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 영어보다 훨씬 소통이 잘 되는 언어
❚ 우리 동네 이장 Wyane 할아버지
우리가 머물고 있던 집 바로 옆집에는 루게릭 병으로 추정되는 희귀병에 걸리신 할아버지와 그 부인이 살고 있었다. 그 할아버지는 늘 휠체어를 타고 다니셨고, 할아버지의 영어 발음은 알아듣기가 참 고역 일 만큼 불분명했다. 하지만, 그 할아버지는 사람들을 참 좋아하셨다. 그 할아버지는 우리가 이사 온 바로 그 날 아침 우리 집 문을 두드리셨고 환한 웃음으로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는 우리를 따라오라 하더니, 두 집 밑으로 내려가서 그 집에 살고 있는 남자 아이와 그 아이 아버지를 소개해주셨다. 그 집 아들도 우리 둘째 아들과 비슷한 또래라 둘이서 친하게 지내면 좋을 거라 하셨다. 마침 그 아이의 엄마는 그 동네 한국 회사의 직원이라 해서 이미 한국 사람에 대해 친숙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Mr. Mom 이라 불리셨는데, 우리 말로 하면 전업 주부인 아저씨라는 말이다. 건강 상의 이유로 이른 나이에 퇴직을 하시고 늦게 낳은 아들을 돌보며 집안 살림을 하시는 듯 했다. 그 부인은 휴일이면 주로 마라톤 연습하러 나가고 아들과 아빠만 집에 있었다. 그래서 두 집 밑에 사는 그 아이는 미리 예보도 없이 우리 집 초인종을 눌러서 아들 보고 놀자고 했다. 그리고 밥도 같이 먹기도 했다. 보통 미국 사람들은 남의 집에 아이를 보낼 때 그 부모가 괜찮은 사람인지 미리 확인한 후 아이를 들여보낸다. 아마도 우리는 그 분들의 관점에 통과가 된 모양인지 그 아이는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오고 우리 아들도 그 집에 자주 가곤 했다.
❚ 금발 머리 '된장남' Arron
미국에 온 지 한 달이 채 안 되었을 때 나는 호기심이 발동해서 한국식 된장찌개를 끓여서 그 금발 머리 미국인 꼬마를 우리 집 저녁에 초대해서 같이 먹었다. 난 그 아이의 반응이 내심 기대가 되었다. 그 아이는 내 예상과 달리, 선뜻 숟가락으로 맛을 보더니 이내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예의 상 맛있어한 건 아니었다. 진짜 맛있었다면서 다음에 또 먹고 싶다고 했다. 신기했다. 그 이후로 그 아이랑 우리 아들은 더 친해지고 자주 집을 오가며 저녁까지 같이 먹으며 친하게 지냈다. 늘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면서 시간을 보냈고, 정착 초기였지만 덕분에 우리 아들은 친구 없는 쓸쓸함은 크게 모르고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고 했던가. 그 날도 여느 때처럼 두 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그 주택 단지 내 놀이터에서 놀고 오는 길이었다고 한다. 그날은 그 아이가 자전거가 고장이 나서 우리 아들만 자전거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미국 아이가 우리 아들 자전거를 갈 때하고 올 때 번갈아 타기로 하자고 해서 그러자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아이가 갈 때도 올 때도 다 자기가 타더라는 거다. 아직 영어가 서툰 우리 아들을 그 아이가 얕보며 자기 편의대로 하는 거였다. 사실 우리 옆 집 할아버지도 이미 그 아이에 대해 귀뜸을 해 준 적이 있어서, 나는 '이 참에 바로 잡아야겠다' 싶어 그 아이를 불렀다. 나는 ‘너의 행동에 대해 실망을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더 나은 매너로 친구를 대하기를 기대한다’ 고 짧고 굵게 말했다. 그 일 이후 그 아이는 우리 집에 놀러오면 내 눈치를 좀 보긴 했으나, 더 이상 못된 행동은 없었다. 결국 다른 언어를 모국어로 쓰는 아이들이지만, 둘은 진심이라는 공용어를 쓸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낯선 땅에서 그런 마음 따뜻한 할아버지를 만나 이웃으로 산 것은 참 운 좋은 일이었다. 그 할아버지는 그 구획에서 일종의 '동장' 같은 분이셨다. 그 구획의 사람들은 아주 자주 그 할아버지 차고 앞에서 수다를 떨곤 했다. 폭우가 쏟아지는 여름에는 자주 정전이 일어났는데, 그럴 땐 여지없이 그 할아버지 집 앞에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어느 가을, 개기 일식이 있던 날, 대학원 수업을 하고 있는 데 할아버지가 문자를 보내왔다. 오늘 개기 일식을 자기 집 앞에서 이웃들하고 같이 보자고 했다. 일부러 그날은 학교 수업이 끝나자 바로 한 시간 차를 몰아 시간에 맞추어서 도착했다. 예상대로 이미 몇 몇 이웃 사람들이 와서 셀로판지 안경 같은 걸 끼고 보면서 음료를 마시고 또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한국 대도시에 살다가 간 상황이라 그런 풍경은 나에게 어릴 적 시골에 대한 향수를 생각나게 했다. 정전이 잦은 것이며 동네 사람들이 모여 수다 떠는 일들은 먼 옛날 내 어릴 적 시골의 모습과 참 닮았다.
