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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 Soon Oct 21. 2022

영어가 나에게 준 것과 줄 것

: 새로운 나와 새로운 날들

중학생 시절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영어의 망망대해를 여행한 지 어느 덧 30년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 참 미련스러울 만큼 영어를 알아가기 위해 애쓴 것 같다. 때로는 그 망망 대해에서 거의 익사 직전까지 간 적도 있었고, 배 멀미처럼 영어만 보면 토가 나올 것 같은 그런 적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나는 그 세월의 노력 덕분에 영어 공부를 즐길 수 있는 경지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영어를 통해 많은 것을 얻었다.      


❚제2 언어 자아(Second Lanugage Ego) ; 잠재되어 있던 또 다른 나의 모습 발견

 신기한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누구든  언어를 진지하게 파고들기 시작하면서  언어와 연결된 2 언어 자아 (Second Language Ego) 생기게 되어있다 (Seilhamer, 2013).     

 

나에게도 그러한 일들이 생겼다. 한국어를 그것도 나의 사투리를 구사할 때의 나와 영어를 구사할 때 나는 확연히 다르다. 두 가지 자아는 나의 성격, 태도, 그리고 사고에도 영향을 미친다. 내 안의 잠재된 다양한 성향들이 영어를 익히는 과정에서 발현되었다. 특히 영어는 우리말 보다 입의 모양을 더 크게 해야 하고 목소리 톤도 달라지게 만든다. 그래서 더 씩씩하고 또랑또랑하게 말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이는 행동 방식도 좀 더 적극적인 것으로 나를 바꾸어 놓았다. 그래서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때 나는 좀 더 밝고 표현력이 있는 사람이 된다. 나의 잠재되었던 밝고 건강한 기운은 영어와 더 연결이 잘 된다. 그 덕분에 평소 차분하던 나의 성격은 영어 의사소통이 급격히 향상될 무렵 훨씬 밝아지고 에너지가 넘치는 쪽으로 옮아갔다. 영어 교사로 일하고 있는 지금, 그래서 나는 에너지가 넘치고 밝은 사람으로 지낼 수 있게 된 셈 이다. 미국에서 영어로 한국어를 가르칠 때도 마찬가지였다. 미국 대학교 강의 평가에서 내가 가르친 학생들은 늘 나를 긍정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교사로 평가해주었다.       


❚직업 : 즐거움이 돈으로 이어지다.

영어 공부를 진정으로 즐기기 시작한 대학 시절 진로에 대한 고민을 크게 하지 않았다. 교사 임용고시가 그 당시도 요즘처럼 모집인원이 거의 없거나 한 자리 수였다. 합격의 가능성이 아주 희박한 상황이었지만 영어교사가 되기 위한 마음을 먹었다. 즐길 수 있었기에 힘들었지만 꾸준히 그 방향으로 향할 수 있었다. 덕분에 내가 좋아하는 것이 직업으로 연결되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먼저 해본 사람으로 이제 영어 공부를 시작하는 학생들을 지도하는 일은 참 즐거운 일이다. 영어 포기자였던 내가 영어 때문에 속속들이 힘들어 본 적이 있었기에,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영어 학습자이기에 나는 그들에게 세심한 안내자가 될 수 있다. 그런 즐거움을 나누면서도 동시에 나에게 매달 월급이 들어오니 감사한 일이다.      


❚또 다른 직업: 영어를 할 수 있어서 해 줄 수 있는 게 많다.

영어를 어느 수준 이상으로 할 수 있게 되고 나면 나라가 바뀌어도 나의 다양한 능력이 아주 유용해 질 수 있음을 체험했다. 우선, 영어 학습자인 나이지만 미국에서조차 영어를 가르칠 수 있게 된 것이 참 신기했다. 영어 학습자인 영어 교사는 영어 원어민 교사보다 학습자들을 코칭하는 데 더 탁월한 장점을 가지고 있음을 현지인들은 알고 있었던 터였다. 그 덕분에 나는 미국 대학교내에서 영어 강사로 일 할 수 있었다.    

       

물론 나의 모국어인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도 가능해졌다. 영어와 한국어 둘 다 구사하는 사람이였기에 영어를 못 하는 한국어 전공자보다 내가 우위에 놓였다. 그 덕분에 미국 박사과정 내내 등록금 전액을 감면 받았고 월급까지 받아 가며 즐겁게 내 나라 말을 가르치는 흐뭇한 경험씩이나 할 수 있었다. 외국에서 자신의 나라 말을 가르친 경험을 해본 사람은 안다. 그게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지. 그것도 세종대왕의 엄청난 유산인 한글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일에 내가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은 상상만으로도 짜릿하다.      


