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사는 삶은 살고싶지 않으니까.
Anish Kapoor가 시카고의 랜드마크로 유명한 Cloud Gate, 더 잘 알려진 이름은 빈(Bean)을 만들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터무니없는 돈을 예술품에 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작품이 세워진 뒤, 시카고는 이제 이 작품 없이는 설명할 수 없는 도시가 되었다. 수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고, 사진 명소로 세계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작가의 이름은 몰라도 “시카고 빈”이라고 하면 모두가 알 정도가 되었다.
빈이 유명한 이유는 거대한 거울처럼 모든 것을 비추기 때문이다. 콩이나 물방울 같은 형태의 작품은 도시의 건물과 하늘을 담아내고, 그 앞에 선 사람들까지 함께 반사한다. 시카고의 풍경 전체가 하나의 조각 안에 들어가는 셈이다. 곡면에 비친 모습은 왜곡되어 보이기에 시각적인 즐거움도 더한다.
Anish Kapoor는 이렇게 반사되고 반짝이며 왜곡되는 작품을 만들던 중, 빛의 99.965%를 흡수하는 신물질 Vantablack을 접한다. 이 물질로 덮인 물체는 빛을 전혀 반사하지 않아 마치 큰 구멍이나 블랙홀처럼 보인다. 그는 반사와 왜곡을 보여주던 이전과 정반대로, 빛을 완전히 삼켜버리는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이러한 대조 속에서 인간 존재의 유한함을 본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늘 왜곡된 모습으로 생각한다. 그것은 자기 자신뿐 아니라 타인과 세상을 대하는 방식에서도 마찬가지다. 문화, 교육, 종교, 규범이라는 틀 속에서 우리는 언제나 왜곡된 시선을 가진다. 어쩌면 Kapoor는 작품을 통해 그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의 작품 앞에 비친 세상은 늘 왜곡되어 있으니까.
그런데 그 위에 Vantablack을 덮자, 존재는 아예 사라져버렸다. 왜곡된 시선도 결국은 소멸하고, 언젠가는 어둠이 모든 존재를 삼켜버릴 것임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지 모른다.
“삶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말이 있지만, 결국 예술조차도 죽음과 소멸 앞에서는 그 한계에 다다른다.
나는 얼마 전 Anish Kapoor의 작품을 학생들과 함께 보며 이런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있는가? 아니라면, 어떤 모습을 왜곡해 바라보고 있는가?”
이 질문은 누구에게나 중요하지만, 특히 십대와 이십대가 오래 곱씹어야 할 물음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뭐라 소리쳐 혼란스럽게 흔들어도, 내가 나 자신과 평화로워야 앞으로의 삶에서 나만의 평안과 숨쉴 공간을 얻을 수 있다.
내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인생은 매순간 불편해지고, 그 불편함이 쌓여 삶은 피곤하고 불행해진다. 그렇게 되면 즐거움은 사라지고 결국 “겨우 사는 삶”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묻는다.
나는 내 스스로를 얼마만큼 받아들이고, 그 모습에 편안해질 수 있을까?
우리는 이 질문을 묻고 또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