요?


작가는 매우 깊이 인간의 심리 안에 들어가 글을 쓰고 작품을 만들었던 것 같다.

상처 투성이인 인간들이 아닌척하고 사는 동안 작가는 상처 깊이 들어가 그 안을 들여다본다.  마치 의사처럼 붓과 페인트로 영혼을 집도한다.

Nicola Samori, bujo 201




소화가 안되면 소화제를 먹으면 되고 눈이 건조하면 안약을 넣으면 되는데 머릿속이 터지고 가슴이 미어질 때 입에 털어 넣을 약은 안타깝게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내적인 평안은 약으로 해결되지 않고 나 스스로 나 자신을 진정시킬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해야 슬픔과 억울함이 뿌리를 내리지 않는다. 지금 내가 지니고 있는 과거와 현재의 슬픔과 억울함을 해결보지 않은 나의 미래가 욕쟁이 할아버지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두려움을 일으킨다.


난 나의 마지막을 내 주변에 사랑만 주고 사랑만 하다가 사랑만 가지고 삶을 마감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Nicola Samori의 작품처럼 내 속에 있는 모든 상처와 슬픔과 억울함을 끄집어내야 한다.  지저분하고 아름답지 않아도 그걸 꺼내 바라봐야 한다. 내 속에는 어떤 뿌리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가?


나는 그것들은 끄집어내 내 글의 재료로 쓴다. 그리고 내 글이 약이 되어 날 치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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