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없으세요? 네, 없는데요.

‘죄송한데 없어요’ 라도 해야하나?

by Hey Soon


❚ 연말정산은 피할 수 없는 연중 행사


연말정산을 해야 하는 시즌이 돌아왔다. 솔직히 매년 하는 일이지만, 매번 새롭게 느껴진다. 일 년에 한 번 밖에 하지 않는 일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 지도 모른다. 미국에 있을 때도 연말 정산은 내 머리로는 할 수 없는 일이였다. 다행히, 미국에서의 세금 보고는 세금관련 우편물을 다 모아다가 회계사에게 건네주면 끝이다. 물론 수수료를 좀 내야하긴 하지만, 영어로 된 세금 관련 서류를 해내기는 자신이 없었기에 매 번 회계사를 통해서 세금 보고를 하곤 했다. 그 분은 나의 서류를 다 보고 추가 서류가 필요하면 문자나 전화 등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별 무리 없이 매년 그렇게 연말 정산을 했다.


거의 5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오니, 그 사이 연말 정산도 아주 간소화 되고 편리해진 거 같다. 홈텍스에서 나의 웬만한 정보는 다 조회가 되고 이를 일괄 다운 받아서 나이스에 접속하여 업로드하면 거의 끝이다. 난 그 심플함에 경이를 표할 정도이다. 그래도 이제 한국으로 돌아왔으니 나도 남들처럼 홈텍스에 기입되지 않은 개별 서류들을 좀 더 꼼꼼히 챙겨서 잘 해보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월세명세등록이라는 부분을 챙겨 보기로 했다. 자격 요건을 읽어보니, 내가 해당 사항이 있는 것 같아 나의 정보를 나이스에 기입하고 부동사 임대 계약서도 챙겨서 학교로 갔다.


❚ 집이 없으세요? 네, 없는데요.


행정실 직원은 나의 출력물 꾸러미를 훑어보더니, 대뜸 나한테, 이건 뭐에요? 월세명세등록이 해당 되세요? 하고 물어왔다. 나는 “제가 알기로는 연간 소득도 제한에 넘지 않아서 해당 되는 걸로 알고 있어요.”라고 답했다. “집 주인과 미리 상의 안하고 그렇게 보고해버리면 집 주인 뒤통수를 치는 거나 마찬가지에요”라면서 참고하라는 듯 말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집이 없으세요?”라고 물어오는 게 아닌가? 갑자기 훅 들어온 질문이었다. 순간 나는 당황했다. 하지만, 나는 별 당황한 내색을 하지 않고, 당당히 “네, 없는데요” 했다.



그런 단순한 질문과 대답 이면에 무언가 어색한 시그날이 오고 감을 느꼈다. 나는 ‘죄송한데 없어요’ 라도 해야 하는 듯한 그런 묘한 느낌을 가졌다. 그분의 질문은 “그 나이 되도록 아직 집이 없으세요? 당연히 집이 있어야할 나이 인데요? 어떻게 하다가 집도 없으세요? 헐 대박” 내 귀엔 그렇게 해석이 되었다.


물론 나의 꼬인 생각일 수 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여러 직원이 다 있는 그런 공개적이 자리에서 그렇게 “집 없으세요?”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정보를 묻는 질문을 받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것도 “밥 먹었어요?”처럼 무심하게 아무 거리낌 없이 질문을 받으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나는 법정에서 예/아니오 질문에 답하듯이 “네, 없어요” 라고 짧게 말했다. 그러나 내 안의 완전한 문장의 대답은 “네, 저는 집을 살 필요를 못 느꼈어요. 그리고 집에 투자한 대신 저는 제 인생과 우리 가족의 인생에 투자를 했어요. 그 투자가 색다른 투자라 당신은 이해를 못 하겠지만요. 세상에는 다르게 사는 사람들이 참 많아요. 별 관심도 없으시겠지 만요. 그런데, 감히 그런 개인적인 질문을 어떻게 그렇게 쉽게 할 수 있죠? 어떻게 그렇게 사람을 훅~치고 올 수 있죠?”였다.


일상 대화에서 우리는 이런 상세 버전의 질문과 대답은 절대 주고받지 않는다. 우리는 “집 없으세요?” “네, 없어요”라는 짧은 질문과 대답만 주고받을 뿐 그 나머지는 각자의 마음에 각자의 의도대로 해석할 뿐이다. 내가 만약 위의 상세 대답을 실제로 하는 순간 싸움이 벌어지거나 미친 사람 취급 받거나 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래서 난 깊은 펀치 한 방을 얻어맞고 행정실을 나왔다.


❚ 펀치를 맞고도 평정심을 찾는 방법

그럼에도 나는 마음의 평정심을 다시 찾고 싶었다. 그날 오후 집으로 돌아와 산책을 하며 혼자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이제 유학을 끝내고 제 자리로 온지 일 년 반이 지났다. 40년을 살아온 내 나라이지만 다시 적응 하는 일은 미국에서 적응하는 것만큼 에너지가 든다. 이곳에서의 적응은 물리적인 요소 보다는 심리적 요소가 더 강하다. 오늘과 같은 그런 짧은 찰나와 같은 순간도 나에겐 그렇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상대를 많이 그것도 가끔은 너무 많이 신경을 쓴다. 가끔은 그게 상대에게 무례하게 보일 만큼.


어찌되었든지, 내가 집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 분은 단순히 사실 관계를 물었을 수 도 있다. 그렇다고 하면 별 달리 문제가 되는 상황이 아니지 않나 스스로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나의 생각은 또 다시 지난 일 년 반 동안 해 온 그 생각으로 흘러갔다. 나의 선택이 그렇게 잘못된 선택이었던가? 대부분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한 것이 그렇게 잘못된 거였나? 흙수저 주제에 하면 안 되는 선택을 해서 이렇게 주제 파악하라고 주변에서 알람을 해주는 건가?


