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넓은 도서관에 각자 토론하든, 혼자 숙제하든, 자유롭게 자기의 스타일대로 공부하는 미국 대학교 도서관은 나에게 작은 쉼터였다. 오전에 있는 전공 수업을 하기 전 이른 아침이나, 점심시간, 또는 오후 수업을 기다리는 시간 동안 나는 늘 그곳에 머물렀다. 거기서 점심을 먹고 늦은 오후 수업을 기다리며 과제도 하고 삶의 여유도 즐겼다. 한국이었으면 혼자 밥 먹기가 머쓱할 법도 하지만 그곳에는 전혀 그런 일이 없다. 다들 각자 음식을 먹고 남을 신경 쓰지 않는 문화이다 보니 도서관 열람실에 앉아 책 읽으며 혼자 먹는 밥도 진정으로 즐길 수 있었다. 점심은 늘 집에서 간단하게 도시락을 챙겨가서 해결했다. 도서관 1층에는 파네라 라는 유명한 델리 가게가 있었다. 그곳에서 커피 한 잔을 사서 후식으로 마시노라면 나는 세상 부러울 게 없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나는 중학교 영어 교사였다. 내가 근무하던 중학교는 학급수가 작아 교사 한 명당 맡는 업무가 보통학교의 두 배가 되는 상황이라 수업과 기타 업무에 분주했었다. 게다가 이제 초등생이 된 둘째와 4학년인 첫째를 챙기기까지 해야 하던 워킹 맘이 한국을 떠나 이렇게 한가로이 평일 낮에 도서관에서 앉아 젊은 기운들과 같이 여유로운 낮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다는 것이 꿈만 같았다. 두 상황이 달라도 너무 달라 같은 현실이라 하기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마음 한편으로는 ‘내가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는 건가?’ 하는 불안한 마음이 생길 정도였고 아등바등 매일을 살아가고 있는 학교 동료들의 얼굴도 생각이 났다. 비록 즐거운 취미 독서가 아니라 수업에 제출할 과제들을 준비했지만, 햇볕 좋은 창가에 앉아서 커피 한 잔 마시며 즐기던 그 시간적 여유로움과 공간의 자유로움은 나를 충분히 행복하게 만들었다. 나의 그 첫 학기에는 앞으로 펼쳐질 나의 유학생 생활이 쉼 없이 밀려오는 거친 파도와 같을 것이라고는 조금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저 앞날을 장밋빛으로 멋지게 색칠했고 모든 것이 다 잘 될 거라 자기 체면을 건 것도 사실이다.
❚심지어 영어가 형편없어도 받는 장학금
지도 교수님과 상의 끝에 듣기 된 첫 학기 수업은 전공 한 과목에 교양 두 과목이었다. 교양 두 강좌는 과제도 거의 없고 나에게는 거의 식은 죽 먹기였다. 그 강좌는 원래 대학 입학허가는 받았으나 상대적으로 영어 의사소통 능력이 부족한 대학원 학생들을 위한 영어 쓰기 및 말하기 강좌이다. 나의 클래스매이트 중에는 수학 천재인 중국 유학생 두 명이 있었다. 대학원생 신분으로 학부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GTA(Graduate Teaching Assistant)라고 했다. 그들의 영어는 사실 알아먹기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 친구들은 나의 영어 실력을 살짝 부러워하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그 친구들이 엄청 부러웠다. 그들의 수학적 머리도 부러웠지만, 진짜 부러운 것은 다른 것이었다.
❚나 빼고 다 학비 면제자들
나만 빼고 그 교양 수업을 듣는 모든 학생들은 GA (Graduate Assistant 대학원 조교)의 타이틀을 가진 외국 유학생이다. 대부분 공대생이거나 수학, 과학 쪽에 뛰어난 외국인 학생이다. 그들은 입학할 때부터 조교 자리를 받고 입학한 학생들이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은 이미 등록금을 전액 감면받고 대학원을 다니는 대학원생이었다. 미국 대학원은 첫 개강일 이후 20일이 지나면 수강 취소 및 정정 기간이 마감된다. 그 기간이 지나면 이내 학비 납부도 완료해야 한다. 석사 과정 동안 납부한 한 학기 학비는 부양가족인 남편, 두 아이의 의료 보험료(International Insurance-Family) $2,861, 내 보험료(Student Insurance) $965, 그리고 외국 유학생 비(International Student Fee) $130, 등록금(Tuition) $14,000 그리고 기타 주차비 등 총 $18,800정도 였다. 이걸 한화로 하면 한 학기에 2천5백만 원 정도의 엄청난 돈을 현금으로 완납해야 했다. 현실자각타임이 성큼 다가왔다. 인터넷 뱅킹을 해서 미국 내 계좌로 돈을 움쑥 송금 시켜왔다. 교사로 일하면서 모아둔 목돈의 많은 부분을 자유출입 계좌로 옮겨두고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리고 매 학기 등록금을 지불할 시즌이 되면 미국으로 송금해서 대학원 학비를 현금으로 계좌이체 했다.
