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어른이 되고 싶은 영포티 입니다.
북극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던 날이 있었다.
그때 나는 이석증으로 고생 중이었지만, 사방에서 날아오는 문자와 사진을 보며 결국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갔다.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카메라를 들이대니 희미하게 붉고 푸른 빛이 잡혔다. 친구들이 보내준 그 압도적인 빛의 향연은 아니었지만, 내가 찍은 하늘도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나는 이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지식은 없다. 그저 아름다움을 꿀꺽 삼킬 수 있을 만큼의 여유는 있었다. 그리고 나이를 먹어갈수록, 아름다운 것을 놓치지 않고 바라보고, 찾으러 다니고, 내 앞에 왔을 때 내 것으로 만드는 것 또한 하나의 능력이라는 걸 알게 된다.
삶에 여유가 있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 여유란 통장 잔고나 숫자로 표현된 자산이 아니다. 물론 그것들을 완전히 무시할 순 없지만, 진짜 여유는 결국 마음의 상태이자 태도라는 걸 이제는 안다.
요즘 40대의 아저씨 아줌마들이 젊어 보이려고 애쓴다며 ‘영포티’라고 부르는 단어가 있다. 처음엔 좀 억울했다. 내 돈으로 내가 꾸미고, 젊게 살고 싶어 하는데 그게 뭐가 문제인가 싶었다. 너희는 안 늙을 것 같으냐는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영포티라는 표현이 생겨난 배경을 따라가다 보니, 끝에는 묘한 짠함이 있었다. 지금의 20대, 30대에게 필요한 건 젊어 보이려고 돈을 바르는 어른이 아니다. 라떼를 들먹이며 혼자 잘난 척하는 꼰대도 아니다. 막막한 미래에도 버티고 살아갈 이유를 찾아줄, 경험과 위로를 품은 ‘진짜 어른’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의 20대와 30대에도 그런 어른은 많지 않았다. 내가 정말 배우고 싶다고 느낀 어른은 다섯 손가락에도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분을 발견하면, 나는 그 곁에 머물고 얼쩡거리며 배웠다.
그 중 한 분이 나의 할아버지 교수님이었다. 그러니 20–30대가 영포티에 고개를 절레절레 하는 마음이 이해된다. 나 역시 40이 되어도 50대, 60대 어른 중 진짜 배우고 싶은 분이 그리 많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결심한다.
‘저런 어른이 되지 말아야지.’
그 마음을 품고 있어야 한다.
내가 되고 싶은 어른이 되기 위해 발버둥치고 노력해야 하고, 수많은 유혹을 물리쳐야 한다. 가끔 실수하더라도, 그 결과가 나쁘더라도, 그 실수를 통해 배우고 반성한다면 그건 결국 좋은 경험이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은 날 좋은 어른으로 만들어 줄것이다.
오늘 한 학생에게 이메일을 받았다.
수줍게 자신이 만든 만화 파일이라며, 꼭 읽어보고 피드백을 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오늘 하루 종일 일하고, 한국 갈 준비를 하고(그렇다. 나는 한국에 간다. 한국 여행기는 꼭 브런치에 올리리라), 짐을 싸느라 단 1초도 쉬지 못해 정말 지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작품을 읽었다.
그리고 긴 이메일을 보내, 어떤 부분이 좋았고 어떤 부분을 조금 더 다듬으면 더 좋은 작품이 될지 조목조목 적었다. 나의 할아버지 교수님이 나에게 그랬듯이 그분이 나에게 그랬기 때문에 나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세상엔 수많은 영포티, 영피프티, 영식스티가 있을 것이다. 그 중에 ‘정말 괜찮은 어른’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만난 어른들 중 정말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다섯 손가락에도 들지 않는다.
그래서 더더욱 나는 바란다.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 내가 좋은 어른이 될 수 있는 선택을 하게 만들기를.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배우고 싶은 어른을 만난다면 그건 축복이니, 그 옆에 머물며 배우고 흡수해야 한다. 그러면 언젠가 나 또한 ‘어른’이라고 불릴 날이 왔을 때, 내 곁에 머물고 싶어 하는 젊은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때는 기꺼이 곁을 내어주고, 희망을 떠먹여 주고, 경험의 조각을 나누어야 한다.
물론, 나도 젊어 보이고 싶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는 나잇값을 더 하고 싶다.
한국 갈 짐을 챙기다 보니,
문득 ‘이거 입으면 영포티 소리 들으려나…?’ 싶은 옷들이 몇 개 있었다.
그래도 하나하나 꾸역꾸역 가방에 넣었다.
6년 만에 가는 한국인데, 너무 미국 시골 아줌마처럼 보이고 싶진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