❚ 내가 포기한 것 VS. 내가 선택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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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선택은 매 순간 강요된다. 하지만, 하나의 선택은 다른 하나의 포기를 뜻한다는 것을 누구도 안다. 나의 5년간 유학길을 선택도 그러하다. 유학을 선택한 순간 내가 포기해야 했던 것은 집, 자녀의 선행학습, 남편의 직장이었다. 어쩌면 한국 사회에서 제일 중요한 빅3 일 수 있는 것을 나는 과감히 멀리하고 유학을 선택했다.


그리고 유학을 선택하며 내가 얻은 것은 참 많다 - 하나님을 알게 된 일, 우리 아이들이 크리스찬 교육을 받고 좋은 또래 집단과 함께 교육을 받은 일, 마음의 평화를 얻는 방법을 실천하고 사는 사람들과의 깊은 인연, 남과 다른 인생을 살아보려는 용기, 넓은 시야 갖기, 아이들의 새로운 환경에 대한 탁월한 적응력(둘째인 아들은 초등학교만 4군데를 다녔다, 그리고 귀국 후 1년 반 동안 3개 학교를 다녔다), 낯선 곳에 대한 어렴풋한 두려움 떨치기, 낯선 곳에서 살아남기, 다양한 친구들과 다양한 활동 해보기, 낯선 곳에서 혼자일 수 있는 용기, 남 시선 신경 안 쓰며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 갖기, 뭐든지 닥치면 닥치는 대로 맞닥들이며 헤쳐 나가기, 체면 때문에 할 수 없었던 일들 해보기(학비를 벌기 위해 시도한 일들이 참 많았던 거 같다) 등이다.


안타깝게도 내가 포기한 아파트, 자녀 선행학습, 남편 직장 들은 눈에 너무 잘 보인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대단해하는 것들이다. 아쉽게도 나는 그런 것에 큰 집념이 없었다. 그것을 포기하고 내가 선택한 길에서 내가 얻은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겉으로는 대단하다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소한 것일 수도 있다. 나의 외골수적인 생각인지 내가 오랜 세월 받은 교육에 의한 세뇌 때문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나의 선택이 훨씬 더 소중한 것을 나에게 안겨줬다고 믿는다. 물론 오늘 같은 그런 상황은 내 마음의 확신을 공격하기도 하지만.


나는 나의 유학선택으로 인해 포기한 것에 대한 미련이 없다. 내가 과감하게 유학을 선택한 덕분에 얻은 것들에 대한 확신도 있다. 그리고 둘 다를 가질 방법은 없었음을 인정한 순간 나는 나의 선택에 대한 후회가 없어졌다. 그 당시 그 선택의 순간으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나는 같은 선택을 했을 거 같다.


귀국하고 지난 일 년 반 동안, 그 포기했던 빅3를 대체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다행히 평생 무주택으로 산 덕분에 귀국하던 해 아파트 분양을 받았다. 아이들에게 선행학습을 못 시켜서 밀린 학업이 많았다. 하지만, 남들처럼 수학 학원 3개, 영어 학원 2개, 과학 학원 4개 같은 엄청난 짓을 할 형편이 못된다. 나는 그런 학원비가 없으니, 아이들의 선행 교육대신 느리지만 자기주도적인 공부를 시키기로 마음먹었다. 남편은 다시 예전의 개인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느리지만 그 또한 내 의지대로 되는 게 아니므로 애를 안 쓰기로 했다.


❚ 생각과 마음의 정리 그리고 긍정의 에너지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나니 내 안에 다시 긍정의 에너지가 생겼다. 그리고, 글로 다시 써야 겠다 생각했다. 다음에 또 오늘 같은 한 방이 들어오면 읽어보리라 생각하며 말이다.


그렇게 마음을 차분히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 행정실 직원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 분도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한 게 마음에 쓰였던지, 퇴근 즘일 텐데 나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안 해줘도 될 꿀팁까지 주셨다. 5년간은 소급 신청이 가능하다고 했다. 나중에 임대 계약을 끝날 때 임대인과 의논하고 인근 세무서에 가서 소급 신청을 하면 된다는 거였다. 평상시 그분의 캐릭터는 자신의 영역의 일이 아니면 구지 남을 위해 일을 해주는 일이 없는 캐릭터이다. 그런 캐릭터의 직원인데, 퇴근 무렵 나에게 그런 전화를 해서 세금관련 팁을 주는 게 아주 의외의 일이다. 하지만, 난 그 분의 마음과 꿀팁을 아주 감사히 받았다.


❚ 내가 우리나라를 미국보다 더 좋아하는 이유


결국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로에게 무심하고 아무 연관이 없는 듯 살지는 못하는 듯 하다. 서로에게 신경을 써 주다가 가끔 선을 넘어 마음도 상하게 한다. 하지만 또 이렇게 미안함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표현하고 서로에 대해 마음을 쓴다. 그러면서 인연을 맺으며 살아가는 것 같다. 난 그 직원 분의 무례한 행동에 화나기보다는 이제 오히려 고맙다. 처음부터 그 분의 의도가 나를 도우려는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후에 이렇게 미안한 마음을 슬쩍 돌려서라도 표현해주셨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일로 나는 그 직원 분과 더 유대가 생겼을 지도 모른다. 난 어쩔 수 없는 한국 사람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난 이런 유기적인 관계가 무기적인 관계보다 더 좋다. 그런 무기적인 관계의 연속인 미국보다 내가 한국을 더 좋아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었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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