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기쁜 소식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방법

나를 진정으로 인정하기, 나를 친구와 평행선 상에 두지 않기

by Hey Soon

연말 연초가 되면, 우리는 한동안 뜸하게 지낸 친구들과 새해 인사를 나눈다. 별 달리 특별할 것도 없는 새해 인사지만, 어떨 땐 특별한 순간일 때가 있다. 이번 2022년 새해 인사 전화가 그런 순간 중 하나 였다.


미국 유학 시절 초창기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한국에서 영어 교사를 하다가 박사 지망생인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유학을 왔다. 나보다 6살 어린 동생이지만 같은 영어 교사 출신이라 친하게 지냈다. 그 당시 나는 석사 과정 중 이였고, 그 대학교 ESL강사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친구는 내가 가르치는 ESL 프로그램의 수강생 이었다.


그렇게 한 학기를 보내다가, 그 친구는 그 대학교 교육학 박사 과정에 입학했다. 나도 한 학기 뒤에 그 친구와 같은 전공의 박사 과정에 입학했다. 결국, 우리 둘은 유일한 한국인으로 서로 많은 의지를 하며 즐겁게 박사 공부를 같이 했다. 그 당시, 나는 한국어 강사로 일하며 학비를 전액 감면을 받았고 강사로 일하면서 월급도 받았다. 하지만 그 친구는 첫 학기 동안은 그런 혜택을 갖지 못했다. 두 번째 학기가 시작 될 무렵, 그 친구는 내가 석사를 한 영어교육과에 조교로 지원했다. 나는 그 친구가 꼭 되길 바라는 마음에 석사 시절에 알고 지내던 그 과 교수님께 점심을 대접하면서 그 친구를 꼭 뽑아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그 친구의 능력이 탁월해서 그 조교 자리에 뽑히고 학비 감면을 받게 되었겠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을 해주고 그 결과가 좋아서 괜히 뿌듯해지기도 했었다. 아무튼 그 친구와 나는 2년 반 동안 박사 공부를 하면서 서로에게 큰 힘을 주고 의지가 되는 사이였다.


박사 공부를 시작한 지 2년째 되는 해에 나는 미국 생활에 회의를 많이 가지게 되면서 박사 학위를 빨리 따서 귀국하는 쪽으로 마음을 먹었다. 이 낯선 땅에 자리를 잡고 두 아이를 이 곳에 이방인으로 정착 시키는 게 자신이 없었고, 그럴 이유가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박사 학위를 목표로 박사 과정 시절을 보냈다. 한편, 그 친구는 미국에서 교수가 되고 싶어 했고, 그 길을 위해 논문 발표나 세미나 참가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애초에 목표한 것이 달랐기에, 같은 박사 공부를 하면서도 그 친구와 나는 서로 다른 것을 꿈꿨다. 결국, 나는 그 친구보다 일 년 빨리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코로나가 시작되던 2020년에 서둘러 귀국을 했다. 그리고 예전의 그 자리로 돌아와서 영어 교사로 길을 가고 있다. 내가 떠난 그 일 년 동안, 그 친구는 여전히 자신의 꿈을 향해 차분히 매진하고 있었다. 졸업하기 전에 더 필요한 수업을 듣고, 논문을 쓰기 위해 필요한 스킬을 더 갈고 닦으며 학자로서의 자질을 갖춰나가고 있었다. 가끔 씩 전화를 하며 서로의 근황을 물어보며 격려를 해줬다.

그렇게 일 년 반이 지났다. 드디어 그 친구는 어제 새해 안부 전화에서 그 힘들다던 미국 주립대학교 조교수로 임용 되었고, 다음 주부터 수업을 하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왔다. 나는 교육학 박사 학위를 가지고도 교수로 취직 되는 게 무척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리고 실제로 외국인으로서 그렇게 취업하기가 아주 힘들다고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는 해냈다. 나와 같은 자리에 있었지만, 그 친구는 나와 다른 별을 바라봤고 그 친구는 자신의 별을 향해 매진한 덕에 마침내 해냈다. 친구의 일이지만, 너무 대견했다. 그리고 기꺼이 나의 진심어린 축하를 전했다. 이제 내가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미국 주립대학교 교수가 된 거다.


