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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인 알바라는 천국은 없다.

미필, 21살, 알바경력 없음

by 잡이왼손

기숙사에 살며 50만 원, 적지 않은 용돈을 받으며 생활한다. 하루에 만 오천 원 정도만 쓰면 한 달은 지낼 수 있다. 하지만 아침은 못(안) 먹는다. 한 끼에 7000원 학식을 두 끼만 먹어도 벌써 14000원이다. 뭐 아침은 간헐적 단식이라 치고 안 먹는 습관을 가진다. 그럼 술자리는? 또 커피는 안 마시나? 선크림은 안발라도 되나? 그까이거 대충 안 바르고 피부 좀 까무잡잡해져도 괜찮은 건가? 하루 소비를 계산하며 살기 지긋지긋해질 즈음 알바를 알아본다.

21살, 노동 경력이라고는 10년 가까이 다니던 영어학원에서 채점알바를 한 경험이 전부. 그것도 원장님이 먼저 제안을 했으니 망정이지, 그게 아니라면 지금까지 알바경험은 전무할 것이다. 최저시급도 못 받으며 근로계약서도 제대로 작성하지 않았으니 제대로 된 알바라 하기도 내 양심에 찔린다.


알바 구인 앱으로 주말 동안 일할 수 있는 학교 근처 알바를 검색했다. 눈에 들어온 알바는 카페알바, 누구나 한 번 즈음은 상상해 보는 커피를 내리는 나의 모습. 바로 지원을 했지만 연락 없음. 다음 알바는 맥도날드. 패티와 감자를 튀기고 물류 옮기는 게 힘들어 보이지만, 4대 보험에 주마다 시간표를 달리 작성해서 일할 수 있다는 장점에 지원했지만 연락 없음.

알바 하려고 미리 보건증도 발급했는데 알바구인이 이렇게 힘든지 생각하던 와중, 마지막으로 지원한 kfc에서 알바면접을 보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최대한 깔끔하게 차려 입고 면접을 보러 갔다. 보건증 유무, 일하고 싶은 날, 거주지 등등 간단한 사항을 질문받고 연락을 기다렸지만 3일째 되는 지금까지도 연락이 없다. 친구들은 다들 떨어진 거라 말했다. 낙담한 내가 그만두려하자 친구는 알바도 못 구하는데 나중에 취직은 어떻게 할 거냐며 내 심장에 비수를 박았다.


알바가 떨어졌으면 떨어졌다 연락이라도 주지, 무응답은 내 생각에 꼬리에 꼬리를 문다.

왜 알바가 안 구해지는 걸까?

3개월은 너무 짧아서 그런가?

아니면 미필이라서? 카페 알바는 다 여자만 뽑는 건가?

내가 알바경력이 없어서?

계속해서 깊어지는 답없는 물음에 자기비판과 혐오는 점점 늘어만 간다.



혹시 모를 연락에 바로 일할 수 있도록 주말 동안 기숙사에 지낸 시간이 아깝다. 주말에 본가에 내려가면 30000원이나 생활비가 굳는데. 괜히 사장님이 괘씸해지고 햄버거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오히려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 건가)

짜증나고 우울한 마음에 피시방에서 시간을 태웠지만 더욱 공허해질 뿐이다. 피시방을 나와 무작정 홍제천을 걷는다. 저녁에도 밝은 런닝트랙에 걷고 뛰는 사람들이 이루는 인파를 가로지르며 생각한다.


내가 걷고 있는 이 순간에도 알바공고는 계속 올라온다. 이제 9월일 뿐이고 수시 원서 넣는 것도 아니고 알바 지원은 무한대로 할 수 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면서 발걸음이 더 빨라진다. 아예 숨이 찰 정도로 뛰었다.

숨가쁘게 뛰면 무언가 답이라도 나올 것 같았다.


내일 아침이 되면 되는대로 알바지원을 넣어볼 것이다. 고기불판을 닦건 치킨을 튀기건 일단 지원한다. 이게 정답일진 모르지만 미련이 남지 않는다는 확신이 든다. 그래도 알바가 구해지지 않으면 깔끔하게 포기하는 것이다. 늦은 거 하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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