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귀국자녀와 그들의 부모님들에게 (2)

: 단단한 한국인으로 먼저 키우기로 했다.

by Hey Soon

❚욕구의 우선순위

매슬로의 욕구단계설(Maslow's hierarchy of needs)은 우리 인간의 욕구에 대한 선후관계에 대해 쉽게 설명을 해주고 있다. 1943년 미국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인간의 욕구가 그 중요도별로 일련의 단계를 형성한다고 설명했다, 즉, 인간의 욕구에는 위계가 있다는 것이다. 피라미드 모양으로 설명한 인간의 다섯 가지 기본 욕구는 가장 하단의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애정과 소속의 욕구, 존중의 욕구, 그리고 마지막 꼭대기의 자아실현의 욕구가 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냈다. 가장 밑에 위치한 욕구부터 하나씩 충족되면 위계상 다음 단계에 있는 다른 욕구가 나타나며 이를 충족하고자 한다. 가장 먼저 요구되는 욕구는 다음 단계에서 달성하려는 욕구보다 강하고 그 욕구가 만족되었을 때만 다음 단계의 욕구로 전이된다.


정말 쉬운 말로 하자면 배가 고프면 공부가 될 리 없다. 식욕이 충족되어야 공부라는 것도 하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또, 집에 도둑을 맞고 난 이후 초연하게 공부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안전에 대한 욕구가 충족되어야 공부라는 것도 하고 싶어진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다 이의없이 인정한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 부모들은 자식에 대해 본능을 거스르는 것을 요구한다.

특히, 부모 없이 조기 유학을 보내는 부모들은 아이의 애정, 소속의 욕구 충족 없이도 자아실현욕구가 크게 작동하여 아이가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로 발휘해서 성공할 수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외로운 타국의 삶을 혼자 감당하며 애정, 소속의 욕구 충족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도 자기의 자식에게만은 자신감과 자아존중감이 절로 생기리라 믿고 싶어 한다.


하지만, 아무리 낯선 땅에서 자신의 계발을 최대치로 하여 성공을 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그건 아래의 밑바탕이 되는 욕구가 충족되지 못 하면 실현되기 힘든 것이다. 대부분 그 하위의 욕구가 충족되지 못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참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사춘기나 갱년기처럼 인생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될 무렵이면 그 억압된 욕구가 폭발하여 문제가 심각하게 발전된다.


더군다나 사춘기 이전의 아이들은 자신에 대한 파악 능력, 메타인지 능력이 아직 미발달된 상태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삶에 의욕이 왜 없어지는 지에 대한 인지 능력이 부족하다. 그래서 사춘기가 되었을 때 그 하위의 욕구들이 충분히 충족되지 못 할 경우 자신의 성장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 하게 된다. 그로인해 성장을 위한 동기가 생기지 못 하고 문제가 심각하게 악화된다.


40세의 나이, 불혹의 나이에 나는 나와 가족을 동반한 미국 유학생활을 5년간 했다. 나는 매슬로가 주장한 그 욕구의 단계설은 우리의 욕구를 정확히 잘 묘사한 것이라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박사학위를 받고 하고 싶은 직업을 얻을 수 있는 미국이라고 하더라도, 나에게는 기본적인 애정과 소속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다. 그리고 어엿한 시민으로 동등한 시민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다. 일상의 무언가가 꼬여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그건 나의 하위 욕구가 충분히 충족되지 못 한 채 가장 상위의 자아실현 욕구만을 충족시키려고 나 자신을 분주하게 움직였던 탓이다.


