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을 받은 사람한테 그 빚을 갚기보다 새로운 사람에게 갚기
❚ 누구에게든 혼자 밥먹기는 노잼이다.
우리학교 원어민 선생님한테 겨울 방학동안 한국어를 가르쳐 주기로 했다. 오늘이 그 두 번째 수업을 해주는 날이었다. 학교 급식이 방학 중에는 없기 때문에 보통은 그 원어민 선생님은 혼자 컵라면 등으로 점심을 대충 떼우는 거 같았다. 그래서 나와 한국어 수업을 하는 날에는 혼자 밥 먹도록 하는 게 영 마음에 걸려, 왠만하면 내가 함께 점심을 먹곤 한다. 지난 번은 김밥을 사서 컵라면과 같이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또 같은 걸 먹긴 괜히 싫었다. 점심으로 그 선생님과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아침부터 인근 맛집 검색을 이리저리 했다. 그러다가 문득, 영국으로 잠시 다녀오기 전 마지막 한국어 수업이니 ‘내가 만든 한 끼를 같이 먹어야 겠다’ 생각했다. 물론, 내 손으로 하는 것이라 돈도 제일 적게 드는 옵 션이기에 나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여러 손쉬운 점심 도시락 메뉴 중에, 계란 후라이를 얻은 김치 볶음밥으로 정했다. 어차피 집을 나서기 전에, 집에 있는 두 아이 점심도 챙겨놓아야 했기에 나는 제일 간편한 김치 볶음밥을 조금 더 해서 원어민 선생님과 같이 먹기로 했다.
도시락을 챙겨서 학교 교무실에 가니, 어김없이 덩그러니 교무를 도와주시는 선생님과 딸랑 둘이 있었다. 잠시 브레이크도 할 겸, 우리는 내가 근무하는 학년실로 가서 한국어 수업을 핑계로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늘 그렇듯이, 원어민 선생님과의 대화는 신선하고 유쾌하다. 물론 나보다 한참 젊은 사람의 생각을 듣는 재미도 있지만, 그 원어민 선생님과는 외국 살이 경험을 나누면 대화 할 게 너무 많다. 그리고 척하면 척하고 통하는 점이 많아 나는 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누곤 한다.
❚ 신선한 즐거움, 한국어 가르치기
그렇게 대화를 하다가 원어민 선생님이 평상시 한국어 공부를 하다가 궁금했던 것을 물어왔다. 한국어가 모국어인 나에게 원어민 선생님의 질문은 참 신선하다.
- 공부하다의 반대는 공부 안 하다 인데 왜 좋아하다의 반대는 좋아 안하다가 아니라 안 좋아하다 예요?
공부하다 (0), 공부 안하다 (0) vs. 좋아하다 (0), 좋아 안하다 (x)
- 형용사는 문장에서 어디에 넣어요? 꾸며주는 말 앞에 늘 써요?
- 부사는 문장에서 어디에 넣어요?
- 강아지를 볼 때 “귀엽다”라고 하는 거와 “귀여워”하는 것의 차이는 뭐예요?
- ‘~하고’는 문장에서 어떻게 쓰여요?
- ‘~에/~에서’는 각각 언제 써요?
나는 괜히 이런 쌩뚱맞은 질문을 받으면 즐거워진다. 내가 한 번도 의식하지 못한 우리말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된다. 한참을 내가 가진 한국어 티칭 경험과 한국어 사전을 뒤져서 나름 그 질문에 답을 해줬다. 끝으로, 오늘의 즐거운 순간을 기록하고, 뒤에 되돌아 볼 수 있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 수업 내용을 정리하는 나의 간단한 멘트와 그 선생님의 소감 및 배운 점에 대한 간단한 멘트를 음성 메모에 녹음하고 수업을 끝냈다. 그리고 집으로 와서 나의 유튜브 채널에 간략한 한국어 수업 동영상을 제작해봤다. 재미있는 취미가 생겨 즐겁다.
