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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 Soon Nov 12. 2023

#29. 타임 머신을 타고

: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한 가지

❚문득문득 생각나는 사람들

더 이상 만날 기회가 없을 것 같은 사람들, 하지만 과거 어느 한 지점에서 나와 참 많은 걸  나눈 그런 사람들이 있다. 한국으로 귀국한 이후 정말이지 문득문득 생각나는 사람들 대부분은 내가 미국 유학 시절 이런저런 이유로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다. 그런 인연의 사람들 대부분은 계속 내가 살던 그 미국 남부에 여전히 지금도 살고 계신다.      


퇴근 후 집안일을 말끔히 다 해치우고 나는 집 옆 강변 산책로에 걷는 걸 좋아한다. 멀티태스킹을 하느라 지친 나의 뇌를 로그아웃하는 그 시간이 나의 매일의 루틴이다. 그 시간에 여지없이 내 생각을 차지하는 사람들은 나와 색다른 인연을 맺은 그분들이다.      


❚문득문득 생각나는 장소들

추억이 깃든 장소는 앨범처럼 머릿 속에 늘 남아 있다. 차를 마시다가도 길을 걷다가 혹은 혼자 밥을 먹다가, 식사 준비를 하다가, 설거지를 하다가, 혹은 정말이지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다가도 나에게는 언제고 생각나는 곳들이 있다.      


미국에서 우리 네 가족이 살던 우리 집, 아들과 풋볼을 던지던 뒤뜰, 딸과 심심하니 걷던 우리 동네 산책길, 한 시간 운전하던 나의 출퇴근 길, 내가 가르치고 배우던 대학원 교실, 초코 쿠키와 커피를 먹으며 수다를 떨던 레인 할머니의 거실, 매주 일요일 꾸벅꾸벅 졸며 영어 설교를 듣던 교회 예배당, 토요일이면 일주일 치 먹거리를 사러 가던 코스트코, 아이들이 다니던 작은 미국 사립학교, 초등생인 아이들이 운동장을 분주하게 만드는 틈을 타 브라질 친구 루시와 러시아 친구 애나와 수다 떨던 학교 운동장 피크닉 테이블, 스산한 초겨울 바람에 떨어진 낙엽으로 뒤덮힌 우리 집 뒷뜰.       


미국이라는 공간과 우리나라라는 공간은 그저 사람이 사는 특정 지역이다. 그리 대수로울 것도 없이 그저 사람이 사는 공간이다. 하지만 내가 현재 생활하고 있는 나의 집, 나의 직장, 나의 산책길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다. 가끔은 그곳이 현실에 존재 했었던가 하는 의심이 들 만큼 다르다. 그 의심을 없애버리기라도 하듯 나는 내 기억 속 앨범을 자주 펼친다. 그리고 그 동네 이곳 저곳에 위치를 마음속 지도로 그려보기도 한다. 


❚모두 지난 시간 속에 존재한 그곳 그리고 그 사람들

분명히 그 기억은 실재 존재했던 곳과 실재 존재했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모두 지난 시간 속에만 존재한다. 물론 비행기를 타고 엉덩이가 더 이상 못 참겠다고 할 만큼 오래 비행기를 타고 가면 지금도 만날 수 있고 갈 수 있다. 그 사실을 앎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곳은 그 시간들은 통째 과거라는 시간에 묶여있다. 내가 그곳을 가려면 비행기가 아닌 타임 머신을 타야 갈 수 있다.   

   

유학 첫 해 내가 만난 사람들과 그 장소들은 지금 내가 비행기를 타고 간들 그곳에 있지 않고 예전과 같은 모습일 리 없다. 그래서 나는 더 소중하게 그 때 그 사람들과 그 공간을 내 마음속에서 잊지 않으려 문득문득 되새기는 거일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고 예전에 누군가에게 들은 것 같다. 어쩌면 이제 내가 그럴 나이가 된 거겠지. 새로운 경험보다는 현재까지 내가 한 그 색다른 경험들은 두고두고 추억하며 살기 모자랄 것 같지는 않다. 정말 꿈같던 그 세월이 꿈결처럼 느껴진다. 달콤한 꿈은 절대 아니었다. 현실이라 하기에는 받아들이기 힘든 세월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 기억에 분명히 존재한 그 시간들이다.      