❚학비 마련하려 별짓 다 하고 깨달은 것
첫 학기 등록금으로 그 어마한 금액을 현금으로 내고 나서 현실 자각이 시작되었다. 일단 첫 학기 등록금을 이렇게 낸다고 하더라도 나머지 학기는 어떻게든 학비를 마련하고자 애를 썼다. 일단, 학교 홈페이지에 장학금 신청란을 샅샅이 뒤져서 필요한 지원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살짝 기대하며 보내는 기다림의 며칠을 보내고 어김없이 나는 자격요건이 되지 않는다는 자동 이메일을 받았다. 대부분 대학교 홈페이지에 소개된 장학금은 외국인 학생에게는 해당이 안 된다는 사실을 몇 번의 시도 후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는 더 이상 부질없는 노력은 안 하기로 했다.
장학금을 포기하는 대신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를 벌어 보려고 결심했다. 지도교수님을 찾아 가서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미 있는 조교 자리를 내가 차지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무엇보다 석사 과정의 외국인 학생에게는 특별히 뛰어난 능력이 없는 이상 조교 자리가 부여되지도 않는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옵션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학교 밖의 파트 타임도 F1 비자 학생에게는 아주 제한적이라 거의 현실상 금지되어 있었다.
❚외국 유학생들을 호구로 아는 미국 대학교
한 학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재정상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자 나는 더 이상 잃을 게 없다 싶어 교육대학원 학장에게 ‘항의성 이메일’을 보내기로 했다. 미국 대학교는 외국인 유학생을 그냥 호구로 생각하는 것 같아 화가 치밀어 올랐다. 기왕에 호구가 되더라도 그네들의 유학 장사에 쓴소리를 하고 싶었다. ‘미국 대학교는 나 같은 유학생들에게 아무런 동기를 부여하지 못한다. 열심히 공부해서 모든 성적을 올 A, 평점 만점(4.0)을 받아도 외국인 대학원생은 아무런 장학금 혜택을 받지 못한다. 교육에서 동기는 아주 필수 요소이다. 하지만 미국 대학교는 필수 요소, 즉 학습 동기를 진작시키는 것 (장학금 같은 것)이 빠진 미완성된 제품을 외국인 학생들에게 상품으로 팔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 이메일을 보내고 나서 며칠은 기분 좋게 지냈다. 뭐 대단한 내용은 아니지만, 그냥 ‘내 화를 표출하고 싶은 나의 욕구는 해결했으니 그걸로 족하다.’ 싶었다. 결국 두 주가 지나도록 이메일 답장은 없었다. 미친 척하고 같은 이메일을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 한 번 더 발송했다. 그랬더니, 몇 주 있다가 학과장 밑에 일하는 직원으로부터 답장이 왔다. 나를 좀 만나자고 했다. 나는 기대를 하며 그 직원의 사무실로 갔다. 내가 계속 이메일을 보내니까 무마는 해야겠다 싶었는지 그냥 ‘언젠가 좋은 기회가 올 것이다’라는 막연한 위로를 하려고 나를 부른 거였다. 결국 아무런 재정적 도움을 받지 못하고 그 항의성 이메일 사건은 끝이 났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가을 학기 무렵 나는 대학원으로부터 ‘Outstanding Interntional Student’ (올해의 유학생상)을 받았다. 아마도 그 이메일 덕분인 듯 하다는 생각도 했다. 더 어처구니 없는 것은 그 시상식에 참석하라는 이메일을 나중에 확인하는 바람에 그 시상식을 놓쳐버렸다. 게다가 그 상도 그저 상패만 있을 뿐 상금은 없었다. 나는 그 시상식이 지난 며칠 후 담당자로부터 그 상패만을 전해 받았다. 그걸 받아 들고 ‘내가 눈에 띄는 (outstanding) 짓을 했으니 그 상은 받아 마땅하다’하고 나는 혼자 생각하며 어이가 없는 웃음을 지었다.
❚내돈 내산 미국 유학생활, 제대로 다녀보기로.
결국 별 짓을 다했으나 소용없이 나는 두 학기 등록금을 고스란히 내야 했었다. 기왕에 내야하는 학비라면 나는 내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낸 만큼 ‘뽕을 뽑기’로 했다. 뭐든지 열심히 살아 보기로 마음먹었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현지인들과의 교류도 열심히 해보기로 했다. 나의 ‘열심 모드’를 풀가동 하기로 했다. 그 덕분에 석사 박사 과정 모든 과목에서 평점 만점을 받았다. 그리고 현지인 친구들과 좋은 추억거리도 만들었다. 돈을 내며 배워야 제대로 배운다는 말도 맞는 거 같다. 엄청난 돈을 냈기 때문에 나의 열심 모드는 꺼지지 않았고 그 때문에 나의 미국 유학시절은 다양한 경험으로 꽉 찬 세월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