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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흔 Oct 21. 2024

물장구치는 법, 두번째

20241021 짧은소설 2회차

물장구치는 법, 두번째

"그곳에서 심해(深海)를 마주한다."


"생각을 해보렴. 아무 말도 없이 혼자 대자보를 붙여서 한동안 학교 시끄럽게 만든 사람을 누가 좋은 시선으로 봐주겠니? 게다가 들 경기 한 달 앞둘 때 갑자기 그 일로 훈련도 멈춰서 애들이 다 불안해했단다."


그건 내가 참았어야 했다는 말이다. 학교에 있는 어른들 누구도 나의 상태를 걱정하지 않았다. 그분들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학교의 이미지, 학생들의 대회 출전이 먼저였다. 학과장의 말에 나도 모르게 살짝 다물던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속 안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오는데 목 끝에서 콱 막힌 그런 느낌이다. 때문에 내 목소리가 힘을 잃은 채 울먹거리면서 나온다.


"교수님도 아시잖아요. 김코치님... 한, 두 번 그런 정도가 아니었던 거요."


그 말에 학과장이 한숨을 길게 내뱉는다. 그러다 잠깐 침묵을 유지하더니 이내 입을 연다.


"그래, 지은아. 김코치가 애들 엄하게 다뤄서 여태 말 나온 거 나도 알아. 김코치 때문에 애들 울고 멍든 거 모르는 거 아니야. 하지만 그 애들 끝까지 참고 대회 나가서 이겼잖니? 아무나 우리 이렇게 잘 봐주고 우승시켜 주는 사람 얼마 없단다. 사람이 좋은 점이 있으면 분명 나쁜 점도 있겠지. 난 지은이가 다른 쪽으로도 생각하기를 바랐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쉽구나."


억울하다. 부당한 일에 대해 사과를 요구한 것밖에 없는데, 그거 하나에 많은 사람들의 안위를 위해 그들의 허락을 받아야 하다니. 이를 요구한 행동이 학교를 시끄럽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지탄을 받아야 하다니. 그런 나에게 학과장은 휴학을 하라고 권유한다.


"그러니까 시간이 지나면 다 정리되니까 휴학해. 2주 뒤 잡아둔 전국수영대회도 개인사정으로 못 가는 거야. 알았지?"


학과장은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미리 학과 사무실에서 갖고 온 휴학신청서를 나에게 들이민다. 공란으로 된 신청자 작성란 밑에는 미리 사인한 그의 서명이 있다.


잠시 후, 휴학신청서를 작성하고 학과장의 연구실에서 나간다. 연구실을 나와 복도를 거니는데 내 쪽으로 동기들이 걸어온다. 그들은 나를 눈짓으로 슬쩍 보고는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중에는 과대표 현주도 있다. 내가 김코치의 만행을 고발하는 대자보를 학교 곳곳에 걸었을 때, 현주는 나에게 우리들의 앞길을 막지 말라며 대자보를 떼라고 연락했던 인물이었다.


"너 때문에 큰 일 났어! 너 때문에 선수 인생 망쳤어!"


현주가 나한테 했던 말이다. 다른 사람들과 구김살 없이 잘 지내고 다정다감했던 그녀는 나의 대자보 때문에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모든 것을 원래대로 돌려달라고 소리까지 질렀다. 그날 이후로 현주는 나를 없는 사람으로 취급했고, 심지어 교내 수영장에서의 훈련도 금지했다. 지금 현주와 동기들이 내 쪽을 지나친다. 현주와 동기들은 나를 못마땅하게 흘겨본다. 그들의 눈초리에 죄를 지은 사람이 된 것 같다. 그래, 그들의 말대로 참았어야 했는지 모른다. 다들 나를 보면 어려워하고, 피하고 싶어 하니까.


결국, 다른 이들에게 꿈을 잃은 나는 점점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어디가 끝인지도 모르고 헤엄쳐 나갈 힘도 없어 미동조차 할 수 없다.

그렇게 6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흐른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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