❚분명히 나는 현재에 머물고 있다.

한 바탕 꿈을 실컷 꾸며 하룻 밤을 잠에서 깨어나듯 나는 그렇게 현재라는 공간으로 와서 살고 있다. 마치 꿈과 현실이 다른 만큼 달라도 아주 아주 다른 그 곳에서 머물었던 그 과거의 시간을 뒤로하고 나는 현재에 살고 있다. 어쩌면 멋진 꿈을 꾸고 기분 좋게 아침을 맞이하는 아이처럼 나는 그 추억의 시간을 머금고 살고 있는 현재를 즐기고 있다.      


가끔은 생각한다. 나에게 그 멋진 꿈같은 추억이 없었더라면 나의 인생의 앨범은 얼마나 초라했었을까? 비록 그게 누구나 부러워할 그런 호사스러운 미국 생활이 절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그 추억은 내 삶의 의미를 송두리째 바꾼 시간들이었음은 분명하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한다. 힘들고 괴로웠던 기억은 작아지고 아련히 좋았던 것만 마음에 깊이 남아있기 마련이다. 나의 유학생활에서 얻은 많은 기억들도 그렇다. 나에게 그 5년의 세월은 비록 괴롭고 어찌할 바를 모를 만큼 힘든 시간들이었다 할지라도 대체로 나에게 그 세월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과거 속 사람이 현재 내 삶으로

참 신기하게도 그곳에서 만난 사람 중에 나처럼 한국으로 와서 살고 있는 분이 딱 두 명이 있다. 한 명은 인도에서 온 대학원생인데 그 친구는 현재 우리 나라 최고의 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또 한 분은 미국 유학 시절 내가 언니라 부를 만큼 친하게 지냈던 분이다. 그분의 가족은 내가 귀국한 이듬해에 완전 귀국을 하셨다.      


나에게는 엄청난 경험을 가져다 준 미국 유학 기간에 나와 깊은 인연을 맺은 그 두 사람은 현재 나와 같은 나라에 산다. 같은 나라, 같은 시간대에 산다는 것은 참 좋다. 문득문득 생각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낮과 밤이 다를 만큼 시차가 다른 곳에 살고 있다. 하지만 그 둘은 지금은 나와 같은 시간대, 같은 나라에 살고 있다. 비록 서로 일상이 바빠 연락은 자주하지 못하고 있지만 같은 시간대, 같은 나라에 살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 더 깊은 친밀감을 느낀다.      


❚과거, 그 장소로 그 사람들 곁으로 

아련히 아름다운 시절로 회상이 되던 미국 유학 시절이다. 유년 시절이 아름답게 기억되더라도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비록 젊었던 그날들이 좋았다 하더라도 다시 삶의 많은 과업들이 기다리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나의 미국 유학 시절도 마찬가지다. 많은 좋은 기억과 의미있는 경험을 한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시간들이었다 하더라도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이제 나는 그 과거의 기억을 마음에 고이 간직한 채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고 싶다.      


내가 귀국한 이듬해 나처럼 귀국하신 그 분이 며칠 전 전화가 왔다. 다시 예전에 우리가 함께 머물던 미국의 남부 그 도시로 이민을 가신단다. 남편분이 그곳으로 다시 발령이 나서 2년만에 다시 예전 그 곳으로 이사를 가신다고 한다. 어떤 마음일까? 불과 2년 전 두 번 다시 미국으로 가지 않을 듯이 그곳의 집도 다 처분하시고 귀국한 가족이었다. 귀국 후 얼마 되지 않을 즘 통화를 한 적이 있다. 


“ 나 이제 다 들려, 다 들려. 주위 사람이 뭔 말 하는 지 다 들려~.” 라며 기뻐하던 그분의 말이 기억에 생생하다. 영어에 자신이 없으신 그 분이 거의 10년 가까이 미국 생활을 하니 얼마나 갑갑하셨을까? 주위의 사람들이 뭐라 하는 지 알아 들을 수 없는 그 시간을 견디는 게 얼마나 곤혹스러웠을까? 그런 세월을 청산하고 한국으로 귀국하고 가장 먼저 언어 장벽이 없어진 사실에 아주 기뻐하셨던 분인데 다시 미국으로 이민을 가신단다.      


