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멘토를 찾았다.

사랑은 가장 이성적인 행동이다.

by Hey Soon

❚ 어쩌다 어른

또 다시 한 해가 시작되었다. 내 나이도 한 살이 더 얹어졌다. 두 아 이의 엄마가 된 지도 어느 덧 20년이 다 되어 간다. 몸은 나이를 실감하는데 내 마음은 나이를 먹은 느낌이 조금도 나지 않는다. 20년 전의 나도 이 마음인 거 같은데, 나는 벌써, 이해심이 많아져야 하는 어른으로 나의 사회적 위치가 메겨져 있다.


❚ 경험이 없는 사람은 그냥 숫자에 불과한 나이만 더해간다.

다양한 경험이 없이 그저 나이라는 숫자만 늘어가는 사람으로 늙긴 싫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학교 집 학교 집 그리고 매년 10대의 학습자들만 가르치고 동료 교사들과만 대화를 나누는 생활을 한 지 한참이고 어느덧 내 나이는 40이었다. 나는 두려웠다. 경험의 폭이 좁은 꼰대로 늙어 갈까봐 두려웠다.


❚ 고생 안하고 사는 사람, 잘 사는 사람, 복이많은 사람 ?

고생을 하는 사람은 운이 더럽게 없는 사람으로 취급되는 우리나라의 문화는 참 거북스러웠다. 부모를 잘 만나 부를 물려받은 사람은 스스로 참으로 당당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잘못이 아닌 것인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숨기듯이 살아간다.


일치감치 부모 곁을 떠나 10대 초반부터 자취를 하며 공부한 나는 고생을 일찍부터 시작한 사람이다. 그리고 가난한 시골 출신이니 스스로가 당당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두 가지로 인해 나의 사춘기 시절은 내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부끄러웠다. 그리고 그런 채로 어른이 되었고 부자 부모를 두지 못 한 환경을 탓하면서 부자 부모를 만난 사람들의 운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 고생하고 사는 사람, 잘 사는 사람, 복이 많은 사람!

나는 괜한 고생을 하고 부모덕을 못 보는 사람이 스스로를 부끄러워해야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참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솔직히 지쳤다. 넌더리가 났다. 나는 내가 나를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나의 잠재력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흔들어 깨우고 싶었다. 나에게 색다른 도전을 마주치게 하고 싶었다. 어쩌면 내가 미국을 가고 싶었던 이유는 나를 만나러 가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지도 모른다. 나라는 존재가 좀 더 단단해지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바꿀 수 없는 환경을 탓하며 자신의 불운함을 부끄러워하며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당당하고 싶어 찾아간 새로운 나라는 나의 자존심마저 바닥으로 내쳤다. 아무 것도 나를 지탱해주지 않는 그 낯선 공간에 놓여 져서 다시 삶을 꾸려나가면서 나는 자존심을 내세우는 사치는 부리지 못했다. 알맹이의 나를 만나야 했다. 나는 절로 겸허해지기 시작했다. 알량한 자존심에 남에게 도움을 안 받고 안주는 게 제일이지 하던 나의 생각은 완전히 180도 달라졌다. 나의 삶은 나의 통제 밖인 것이 참으로 많았다.


❚ 나의 멘토를 찾았다.

그곳에서 나는 삶의 멘토를 만났다.


[화요일에 모리와 함께]라는 책에서 모리 교수는 남은 삶의 과정은 다름 아닌, 남에게 절대 의지하는 상태(ultimate dependancy on others)로 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매일 매번의 움직임을 타인에게 의지해야 하는 사실을 피할 수 없으니, 받아들이고 그 과정을 즐기려 한다고 했다. 나의 멘토인 레인 할머니에게 삶의 과정은 신에게 절대 의지하는 상태(ultimate dependancy on the God)로 가는 여정이라고 하셨다. 자신을 낮추고 버리고 절대자에게 순종하고 역경일지라도 신의 은혜로 받아들이는 것, 그게 어떤 삶에서도 감사함으로 살아가시는 할머니의 지혜셨다.


나를 만나기 4년 전 즘에 그 할머니에게도 이상하게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의 병이 왔다고 하셨다. 그래서 외출을 할 수도 없고 삶의 모든 것이 두려워 꼼짝할 수 없었던 그 시기가 있었다고 하셨다. 그 2년 남짓한 그 시기를 그 할머니는 신앙심으로 잘 이겨내셨고 이제 그 할머니는 그런 병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나의 친정 엄마는 안타깝게도 스스로 삶을 놓아 버리셨다. 나는 나의 친정엄마도 레인 할머니와 같은 삶을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너무 너무 슬펐다.


레인 할머니 집에 머문 한국 유학생만 십여명이 넘고, 잠시 머문 외국학생만도 수십명이 넘는다. 그렇다고 전문 홈스테이를 업으로 하는 분은 절대 아니다. 대부분은 형편이 어려운 한국 유학생들이었다. 내가 미국에 있을 때는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니다 온 음대생 아가씨가 그 할머니 집에 머물렀다. 1년 반 가량을 무료로 재워주고 먹여주고 어학원에 태워다 주고 하는 걸 보고 나는 혀를 내둘렀다. 돈이 많고 좋은 집에서 사시는 그런 할머니는 결코 아니었다. 시골 외진 곳에 오래된 집을 사서 할아버지가 직접 하나 하나 손으로 고치시며 사시는 상황이다. 그리고 늘 옷은 남이 입다가 되파는 값 싼 헌 옷 가게에 가서 사 입으시고 검소함이 몸에 베이신 분이셨다. 그리고 시끄럽게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 아니듯이 또한 시끄럽게 사랑을 받는 법이 없다. 나의 작은 정성에도 늘 진심으로 감사해 하셨다. 내가 해드린 잡채도, 어머니의 날에 선물로 드린 싸구려 목걸이도 진심으로 고마워 하셨다.


❚ 사랑은 가장 이성적인 행동이다.

모리교수는 ‘경험이 남을 더 잘 이해하게 만든다. 그리고 사랑을 베풀고 사랑을 기꺼이 받아라. 사랑은 가장 이성적인 행동이다.’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고생한 억울함 보다는 덕분에 더 이해심을 넓혔으리라 자기 암시를 걸어보려 한다. 나의 부족함과 모자람에 대해 다른 사람이 베풀어 주는 것을 감사히 받기로 했다. 받는 것을 수치스럽거나 나를 약하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 안 하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남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은 수고스럽더라도 해주는 오지랖을 갖기로 했다.


❚ 참 다행이다, 닮고 싶은 사람이 살아 계셔서.

나는 레인 할머니를 닮아가고 싶다. 요즘도 슬프거나 서글퍼지면 카카오 톡 문자를 툭 건넨다. 그러면 나에게 힘내라는 문자와 기도를 해주겠다고 답을 해주신다. 멀리지만, 나에게는 그 할머니가 계셔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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