❚삶의 가치의 우선순위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이 막내아들을 미국에서 교육시키길 권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게 부모가 동행할 수 없는 미국행이라도 여전히 막내아들을 미국에서 교육시키고 싶을까? 중3인 아들을 미국으로 보낸다는 것은 앞으로도 한국이 아닌 미국 시민으로 살게 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부모가 함께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다는 것은 참 의미로운 일이다. 함께 한 그 시간은 오롯이 마음에 남는다. 일찌감치 부모와 떨어져 중2때부터 객지 생활을 한 나로서는 부모와의 각별한 정 같은 것이 없다. 그저 대면대면한 관계로 늘 남았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함께 세월을 보내며 소소한 삶을 나누며 정이 새록새록 들어가는 관계이다. 그저 생리학적인 관계만 가지고 저절로 정이 쌓이는 관계가 될 수가 없다. 게다가 부모가 없는 먼 미국 땅에서 사춘기를 맞이하게 될 그 막내의 외로움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을 것이다. 소수민족으로 미국에서 산다는 것은 더군다나 부모님도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상상이상의 외로움이다. 그저 상상만 해볼 뿐인데 내가 절로 외로워진다.


❚단단한 한국인으로 키우기가 먼저다

위에서 말한 매슬로의 욕구 단계설도 그러하거니와 나의 경험과 주변의 목격한 여러 가지 케이스들은 유학 시절 동안 나에게 한 가지 분명한 가이드를 제시했다. 많은 직접 경험을 쌓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해외생활은 우리 아이에게 분명 큰 영향을 미쳤다. 넓은 땅에서 자유로운 교육을 받은 그 시절이 좋은 추억으로 자리 잡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곳에는 우리 아이가 필요로 하는 나머지 욕구가 충족되기에는 척박한 곳이었다. 비록 내가 그곳에 합법적으로 머무를 수 있고, 나의 학비가 현지인의 학비처럼 할인을 받는 혜택을 누린 후에도,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는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내가 속한 우리나라, 안전함은 느끼는 우리나라, 내가 동등하게 대우받을 수 있는 우리나라가 그리웠다.


매슬로가 설명한 피라미드의 아래쪽 욕구는 삶의 아주 근원적이고 강력한 힘이다. 그것이 충족될 때 우리는 자아실현과 같은 위쪽 욕구를 충족시키기를 더욱 갈망하게 된다.


남편이 다니던 회사가 영주권을 후원해준다고 했다. 하지만 나와 남편은 미련 없이 그곳을 떠나오기를 결정했다. 코로나가 있기 한 학기 전에 이미 우리는 한국으로 귀국을 결정 했다. 아이들에게 가장 기본이 되는 욕구, 안전하고 소속감을 느끼고 존중받고 싶은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는 곳에서는 아무리 자유로운 교육이나 넓은 땅, 많은 기회가 있다고 하더라도 큰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차근히 아래쪽의 욕구를 충족시켜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단단한 피라미드를 세우서 아이가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싶어지도록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공간의 차이가 아닌 삶에 대한 동기의 차이

차분히 한국의 생활을 적응시키면서 아이의 잠재력을 더욱 증폭시키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미국이라는 공간에 있다고 저절로 그곳의 성공한 사람처럼 될 리가 없다. 한국에 있다고 저절로 불행한 삶을 살아야 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한 사람의 마음과 삶에 대한 태도, 삶에 대한 애착, 동기와 같은 무형의 것들은 우리 안에서 차곡차곡 한겹 두겹 쌓이는 것이다. 그것이 단단하게 자리 잡았을 때 비로소 우리는 품고 있던 잠재력을 폭발 시킬 수 있는 것이다.


결국, 한국에서의 교육은 당장에 힘이 들 수 있다. 그리고 미국과 너무 다른 방식의 교육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형태의 교육이라 하더라도 아이에게는 배움이 일어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아이로 성장하면서 친구들과 시간이라는 소중한 공유물을 나누며 생기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친구들과 함께 다소 빡센 일정이지만, 대한민국의 교육을 받아가며 기쁨과 좌절과 성취와 실수를 하며 단단한 내면을 가진 아이로 성장할 것이다.


위의 막내아들 같은 경우 한국에서의 저조한 성적과 상관없이 특별전형이라는 것으로 본인이 희망하는 쪽의 고등학교에 문을 두드릴 수 있다. 물론 그 학교의 학교장이 허가하는 경우에 한 하지만, 대부분 직접 찾아가서 입학을 부탁하면 받아주는 걸로 알고 있다.


저는 왠지 그 막내를 한국에서 키우셨으면 하는 속마음이 생깁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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