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세 현직 영어교사의 5년간 유학생활 정리노트
❚ 설레임으로 들어간 새로운 공간, 그리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어릴 적 일요일 아침,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만화 영화는 그 어린 시절 나에게 제법 볼 만한 이야기였다. 토끼를 따라 굴속으로 들어간 앨리스는 그 안에서 아주 낯선 세상에 와 있음을 알아차리고, 그 곳에서 아주 많은 일들을 겪게 된다. 매주 그 이야기들은 어린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5년 전, 이곳으로 유학을 하러 오게 될 즈음, 나는 내심 그 미지의 세상을 경험하는 앨리스를 떠올리며, 설렘으로 가득했었다.
❚ Just Do It!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다. 미국 사람이든 한국 사람이든 그 만남, 만남을 소중히 하고 의미를 가지고 싶어했다.
나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다. 그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무엇부터 해나가야 하는건지, 오늘, 그리고 지금 나는 무언가를 해야하는 건지를 늘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기며 살아갔다.
❚ 한계를 맞닥들이다.
그러던 어느 2년 정도 지난 무렵, 문득 그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 언어적 장벽은 어느 정도 뛰어넘을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 사람들과의 문화적 괴리감, 인식의 차이는 진정한 나눔에 큰 장애물이었다.또한, 서로 필요이상으로 가까워 지길 싫어하는 현지 한국 사람들의 폐쇄적인 습성도 인간적인 친밀함을 나눔에 큰 걸림돌이었다. 시나브로, 진정한 나눔이 좌절되는 경험들은 점점, 나의 경험의 반경을 좁혀왔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다락방에 갇히다’ 가 이곳 유학 생활을 묘사할 법 한 문구이다. 점점 참여자의 관점이 아닌 관찰자의 관점으로 나와 사람들을 바라 보게 되었다.
❚ 사막의 선인장처럼.....
그러다가, 사막의 선인장으로 변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한국을 떠나오기 전에 나는 그곳이 온실인지 알지 못했다. 나를 지지해주는 보호막이 있었음을 알 지 못했고, 답답한 공기에 불만을 토로하며 다른 세상을 꿈꾸었다. 그러나, 내가 도착한 이곳은 그런 온실이 아닌, 낮과 밤의 온도 차이가 너무도 큰 사막 이였다. 이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는 매일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선인장처럼 버티었고, 그 사이 점점 나를 보호하는 가시를 만들며 살고 있었다. 그런 과정에서 얻은,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는 깨끗이 낫기보다는 딱지로, 가시로 남아 있었다.
그것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닌 듯 하다.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다들 서로 ‘한국 사람만 조심하면 된다’는 우스갯 소리를 하곤 한다. 사람은 관계에서 행복을 얻으며 진정한 삶의 의미를 가꾸어 간다고 믿는다. 그런데, 나에게 이곳은 그런 행복, 그런 삶의 의미를 가꾸어 가기에는 너무도 불모지인 사막 과도 같았다
❚ 인간관계의 진공 상태
사람 관계에서 오는 행복감은 진공상태이다.아이들은 아이들 레벨에서, 어른들은 어른들 레벨에서 노년의 어르신들은 그 어르신들 레벨에서 각자 가시를 드러내며, 외로움에 매일을 살아가는 듯 하다. 애틋한 눈으로 바라봐 줄 조부모님이 안 계시고, 서로 의지가 되는 친척도, 내 처지를 잘 헤아려주는 친구도, 선생님도 없는 우리 아이들. 힘든 노동 끝에, 마음껏 회포를 풀고 껄껄 웃을 수 있는 동료가 없는 우리 아버지들, 노심 초사 아이들 뒷바라지에 남 몰래 더 좋은 과외 선생님이나 학원을 찾느라 여념 없는 우리 “한국” 어머니들, 열악한 의료 시스템으로 병과 죽음에 대한 검은 그림자를 마음 한 켠에 늘 무겁게 지니고, 이곳에서 쓸쓸히 하루하루를 보내시는 어르신들. 그들은 멀리 다른 주로 직장을 찾아 떠난 자식들을 그리워하며, 마음 둘 곳 없고 딱히 갈 곳도 없이 매일 삶을 인내할 뿐이다.이것들이 어쩌면 너무 비관적인 이곳 한국 이민자들에 대한 묘사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부인 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음을 확신한다. 이곳은 분명 한국과 많이 다른 곳이다. 애초에 내가 가졌던 상상은 그저 영화에서 본 내 환상 이였음을 인정한다.
❚ 한계를 넘어 또 한 걸음 앞으로
누군가는 한계에 도달하면 우리는 변화하고 한계를 극복 하며 성장한다고 했다. 그 말이 나에게는 이제 절대적 진리가 되었다. 그렇다. 극한 사막과 같은 이 곳에서 난 꿈틀거렸고 발버둥쳤다. 현재 보다는 다른 나를 만들기 위해 매일 매일 내가 해야 하는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빼곡히 적어가며 더 나은 나를 만들어 나가려 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런 나의 매일은 어메리칸 스피릿(American Spirit)과 비슷할 법하다. 어메리칸 스피릿이 초기 개척시대에 비하면 많이 희석되었지만, 그래도, 아직 미국 사람들에게는 그런 어메리칸 스피릿이 삶의 모토로 자리 잡고 있다. 어메리칸 스피릿을 담은 메세지는 대부분의 광고나 여러 매체에 녹아있고, 평범한 미국 사람들에게도 이미 익숙한 삶의 철학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은 금수저, 은수저를 운운하며 좌절감이 팽배한 곳인 반면, 미국은 어메리칸 스피릿이 어느 정도 잠재되어 있는 곳이다. 그곳에 내가 살고 있었다. 이 먼 미국 땅에서의 척박한 삶은 서글픔이나 상대적 박탈감으로 나를 좌절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온전한 나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용기와 열정으로 나를 이끌어 주었다.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의 나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었다. 매일의 삶과 경험, 수많은 장애물과 부딪치며 숱한 나날들을 고민하고, 그리고 다시 가슴의 뜨거움을 안고 살아왔다.
❚ 5년 간의 작은 점들이 어렴풋한 나의 삶의 선을 긋고 있었다.
그 작은 점,점의 연속이 이제 어느덧 5년 동안 나만의 선으로 그려졌다. 기나긴 유학 생활이 끝이 나가고 있다. 나는 다시 그 예전의 온실로 돌아간다. 그러나 나는 이제 안다. 온실의 그 보호막은 이제 답답함이 아니라, 안온함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것을.
그러나 나는 또 안다. 온실의 화초처럼 그 곳에 갇혀 살지 않아도 되고, 언제든 훨훨 자유롭게 날아 다닐 수 있고, 또 언제든 그 안온함 의 휴식을 찾아 올 수 있음을.
세상은 넓다. 그 넓은 세상에 나만의 선을 또 계속 그리려 한다.
❚ 위의 글을 제가 듣는 버전으로 다시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