영어를 할 수 있었던 덕분에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미국 유학 시절동안 나는 한국인 이민자들에게 크고 작은 일에 도움을 줄 수 있었다. 대단한 일이나 사업의 통역을 받거나 한 건 절대 아니다. 다만, 미국의 이민자로 살아가는 고단한 일상에 나의 작은 손길이 따스함을 전하기를 바랐다. 특히 우리나라 아이들에게 보잘 것 없는 나였지만 자그마한 은신처가 되기를 바랐다. 아련한 예전의 일이 되어 버렸지만, 먼 타지의 작은 학교에서 한국말을 하는 한국인 선생님을 마주했을 때 그 아이들의 반가운 눈빛을 잊을 수 없다. 한국 아줌마가 낯선 미국 학교에 그들과 함께 있다는 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을지 사뭇 상상이 된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부모님이 학교와 원활한 소통을 할 수 있게 중간다리 역할을 해 드리는 것도 나에겐 소중한 일들이었다.      


지난 몇 주간은 특히 영어 덕분에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기쁜 일이 있었다. 미국 유학시절 나에게 멘토와 같은 레인 할머니와 밀튼 할아버지께서 한 달 간 한국을 방문하셨다. 특히 레인 할머니에게 한국은 평생 처음이었다. 내가 그들의 나라에서 유학생으로 있을 동안, 그분들의 신세를 질 일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 나라로 그분들이 오셨다. 그분들에게 진 신세를 조금이라고 갚고 싶었다. 그래서 그분들의 도움꾼이 될 수 있었다. 오랜 한국인 지인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나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두 분께 영어로 통역을 해 주는 역할을 자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난 일요일은 아주 특별했다. 밀튼 할아버지께서 알고 지내는 한국인 목사님이 계셨는데, 그분이 자신의 교회에 와서 어떻게 신실한 크리스찬이 되었는지 간증을 해달라고 부탁하셨다. 할아버지는 영어로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해 영어로 간증을 하셨고, 내가 그 통역을 맡았다. 나로서는 처음 해본 특별한 경험이었다.      


❚세상 공부: 우물 밖으로 크게 점프해서 나가다

많은 세계 인구가 공통으로 사용하는 언어 중 영어가 단연 으뜸 자리를 차지한 것은 아주 오래된 이야기이다.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한번쯤 외국으로 나가고 싶어 한다. 중년의 시작인 40이 되던 해, 나 또한 평소 닦아 놓은 영어 실력을 써볼겸 세상 공부를 하러 갈겸 미국 유학을 계획했다. 인생의 황금기를 놓치고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큰 주저함 없이 미국 유학을 떠났다.      


우물 밖으로 개구리가 크게 점프해서 나간 거나 다름이 없었다. 한국 사회에서 평생 살던 내가 미국 사회에서 살아본 경험은 나의 가치와 삶의 태도를 엄청 바꾸어 놓았다. 거의 180도 바뀌었다고 할 정도이다. 미국 유학 기간 동안, 나 자신의 내면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세월을 보낼 수 있었다. 이제는 남의 눈치를 보며 보이는 것에 신경쓰기 보다는 나의 내면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불평과 불안, 분노와 후회 이런 감정이 나의 마음의 많은 부분을 차지 했었다. 미국 유학기간 동안 엄청난 사이즈의 감정 파도를 맞닥들이며 살아야 했다. 그런 강도 높은 훈련 덕분인지, 이제 귀국하여 잔잔한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은 불평, 불안, 분노, 후회와 같은 감정이 크게 나를 요동치게 만들진 않는다.      


❚세상 정보는 대부분 영어: 영어로 검색하면 내 손안에 모든 정보가 들어온다.

영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은 온라인 세상과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Zuparova, Shegay, & Orazova,2020).우리는 그저 지식과 정보를 영어로 검색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만 하면 된다.      

미국 유학을 떠나 내가 한 대부분은 스스로 정보를 찾아서 공부하는 것이었다. 물론 영어라는 도구를 사용해서 주어진 과제며 프로젝트, 그리고 마지막에는 박사 학위 논문 쓰기에 이르기까지 영어로 정보를 탐색하고 그것을 구조화하며 나의 것으로 녹이는 일이었다. 유학을 떠나기 전에도 물론 영어로 정보를 탐색해 본 일은 있었다. 하지만, 유학을 마친 지금, 내 마음의 언어 장벽은 거의 사라졌다. 이제는 찾고 싶은 정보가 있으면 구글 영어 검색을 먼저 한다. 오랜 세월 경험한 덕분에 우리나라 검색엔진보다 구글 영어 검색을 하면 정보를 몇 십배나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것을 잘 알게 되었다. 온라인 세상에 대부분의 정보는 영어로 존재하고 있다.       


