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Geiger 교장선생님과의 특별한 만남

how to die, 죽음을 맞이하는 법에 대한 살아있는 수업

by Hey Soon

❚John Geiger 교장선생님과의 특별한 만남


미국 유학시절, 나는 처음으로 종교를 가지고 싶어졌다. 평탄하지 않고 매일의 일상이 녹녹하지 않던 그 시절, 그리고 내 인생의 많은 요소가 나의 통제권 밖에 존재하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런 나의 세월은 무신론자거나 신을 미워하는 증오론자였던 나를 저절로 겸허하게 만들었고 절대자의 손길을 간절하게 원하게 만들었다. 나는 기왕이면 미국 현지 신앙심 깊은 사람들로부터 직접 성경을 배우고 그들의 평화로운 삶의 자세를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미국 현지 사람들이 다니는 장로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감사하게도 그 미국 교회는 매주 일요일 아침, 예배 시작 전 우리 가족만을 위해 성경 수업을 해 주었다. 내 인생 최초의 성경 공부였다. 우리 가족에게 처음으로 성경 공부를 시켜주신 분은 그 교회 소속 학교의 교장이신 John Geiger 선생님 이셨다. 성경에 대해 일자무식인 나에게 그 분은 아주 열성을 다해 가르쳐 주셨다.


❚루게릭 병과의 투병생활 중에 하신 강의


그런데, 그분과 성경 공부를 한 지 몇 개월 지났을 무렵, 그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청천 벽력같은 소식을 전해왔다. 연세가 50대 후반 이였는데, 루게릭 병에 걸리셨다는 거였다. 책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주인공 모리 교수가 걸렸다는 바로 그 루게릭 병이다. 그 이후 그 분은 기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쇠퇴하셨고 그 병 진단 이후 3년을 채 사시지 못하셨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그분은 안면 마비가 오기 직전까지 죽음을 직면하고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지에 대해 강연을 하셨다. 그 작은 타운에서 그분은 거의 유명 인사가 되셨다. 직접 죽음과 매일 사투를 벌이시는 그 분의 말씀은 거부할 수 없는 울림이 있었다. 강한 신앙심으로 그 헤아릴 수 없는 고통과 시련을 헤쳐 나가시는 그 분의 모습에 사람들은 경외심을 가졌다. 내가 들은 두 번의 강연은 나에게도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 강의 중에 지금도 마음에 담고 있는 것은 ‘inner man 즉 내 안의 영혼과 outer man 즉 육신의 나’에 관한 설명이다. 비록 ‘육신의 나’는 시간과 함께 쇠퇴하더라도 ‘내안의 영혼’은 죽음을 초월할 수 있음을. 그리고 육신의 나에 집중하기보다 자신 안의 영혼에 열중하라는 말씀이셨다. 이 책 모리 교수가 한 ‘영적인 것에 더 관심을 가져라’는 것과 같은 이야기이다. 물론, 둘 다 그리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죽음이 언제든 닥칠 그런 마지막 인생의 찰나에 계신 그 교장 선생님이 하신 그 말씀은 나에게 강한 당김의 힘이 있었다.


❚ how to die, 죽음을 맞이하는 법에 대한 살아있는 수업

죽어가는 법을 몸소 보여주신 그 분은 참으로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하셨다. 그리고 죽음으로의 여행에 지켜보는 이들을 초대하여 죽어가는 법에 대한 살아있는 수업을 해주셨다. 나는 그 교장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그 분에 대해 ‘나의 감사함을 늦기 전에 꼭 전해 드려야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카드와 작은 십자가를 선물로 드렸다. 철재로 된 십자가를 토기로 된 십자가가 테두리를 두르고 있는 거였다. 나는 그분의 말씀이 고스란히 스며든 그 십자가를 꼭 전해드리고 그분의 inner man을 응원하고 싶었다. 다행히 그 분은 돌아가시기 전에 그 카드를 잘 전해 받으셨고, 그리고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몇 주 전에도 여전히 교회 예배에 오셨다. 그분의 눈빛은 아주 또렷하셨고, 나를 향해 환히 웃어주셨다. 나는 감사하게도 그 교장 선생님으로 부터 how to die, 죽음을 맞이하는 법에 대해 살아있는 수업을 받았다.


❚ 살면서 죽은 듯 살고, 죽으면서 진정으로 살아있는 듯 죽는 것

마음의 병으로 돌아가신 친정 엄마의 죽음에 망연자실 하다 새롭게 시작한 세상 여행이였다. 의도치 않게 나는 죽음을 스스로 선택한 사람과 죽음을 정면으로 싸운 사람의 모습을 아주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 나에겐 소중한 두 분이지만, 나에게 죽음이라는 산을 아주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오르신 분들이다. 삶과 죽음은 어쩌면 별개가 아니라 모리교수의 말처럼, 그것은 그저 한 직선에 놓여있는 같은 종류의 것인 듯 하다. 살면서 죽은 듯 살고, 죽으면서 진정으로 살아있는 듯 죽는 것은 어쩌면 말장난이 아닌 삶과 죽음의 실체일 지도 모르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