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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Z Jun 03. 2023

4년 만에 장미가 폈다.

완벽한 타이밍에 찾아온 위로였다.

집 뒷마당에 장미 넝쿨이 있다. 신기하게도 장미 넝쿨은 잎사귀만 가득할 뿐 단 한 번도 장미꽃을 피운 적이 없다. 이 집으로 이사 온 4년 남짓한 시간 동안 우리는 단 한 번도 이 넝쿨에서 꽃봉오리도 본 적이 없다. 남편은 몇 번이나 그냥 잘라 버릴까 했지만, 이내 우리의 귀찮니즘과 가시넝쿨이라는 상황이 잘 맞아떨어져 그냥 놔뒀다.  


올봄 뒷마당 잡초를 뽑고 정리를 하다 남편과 나는 평소와 다른 장미 넝쿨의 모습을 보았다.  잎사귀만 가득한 녀석이 꽃봉오리를 맺기 시작했고 그 숫자가 얼마나 많은지 얼추 100개는 넘어갈 것 같다.


넌 붉은 장미구나.

넌 어쩌다 이제야 우릴 찾아왔니.

넌 사 년 동안 왜 침묵했니


그 모습이 너무 기특해서 나는 매일 녀석을 찾는다. 계란껍데기를 갈아서 거름으로 주고 영양제를 뿌려주고 커피 가루를 물에 섞어 주기도 했다. 나의 정성을 알아주는 걸까? 장미넝쿨에서 꽃봉오리가 올라오고 제법 통통해지더니 이내 붉은 꽃잎을 터트렸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난 그 모습에 상당한 위로를 받았다.

죽은 줄 알았던 장미넝쿨, 장미 본연의 기능과 아름다움을 상실했던 녀석이었다.  구석진 곳에서 꽃봉오리 하나 온전하게 피지도 못하는 못난이 취급을 받았다. 언젠가 나의 의지가 귀찮니즘을 이기는 날 널 잘라 버리리라 했던 그 녀석이 꽃을 피우는 재주를 부린다.


장미 넝쿨을 한 참 바라보다 문득 그런 질문을 해봤다.


"나는 어떻게 혹은 어떤 위로를 받길 원하는가? 사람들은 어떤 위로를 받을 때 딱딱한 마음이 말랑 해지는가?"


그건 매우 흥미로운 질문 같았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로받을 일이 일상에서 일어나지 않길 바라기 때문에 딱히 어떤 위로를 받고 싶은지  명확한 바람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위로 나는 건 누군가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일인데 대부분 우린 자기 자신의  마음 상태 보단 상대의 눈치를 더 많이 살피는 삶을 살고 있다.   


인생은 눈치 작전 아닌가.

어릴 땐 부모의 눈치를, 청소년땐 친구와 선생님, 어른이 되어선 배우자, 자식, 회사동료 주변의 모든 눈 달린 생명체의 안위를 빠르게 스켄하는 법을 익힘으로써 자신의 자리를 안전하게 지키는 것. 물론 그 눈치라는 것도 은사인지라 없는 이들은 주변을 힘들게 한다.


하지만, 난 눈치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내가 받고 싶은, 우리가 받고 싶은 위로에 대해서 말하려는 것이다.


내가 꽃봉오리를 이제야 품기 시작한 장미 넝쿨에게 위로가 되었다면, 내가 원하는 위로는 희망과 가능성 그리고 회복과 생명의 탄력성을 확인한 그 순간일 게다.


쓸모없고 잘라져 버려져도 될 것들이라 여겼던 것들에서 꽃이 피면, 어떻게 잘라내겠나. 죽어가는 장미 넝쿨에도 반전이 있는데, 우리 인생에는 어떤 반전이 기다리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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