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배워 남 좋은 일 해주고 나에게 남은 것

나는 쓸 만한 사람이다, 덕분에 하고 싶은 일이 더 생겼다.

by Hey Soon

미국 유학 시절, 영어 교사 출신인 나는 미국 현지에 살고 있는 보통의 한국 분들 보다 영어를 조금은 편하게 할 수 있었다. 그 덕분인지, 때문인지, 본의 아니게 미국 유학 시절 나는 남 좋은 일을 많이 하게 되었다.


유학 시절 첫 해, 우리 아이들이 다니던 미국 공립 초등학교에 도서관 도우미로 자원 봉사를 하게 되었다. 영문도 모른 채 그저 부모 따라 낯선 땅, 말 한 마디 안 통하는 낯선 학교로 온 우리 대한민국 어린이들이 나는 안쓰러웠다. 나는 대한민국의 교사로 자칭 파견 교사인 양 그 먼 타국으로 온 우리 대한민국 아이들을 잘 보듬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한국 아줌마로 그 꼬맹이들에게 그나마 작은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 주고 싶었다. 거의 매일 그 도서관에서 도우미로 상주 했다. 한국 어린이들은 그 낯선 미국 학교 도서관에서 한국 아줌마를 보고 신기해 하고 반가워 했다. 그 꼬맹이들의 표정들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몇 날 며칠 아침 마다 학교 안 가겠다고 울고 불고, 학교에 와서도 울기만 하는 아이들이 가끔 있었다. 그렇게 낯가림 심해 매일 아침 등교 시간에 힘들어하던 한국 엄마들에게 나는 도서관 자원봉사를 같이 하자고 권했다. 대부분은 나와 함께 도서관 도우미로 일하곤 했다. 불안해 하는 아이에게 ‘엄마는 도서관에서 기다리고 있을게’하며 안심 시키며 우리 한국 엄마들은 그 정착 초기 아이들의 큰 변화를 순조롭게 적응 시키곤 했었다.

그리고 영어를 좀 할 줄 아는 덕분에, 그 학교 PTA (Parent-Teacher Association)에 한국인 학부모 대표로도 일 해 줄 수 있었다. 새로 전입 해오는 학생들의 학교장 및 담임과의 면담 행사에도 원활한 대화를 도와 줄 수 있었다.


하루는 특수 교육 대상자인 한국 어린이가 새로 전입 해온 적이 있었다. 학교장은 나에게 그 담임 및 교장 선생님과의 대화 시간에 통역을 해 달라고 부탁을 해 왔다. 물론, 아무런 보수가 없는 그런 일이지만, 난 기꺼이 해주었다. 그 엄마의 크고 작은 아이에 관한 정보를 세세히 통역해주었고, 학교의 전달 사항도 그 엄마에게 전해주었다. 또 그 지역 교육청의 중요한 문서를 한글로 번역해 달라는 문의가 왔을 때도 나는 기꺼이 해줄 수 있었다.


또 한 번은 한국에서 합창단이 미국 교회에 공연을 하러 온 적이 있었다. 한국인 진행자 옆에서 통역 해 달라고 아는 지인이 부탁을 했다. 한국인 진행자 옆에서 미국인 교인들을 위해 한국어 진행을 영어로 바꾸는 일을 하는 일이었다. 성경 지식도 아주 얄팍하고, 무대 매너도 어설픈 나였지만 최선을 다해 통역을 해주었다. 성경 지식이 부족해서 한국말 의미도 잘 파악을 못해 아찔하던 순간도 있었지만, 웃음으로 넘기고 관객으로부터 도움을 받으며 서로 함께하는 즐거운 합창 공연을 순조롭게 마쳤다.


그 합창 공연이 있기 일주일 전에 미국 교회 사람들에게 한국인 합창단 맞이 한국어 배우기 날을 마련한 적이 있다. 나는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미국 현지 교인들에게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원리를 적용해서 한글의 가나다라를 가르쳤었다. 영어 교사였던 나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은 생전 처음 해보는 일 이였다. 이런 저런 남을 위해 해 줬던 그 일들은 나로서는 모두 처음으로 해보는 일 들이었다. 그리고 모두 다 무료 봉사일 이었다.


그 당시 나는 그렇게 선택의 여지없이 본의 아니게 남을 위해 일을 해 준 시간이 많았다. 그런데, 그 당시 나는 석사 과정 학생이었고 재정적으로 힘든 상황이었다. 그래서 마음의 조바심이 생기곤 했었다. 어떨 때는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그 비싼 학비 내면서 내가 고작 하는 거라 고는 남을 위한 무료 봉사일이나 하니, 참 한심하다’하고 생각이 들었다.

유학생 신분으로 나는 대학교 캠퍼스 밖에서 직업을 가지는 게 금지된 처지였고, 내가 다니던 대학교 캠퍼스 내 아르바이트 자리도 미처 찾지 못하던 첫 학기였다. 그 때문에 시간적 여유는 아주 많았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부탁을 쉽게 마다하지 못 하는 성격이라 내가 배운 영어로 남 좋은 일을 해주면서 그 시간들을 보냈다.


미국에 발을 딛는 그 순간부터 나는 현지에 그 수많은 영어 원어민들의 유창한 영어를 매일같이 들으며 매일 위축감을 느꼈다. 나름 자존심이 센 영어 교사였던 나는 스스로 나의 효능감 (내가 무언가를 잘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남 좋은 일을 해주고 나니, 오히려 내가 더 기분이 좋아지고, 내가 오히려 덕을 받은 기분이 든 적이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 이구나’ 하는 생각에 가난한 유학생 시절 이였지만, 마음 만은 부자였던 시절인 거 같다.


그리고, 미국 교회에서 한국어를 가르친 인연 덕분에 미국 대학교에서 정식 한국어 강사로 채용 되어 일을 할 수 있기까지 되었다. 영어를 배워서 남 좋은 일을 해주고 나니, 덕분에 일자리도 얻었다. 영어를 배워서 남 좋은 일을 해주는 일은 결국 그렇게 손해 보는 일이 아니었다.


영어를 배워 내가 남을 위해 할 수 있었던 일이 많았고, 내가 나 자신에 대해 더 뿌듯하게 느껴지는 일이 많아졌고, 결국 나를 위한 일들이 생겨났고,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이 더 많아졌다.


지금 근무하고 있는 우리 학교 원어민 선생님은 영국에서 오셨다. 한국어를 시내 학원에서 자비를 내어서 까지 배우는 열성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다. 그 선생님한테 여유로운 겨울 방학 동안 한국어를 가르쳐주는 일을 시작했다. 슬그머니 남 좋은 일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의 언어를 공유하며 즐거운 오후를 보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