❚ 영국에서 온 선생님한테 김치 볶음밥 맛보이기
그리고 나는 준비해간 점심을 꺼냈다. 이제 한국 온 지 네 달 밖에 안 된 원어민 선생님한테 김치 볶음밥은 너무 한국적인 건가? 어쩌면 김치를 그렇게 즐겨 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그제서야 들었다. 그러나, 그 걱정도 잠시, 원어민 선생님은 다행히도 김치 볶음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원어민 선생님은 나에게 “선생님은 저를 동료 이상으로 잘 대해주시는 거 같아요. 그리고 아주 감사해요”. 라고 했다. 나는 보잘 것 없는 김치 볶음밥을 나눠 먹으며 듣기에는 좀 과하다 싶었다. 그러나 내가 원어민 선생님이 우리 학교에 배정받은 작년 8월부터 동료 이상으로 챙겨준 건 사실이다. 그런데 거기에는 나의 특별한 이유가 있다. 내가 받은 신세를 갚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 빚을 갚는 방식: Paying It Forward (도움을 받은 사람한테 그 빚을 갚기보다 새로운 사람에게 도움을 주기)
나의 유학 시절, 나는 통제 불가능한 요소로부터 많은 제약을 받아야 했다. 나를 둘러싼 통제 불가능의 외부 상황들, 그런 상황으로부터 생긴 내 마음의 짐과 갈등은 인생에 대해 아주 많은 것을 배우게 한 시간이었다. 그런 시절이라, 나는 주변의 미국인 현지 사람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특히, 유학 첫 해부터 알고 지내던 Lain할머니께 신세를 많이 졌다. 그 시절 나는 크고 작은 어려움과 마음의 고민을 그 Lain할머니에게 털어 놓았다. 그 할머니는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늘 내 이야기를 들어 주고 내 편이 되어 주셨다. 그리고는 내가 좋아하는 초코 쿠키를 구워주셨다. 시골 외딴 숲 속에 있는 그 할머니의 집, 그리고 아보카도색 페이트가 칠해진 그 거실, 그리고 할머니의 초코 쿠기를 곁들인 커피 타임은 나에겐 둘 도 없이, 내 영혼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들이었다.
영문학을 전공하신 그 미국 할머니는 내게 영어 선생님이고, 영어 작문 교정 전문가이고, 정성스런 집 밥을 해주는 엄마이고, 타지에서 느끼는 서글픔을 달래주는 따스함이고, 삶의 귀로에서 망설일 때, 성경을 읽어주시며 나에게 삶에 대해 안내해주시던 그런 분이셨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나는 그 할머니께 해 줄 수 있는 것이 그닥 없었다. 가끔씩 멀리 할아버지와 손주를 보러 다른 주로 여행을 다녀오셨을 때 집에 찬거리가 없어 당장 저녁 식사가 마땅찮을 거 같은 날, 나는 없는 솜씨지만 잡채나 돼지고기 두루치기 같은 걸 해서 가져다 드렸다. 그런 것 말고는 가난한 유학생인 내가 해 드릴 수 있는 게 없었다. Lain 할머니의 남편인 Milton할아버지는 한국 음식을 기가 막히게 잘 드신다. 그래서 그 할아버지는 내 한국 음식 솜씨가 참 좋다고 늘 엄지 척을 해주셨다.
그 미국 할머니, 할아버지 덕분에 나와 우리 가족은 타국살이를 잘 하고 무사히 예전의 제 자리로 돌아왔다. 지금도 마음이 씁쓸하거나 쓸쓸할 때는 마치 대나무 숲에서 한 바탕 소리치듯이 그 할머니와 카카오 톡 영상 통화를 하거나 문자를 해서 내 속내를 원 없이 터놓는다. 그렇게 많은 신세를 졌지만, 나는 그분들에게 받은 그 많은 도움을 돌려줄 방법이 없다.
남을 돕는 방식에 관한 나의 생각은 도움을 받은 사람한테 그 빚을 갚기보다 새로운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게 더 나을 수 있다는 거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사람에게 그 빚을 조금이라도 갚으려 한다. 내가 우리학교 원어민 선생님께 조금이라도 도움을 줘서, 내가 받은 걸 조금이라도 돌려 줄 수 있게 된 게 참 감사한 일이다.
Lain할머니에게 받은 도움을 나는 우리학교 원어민 선생님에게 돌려주려 한다. Lain 할머니가 나에게 해준 영어에 관한 설명을 난 그 선생님께 한국어 설명으로 갚으려 한다. Lain 할머니와의 커피 타임을, Lain할머니의 정성스런 집 밥을 나는 그 선생님께 조금이라도 갚으려 한다. 내가 타국에서 느낀 고충과 주기적으로 찾아드는 향수병을 달래주던 Lain 할머니처럼 나도 그 선생님께 조금이라도 마음에 포근함을 가져다 줄 수 있기를 바래본다. 그래서 언젠가 또 그 원어민 선생님이 또 다른 나라 사람에게 나의 그 마음을 전달하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