그런데, 한 시간 가량의 흥분된 통화를 끝내고 나는 갑자기 뭔가 모를 이상한 감정이 생겼다. 그건 분명 질투도, 시기도 아니다. 난 그 친구의 기쁜 소식에 진정으로 기뻤다. 그런데, 그 소식은 잔잔하던 내 마음의 평정심을 잃게 할 만큼 임팩이 컸다. 그 소식은 자연스레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내안에 많은 질문들이 뿜어져 나왔다.



나는 무엇을 했었나?

나는 무엇을 원했었나?

나는 친구의 성공이 부러운 건가?

내가 부러워 할 일인가?

그 친구의 삶의 목표와 내의 것이 다른 건 분명한데, 그 친구의 목표가 더 훌륭한 것인가?

나의 것이 보잘 것 없는 것인가?

만약 내가 당장 그 친구처럼 미국주립 대학교 교수로 임용 된다면 나는 행복할 것인가, 내 아이들은 그런 길에 동참하면서 미국에 계속 살아야 하는 일을 어떻게 생각할 것 인가?

그럼 나는 여기서 지금 패배자로서의 기분을 느껴야 하는 건가?

그럴 이유가 합당한 이유가 있는가?

나는 왜 그 당시 그 친구와 다른 별을 바라봤던 건가? 내가 원하는 일은 무엇인가?

내가 하면서 기쁨과 즐거움을 찾는 그 일은 무엇인가?

나는 남을 위해 살지 않기로 했음에도 왜 남이 대단하다고 하는 그런 일을 한 사람 만을 대단하게 생각하고 있는 건가?

여기 한국에서 나는 이제 무엇을 대단하다고 생각할 것인가?

나를 위한 대단한 일은 무엇 인가?

내 인생의 남은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의미롭게 생각하고 살 것인가?

나의 꿈은 나의 열정은 어디로 향해야 할까?


다행히, 나는 박사 과정 동안 그 친구가 있었던 그 공간에 있었고, 그 친구가 되고 싶었던 그 교수 자리에 근무하던 사람들과 친분을 쌓았다. 그 덕분에 나는 그 친구가 되고 싶은 그 교수라는 직업에 대해 막연한 동경도 부러움도 없다. 그들을 가까이 지켜보면서 나는 더욱 더 교수라는 직업은 나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주지 못할 것이라 확신했다. 조용한 연구실에 혼자 점심을 먹으며 조용히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글을 써 내려가는 일이 그들이 늘 하는 일 이였다. 나는 지켜보는 것 만으로도 외로움과 공허함이 느껴졌었다. 아마도 그들은 연구로 알게 된 사실들에 스릴을 느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건 내가 가고 싶은 길은 아님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런 경험을 통해, 이제 나는 사실 나와 다른 길을 가는 그 친구가 마냥 부럽거나 질투심이 생기거나 그렇진 않다. 다만, '이제 나도 나의 별을 향해 사다리를 놓고 한 발 한 발 걸어올라 가야 할 텐데...' 하는 조바심이 조금은 생겼다. 조금씩 매일 나의 별을 향해 나가고 싶은 나의 소망이 이루어지길 바래본다.


결국, 내가 알게 된 친구의 기쁜 소식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법은 내 안의 나를 진정으로 인정하기, 그리고 그 친구를 나와의 평행선 상에 두지 않기이다. 그런 두 가지의 마음가짐은 내가 친구의 기쁨을 진심으로 기뻐해줄 수 있게 만들었다.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요즘, 나는 그 친구와의 작은 인연이 또 어떻게 이어질지, 내가 그릴 내 삶의 선 위에 그 친구가 어떻게 귀하게 엮어질지, 나의 별로 향하는 그 길에 어떤 귀한 꽃길로 피워질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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