❚허공에 흩날리는 낙엽과 내 마음 

귀국 후 지난 2년간 새로운 삶의 터전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며 또 열심히 사셨을 분이다. 이제 다시 그 터전을 뒤로 하고 예전 기억 속 그 장소로 다음 주면 다시 돌아간다고 하신다. 이미 남편과 아들은 먼저 간 이후여서 혼자 홀연히 짐 정리를 하고 떠나신다고 한다. 지난 주말은 미국으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나를 만나기 위해 멀리 기차를 타고 오셨다. 4시간 남짓한 만남을 위해 KTX를 타고 오셨다.      


둘이서 기억한 그 예전의 일들을 다시 회상하며 귀국 후 겪은 이런 저런 마음의 고충들을 나누며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결국 내 안의 가장 큰 질문은 답을 찾지 못했다. ‘참, 우리네 인생은 알 수 없는 미스테리로 가득하다. 알 수 없는 그 일련의 일들은 누군가의 컨트롤 안에 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그 목적이 무엇일까?’     


이리 저리 바람 따라 허공에 휘날리는 낙엽이 우리네 인생을 그리고 있는 듯 하다. 분명히 어떤 에너지가 작용했고 그 에너지의 영향으로 우리의 삶도 그렇게 저렇게 움직여 지는 듯 하다. 바로 2년 전 그분은 자신의 거처가 다시 그렇게 뒤집어 질 줄을 전혀 예상하시지 못하셨다고 한다. 중년의 나이임에도 그렇게 가장 기본이 되는 삶의 터전에 대한 예측도 할 수 없는 삶에 대해 피로함을 느끼는 듯 해 보였다. 그 마음이 정확히 헤아려 지지는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몇 해전 나 역시 미국에서 살면서 귀국을 하려 마음을 먹었으나 귀국의 길이 아닌 현지 거주를 택하도록 상황이 펼쳐진 그 때를 생각하면, 어느 정도 짐작은 된다. 이렇게든 저렇게든 우린 그렇게 삶의 갈피가 정해진 대로 살아가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무기력감을 느낄 만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또 그 삶의 노선을 성실히 밟아야 하겠지. 그분을 만나기 전 며칠 전부터 괜히 내 마음이 힘들었다. 마치 내가 그 먼 길을 떠나는 사람처럼 말이다. 하지만 막상 그분을 만나서는 나의 속내를 내비치지 못했다. 우리는 또 어쨌든 삶을 살아가야 하기에.


“언니, 이번에 미국을 다시 들어가시면 이제 지난 번과는 다르게 한 번 생활 해보세요. 언니가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들을 글로 써서 정리하고 저랑 SNS로 소통도 하고 지내요. 브런치도 좋고 인스타도 좋으니 언니의 그 시간들을 잘 정리해서 서로 만나지 못해도 깊은 속내를 서로 소통하고 지내면 좋겠어요. 언니와 저는 함께한 시간과 추억이 있으니 저는 너무 좋을 것 같아요.” 바로 나의 브런치를 보여드렸다. 그리고 그 언니의 인스타를 바로 팔로잉했다.      


영어로 소통하는 데 불편함을 가진 언니에게 어쩌면 나의 온라인 영어 스터디 모임도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서로 가까이 지내던 그때처럼 충분히 가까이 있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역시, 내 동생은 여기서도 열심히 살고 있었구나. 어쩌면, 그 사이 책도 출간하고 글을 이렇게 많이도 써놓았구나. 대단해. 대단해.”     

별 볼 일 없는 나의 브런치글을 대단하게 봐주는 그 분의 마음이 고맙다.      


❚이별의 슬픔을 맛보지도 못한 이별 

아쉬운 4시간의 만남을 뒤로 하고 우리는 서둘러 기차역으로 향했다. 40분 가량 걸리는 거리라 시간을 맞추어 커피숍에서 나섰다. 하지만 나의 예상과 달리 길은 막혔고, 막판에 네비게이션은 길을 엉뚱하게 가르켜주는 바람에 마지막 순간까지 마음을 조리며 운전대를 잡았다.      


역에 도착하니 열차 도착 시간 5분 전이었다. 갓길에 그분을 내려드리고 먼 발치에서 바라봐줄 겨를도 가지지 못했다. 종종 걸음으로 기차역으로 걸아가시는 것 같았다. 이내 전화가 걸려왔다. “터미널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이제 저기 기차가 들어오고 있다. 오늘 너무 고마웠다. 잘 지내.”