그 할아버지는 우리 딸이 솜씨 없이 치는 피아노 소리도 그 조용한 동네에 작은 공연인 듯이, 일부러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소리를 즐긴다고 하셨다. 그 할아버지 생일 날 아침에 딸하고 나는 작은 감사를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편함에 미리 언제 쯤 피아노를 할아버지를 위해 쳐드릴 거라고 쪽지를 남겼다. 약속한 초저녁 즘, 우리는 울타리 너머 들으시라고 우리 딸이 생일 축하 노래를 피아노로 연주해드렸다.
10월 31일 해마다 할로윈 데이에 그 할아버지 집 문 앞에 가면 우리 아이들에게 늘 사탕을 두 움큼 씩 쥐어주신다. 말씀은 어눌하셔서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 어쩌면 내가 한 대답이 할아버지에게는 동문서답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연신 대화를 나눴고, 나의 진심을 전하려 했다. 그 동네에서 1년 반을 지내다가 우리는 나머지 3년은 30분 떨어진 동네로 이사를 갔다. 그래도 해마다 할로윈 데이에는 그 할아버지네는 꼭 들러서 안부를 서로 전했다. 그리고 떠나오기 마지막 할로윈 데이에는 작별의 인사를 나눴다. 이제 더 이상은 사탕을 얻으러 못 오지만, 꼭 건강하게 행복하게 지내시라고 말씀을 드렸다. 눈물이 핑 돌았다.
❚ 일면식도 없는 나를 도와준 영주씨(가명)
아이들이 처음으로 미국 초등학교에 등교하는 주가 다가 왔다. 나도 대학원 야간 수업이 시작되는 주간이기도 했다. 내가 가야 할 학교는 우리 집에서 차로 1시간 정도 가야 하는 거리에 있었다. 우리 아이들은 ESL(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을 위한 영어) 방과 후 수업을 의무로 들어야 했었다. 그래서 정규 수업이 3시 30정도에 끝나면 4시 30분 까지 ESL수업을 들어야 했다. 그 시간에 나는 대학원에 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 시간에 맞추어서 아이들을 데리러 갈 수는 없었다. 남편도 일 하러 가게 되어서 우리는 할 수 없이 영어도 서툰 두 아이를 스쿨버스에 태워서 집으로 오게 할 수 밖에 없었다. 대부분 미국 초등학생들은 핸드폰을 들고 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두 아이도 핸드폰이 없었다. 내심, 별의 별 걱정이 다 들었다. 여러 스쿨버스 중에 엉뚱한 버스에 태워지면 어쩌나, 엉뚱한 동네에 내려놓으면 어쩌나, 그리고 버스에 내려서 5분 정도는 걸어야 우리 집이라서 아직도 낯선 그 동네에서 걸어오다가 비슷 비슷한 골목길에서 길을 잃어버리면 어쩌나.... 그런데, 내 마음을 이해했는지, 그 초등학교 사무실에서 일하시는 분이 학교 투어를 한 이후, 나에게 우리 딸하고 같은 반에 있는 한국인 엄마의 연락처를 주었다.
나는 그날 오후 당장 그 한국 분한테 연락했다. 내 소개를 하고 학교를 통해 연락처를 받았다는 말을 했다. 다행히 우리 딸하고 그 집 딸은 동갑이고, 같은 반이었다. 우리 아들하고 그 집 아들은 반은 다르지만, 같은 학년이었다. 정말 우연이라 하기에는 참 고마운 우연이었다. 그런데, 나는 아이들의 하교가 너무 걱정이 되어서 안면식도 안 한 사람에게 염치없는 부탁을 했다. 혹시나 내가 대학원 가는 이틀을 그 집 아이들과 같이 그 집에 두 시간 정도 있다가 내가 데리러 가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그 엄마는 아주 흔쾌히 그렇게 해주겠다고 했다. 참 눈물이 핑 돌 만큼 고마운 분을 만났다. 영주씨는 나 보다 4살 정도 어린 데도 미국 생활을 먼저 와서 그런 지 나에게 이런 저런 도움을 많이 줬다. 그리고 영주씨는 그 날부터 내가 박사 과정을 하는 내내 내가 아이들을 맡길 데가 없을 때 늘 우리 아이들 데리고 저녁도 먹여주곤 했었다.