미국 박사 학위는 나에게 그런 경험과 능력을 쌓게 만들어 주었다. 비록 계속해서 연구하는 길을 가지 않고 예전의 영어 교사의 자리로 되돌아 왔지만 내가 가진 도구는 더욱 섬세하게 연마되었다. 그 덕분에 영어 학습자들을 안내하는 일을 좀 더 섬세하고 깊이 해 줄 수 있게 되어 뿌듯하다.      


❚넓어진 시야: 아는 만큼 보인다.

미국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솔직히 미국이나 미국 사회에 대해 비현실적일만큼 긍정적인 선입견을 가졌다. 영어를 할 수 있었기에 미국 유학 기간 동안 미국 문화와 종교에 대한 경험을 한층 더 깊이 할 수 있었다. 거의 4년간 미국 백인들만 다니는 미국 현지 교회에 다녔다. 미국 남부의 백인 문화, 그 한가운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그들의 신앙생활도 미국 유학 기간 많이 경험할 수 있었다. 그들과 어울리며, 아이들을 그 교회 소속 학교에 입학시키며 더욱 깊숙이 그들의 삶으로 들어가 체험해볼 수 있었다.      

문화적 배경이 아주 다른 미국 사람들과 크고 작은 오해를 통해 문화적 차이를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나의 편견과 선입견이 아주 컸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몇 해에 걸친 그들의 삶의 방식에 대한 관찰과 직접 부딪힌 경험덕분에 이제는 다른 문화에 대한 공감 능력이 어느 정도 발달 되어진 것 같다.      


❚미국, 영국, 브라질, 러시아, 인도, 일본, 중국 : 나이, 국경을 뛰어넘어 친구가 되다

다양한 나라 사람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거나 일을 함께 하거나 오랜 친구로 곁에 두거나 하는 일은 참 유쾌한 일이다. 다양한 음식을 먹을 때 느끼는 그 행복감과 비슷하다.


그들이 살아온 삶과 나의 삶이 어느 포인트에서 비슷함을 발견할 때 느끼는 그 반가움,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해 더 알고 싶어하는 우리들의 모습에서 느끼는 그 신선함,    

  

모두 타국에서 만난 친구들이지만 내 인생의 어느 시기에 만난 좋은 인연의 친구보다 더 값지고 귀한 인연이다. 가끔은 문화적 차이로 오해를 하며 며칠 간 마음 서운해 하곤 하던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또 이내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며 한발짝 다가가려는 마음을 먹는다. 타국에서의 고단한 삶이지만 서로에게 큰 의지가 되어 주며 우리는 씩씩하게 살아냈다. 지금도 가끔 SNS의 다양한 플랫폼에서 그들의 일상과 안부를 체크하곤 한다. 예전처럼 매일의 생활에서 만나지는 못하는 사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그들은 내 친구들이다. 나이가 서로 달라도 성장한 문화가 달라도 믿는 종교가 달라도, 각자 직업이 달라도, 그래도 우리는 영어를 도구로 그렇게 삶을 나누고 정을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 나의 공부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지금껏 해온 일들과 얻은 일들은 끝이 아니라 연속선상에 있는 일들이다. 여전히 나의 제2언어 자아는 발달해 가고 있고, 영어로 인한 나의 직업 세계는 더 깊어질 것이다. 영어라는 도구로 내가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일, 내가 세상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들이 풍부해졌다. 평생의 친구들을 공간을 초월해서 계속 교제를 할 수 있다. 그들로부터 또 계속해서 인생을 배울 것이다. 영어는 유한한 나의 시간을 좀 더 다채롭게 보낼 수 있게 하는 데 둘도 없이 소중한 도구이다.      


오늘 하루 눈을 떴을 때 마음이 설레는 이유는 위의 모든 것이 가능한 시간들을 마주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억을 떠올려보니, 이런 일상의 꽉찬 느낌, 설렘은 영어를 좀 할 줄 알고 나서부터였던 것 같다.      


❚참고문헌

- Zuparova, S., Shegay, A., & Orazova, F. (2020). Approaches to learning English as the source of all. European Journal of Research and Reflection in Educational Sciences, 8(5).


- Seilhamer, M. F. (2013). English L2 personas and the imagined global community of English users: Do L2 users feel ‘like a different person’ when speaking in English? English Today, 29(3), 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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