“네, 언니. 정말 다행이에요.” 기차를 놓칠까봐 정말 식은 땀을 흘리며 운전에 집중하느라 나는 이별의 슬픔은 조금도 맛보지 못했다. 눈물 흘릴 틈도 없이 우리는 시간에 쫓기며 이별을 했다.      


❚새롭게 거듭날 인연이길

귀국한 지 3년이 흐른 지금 그곳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이 그리워진다. 바쁜 일상에 쫓겨 서서히 나의 소식 전하는 일과 그들의 안부를 묻는 일에 소홀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 사람들은 나에게 참 소중한 인연들이었다. 겨우 겨우 삶을 이어 나가던 그 때에도 누구보다 나에게 와서 친구가 되어 주었고 나에게 삶의 희망과 정겨움을 알려주던 사람들이었다.      


이곳의 세계와 그곳의 세계는 마치 낮과 밤이 다르듯 그렇게 현저하게 다르다. 다른 두 공간을 잇는 매개는 오롯이 나의 기억과 추억, 그리고 그 사람들이다. 그 사람 중 대부분은 이곳이 아닌 그곳에 있다. 하지만 오늘 만난 그 언니는 이곳과 그곳 모두에서 알고 지낸 유일한 사람이다. 그 언니가 다시 그곳으로 간다는 건 참 서운한 일이다. 하지만 그 언니 덕분으로 또 다시 그곳 사람들과 인연의 끈이 계속 든든하게 이어지리라 기대가 된다.      


한창 초딩 중딩 아이들 키우느라 바쁘던 브라질 여인, 루시도 이제 나처럼 아이들로부터 자유로워졌겠지? 러시아에서 이민자로 와서 마흔 중반의 나이에 다시 회계학과로 입학해 다시 부지런히 새로운 삶을 일구던 애나도 이제는 어엿한 직장을 가졌고 그곳의 삶을 성실히 살고 있겠지. 여전히 새로운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해 함께 식사를 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밀튼할아버지, 그리고 묵묵히 그 할아버지의 뜻을 따르며 바지런히 몸을 움직이는 레인 할머니. 새벽 3시부터 일어나 쿠키와 빵을 직접 구워 한국 커뮤너티에 판매를 하는 내 친구 영주씨. 아이 넷을 키우지만 여전히 삶의 여유를 잃지 않던 멋스러운 아리아나.      

삶의 터전이 달라 막상 연락한들 딱히 나눌 이야기가 별로 생각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을 언제고 다시 만나 예전의 일들을 회상하며 좋은 친구의 정을 다시 나누고싶다.      


❚하나님의 큰 뜻에 그저 순종하며 

쳇바퀴 돌 듯 매일의 반복되는 삶에 회의를 가지던 마흔, 그때부터 불과 십 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짧은 세월임에도 나에게 일어난 예상 밖의 모든 사건들과 일들은 그저 나를 겸허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또 어떤 삶의 반전이 나를 놀라게 할지. 그리고 나를 더 겸손하게 할지 알 수는 없다. 다음 주에 미국으로 떠날 그 언니의 삶도 여기 남아 있는 나의 삶도 여전히 우리는 알 수 없다.      


혼자 발바둥치며 상황을 내 뜻 대로 만들려고 애를 써도 결국 이룰 수 없는 것은 이룰 수 없었다. 하지만 나에게 선물처럼 주어진 많은 일들 역시 손에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삶의 프레임을 바꾼 이후 이제 나는 그 일련의 많은 일들이 하나님의 큰 뜻으로 일어나고 있음을 믿기로 했다. 믿고 그저 순종하며 매일의 서프라이즈에 감사하며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새롭게 시작할 그 언니의 미국 생활이 나에게도 그 언니에게도 또 어떤 선물을 가져다 줄지 사뭇 기대가 된다. 아무쪼록 마음의 희망과 평화를 갖고 따뜻한 일상을 살아 가실 수 있기를 바래본다. 나 역시 이곳에서 삶이 녹녹하지 않지만 나 역시 그 똑같은 하나님을 믿으며 그렇게 하루를 또 설레며 시작하고 감사해하며 하루를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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