❚ 미국 공립 학교 노란 스쿨버스의 검은 그림자
아이들 미국 학교 첫 등굣날, 나는 대학원 수업을 하러 이미 집을 떠나왔는데, 영주씨한테서 전화가 왔다. 그 집 아이들과 우리 집 아이들 모두 와야 할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아직도 안 오고 있다는 거였다.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학교에 전화해도 무선자동 응답기만 받을 뿐 아무도 연락할 길이 없었다. 나는 발만 동동 거리고 있었다. 사실 미국에서 스쿨버스는 안전이 별로 보장 되지 않는 교통 수단이다. 그 이후 그 학교 스쿨버스 운전자 분이 운전 중 심장 마비가 와서 차가 도로를 벗어나 갓길에 있는 담벼락을 들이 박고 멈춘 적이 있었다. 다행히 아이들이 다치지는 않았지만, 하마 터먼 대형 사고로 이어질 법한 일이었다. 난 너무 어이가 없고 불안 불안했다. 그래서 그 이후로 몇 명 한국 엄마들과 카풀 같은 걸 했다. 그리고 버스 안에서 아이들 간 놀림 및 괴롭힘 등에 대한 책임을 학교는 일절 지지 않고 관여도 하지 않는다. 학교 이외의 장소에서 생긴 일들이라 학교하고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한국은 집 근처 놀이터에서 서로 다퉈도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 민원을 넣는 상황이다. 그런 한국과 미국은 간극이 상당히 있어 보였다. 그 날처럼 스쿨버스가 늦게 오거나 버스 안에서 학생들의 품행과 관련된 문제가 생기면 버스 회사에 항의를 해야 한다는 거였다. 결국 그 날 거의 한 시간 늦게 아이들이 집에 도착했다. 그 기사가 노선을 착각해서 많이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아무튼 첫 날 스쿨버스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래도 이미 일 년 남짓 그 학교를 다니고 있는 영주씨네 남매도 같이 있었던 덕분에 우리 아이들도 크게 놀라지 않았을 것 같다.
❚ 억척스런 한국 아줌마, 내 친구 영주씨
미국에는 Chik-Fil-A라는 유명한 닭고기 햄버거 (미국 사람들은 샌드위치라고 부름)브랜드가 있다. 전국 체인점에서 해마다 7월 두 번 째 화요일은 Cow Appreciation Day라 정해서 젖소 분장을 해 온 손님은 모든 메뉴를 공짜로 먹을 수 있다. 그 유래가 참 궁금하지만, 추측컨대, 주로 햄버거에 소고기가 쓰이지만, 이 가게는 닭고기만 쓰니, 소들이 감사해 할 날이라는 의미가 있을 거 같긴하다. 아무튼 이런 날을 그 영주씨가 놓칠 리가 없다. 해마다 종이 컵이나 종이 접시로 젖소 무늬를 만들어서 아이들 몸에 달게 하고는 우리 아이들 까지 데려가서 햄버거를 공짜로 얻어왔다. 난 당연히 한 가게에서 얻어오면 끝이겠거니 생각했는데, 그럴 리가 없었다. 영주씨는 차에 그 햄버거를 싣고는 바로 10분 정도 운전해서 조금 떨어진 곳의 Chil-Fil-A 가게로 향했다. 그리고 내 거, 남편들 것 까지 몽땅 챙겨서 집으로 왔다. 그래서 해마다 7월 두 번째 화요일 저녁 메뉴는 늘 같았고, 우리는 늘 감사하게 잘 얻어먹었다.
그 억척같은 영주씨가 아르바이트라도 하러 가는 날이면 나는 조금이라도 빚을 갚으려고 애썼다. 박사 과정을 하면서 한국어 강의를 하는 바쁜 일정이지만, 나에게도 방학이라는 휴식이 있었다. 그 기간에 나는 오전에 그 아이들을 우리 집으로 데려와서 점심을 먹이고, 하루 종일 우리 아이들과 같이 있게 하기도 했다. 그런데, 영주씨의 둘째 아들은 유치원생일 때 이민 와서, 우리말을 서서히 잃어버리고 있었고 한글을 읽지도 못하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한국어 강사인 나는 그 아이에게 한국어 읽기를 가르쳐주기도 했다. 미국 생활 동안, 그 집 아이들과 우리 아이들은 가족처럼 지냈다. 주말이면 '슬립 오버(sleepover)'라 해서 자고 오기도 했다. 조용한 우리 딸에게도 친구가 생겼다. 참 다행이었다.
❚ 서로 등 긁어주는 사이
참 억척스런 은주씨는 생활 지수가 과연 탁월하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숨길 수 없는 비밀이 있었다. 다름 아닌, 영어 울렁증이었다. 나는 영주씨의 억척스러움을 부러워했고, 영주씨는 나의 영어를 부러워했다. 그렇게 영주씨와 나는 서로가 가지지 못한 것을 서로에게 공유하면서 먼 타국에서 서로 등 긁어 주는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 영주씨는 내 삶의 힘든 시기를 함께 해준 소중한 친구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여전히 카카톡을 하면 한 시간이고 수다 떠는 변함없는 내 친구다.
❚ ‘진심’이라는 공용어로 말하는 사람들
미국 생활 동안 나에겐 영어보다 ‘진심’이 더 잘 통하는 언어였다. 그게 한국 사람이든, 미국 사람이든, 러시아 사람이든, 브라질 사람이든 다들 모국어가 다른 내 친구들이지만 모두 ‘진심’이라는 공용어로 말하는 사람들이었다. 다행히 난 그런 사람들 곁에서 진심을 전하는 법을 잘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