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냉정을 잃지 않아야 프로다
❚내가 한국어 학생에게 화를 냈다
내가 화를 내며 영어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니!! 미국이든 한국이든 영어는 늘 공식적인 상황에서만 사용하던 언어였다. 한국에서 영어 교사로 있을 때도 수업 중 교과 관련 질문을 할 때만 영어를 사용했다. 미국에서 영어는 대학교에서 일로 만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거나 미국인 친구와 즐거운 이야기를 나눌 때 쓰던 언어였다. 그러니 화를 내면서 영어로 할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그날은 나도 모르게 욱하는 감정이 치솟아 참을 수 없었다.
한국어 수업이 진행되는 학기 중반부였다. 그날은 중간고사를 치는 날이었다. 한 중국유학생이 손에 컨닝 페이퍼를 들고 한국어 시험을 치는 걸 발견했다. 한국에도 이젠 웬만해서는 아이들이 컨닝을 하지 않는다. 무모한 짓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설마 컨닝을 하는 학생이 있을까’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날도 한국어 중간고사 시험 감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한 중국 유학생이 컨닝을 하는 게 아닌가! 나는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 그것도 내가 출제하고 내가 관할하고 있는 그 시험에서!!
❚화를 내고 나니
나는 나를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만 버럭 화를 내버렸다. 영어로 화를 내본 건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듯하다. 그렇게 화를 내며 언성 높여 말하고 나니 일순간 교실 전체에 정적이 흘렸다. 나머지 학생들에게도 엄청 미안해졌다. 늘 친절 모드로 가던 나의 이미지는 그날 반전을 맞이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혼자 생각했다. 뭐가 나를 그렇게 화나게 만들었을까? 구지 내가 화를 내면서까지 일을 처리할 필요가 있었을까? 화를 낸 게 도리어 나에게 화가 된 건 아닐까?
❚동양 문화와 서양 문화의 차이
진정한 프로는 부정적인 감정 표출 없이 필요한 메시지를 정확히 전달한다. 물론 개인적 성향 차이는 있지만 대학교처럼 고등 교육기관에 종사하는 미국 사람들은 언짢은 내용의 말이라도 최대한 쿨하게 자신의 입장이나 메시지를 전하는 편이었다. 그들은 상대와 심리적인 거리를 늘 적절히 둔다. 그래서 필요 이상의 감정적 심리적 마찰을 하지 않는다.
한편, 동양의 문화권에는 상대와 심리적 거리를 두는 것을 다소 불편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남에 대한 배려나 신경, 관심을 많이 주는 편이다. 그래서 상대가 자신의 기대에 못 미치거나 기대와 다르게 행동할 경우 문제가 심각하게 발생한다. 부정적인 방향으로 감정 표출이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내 한국어 수업에서의 컨닝 사건도 바로 그런 동양 문화권의 행동 습성 때문인 것 같다. 평소 나는 그 학생들과 인간적인 관계를 잘 형성한 편이었다. 그들 눈에 나는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이 그렇듯이 정이 넘치고 아주 인간적인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컨닝한 학생을 상당히 감정적으로 대하는 내 모습에 내심 놀랐을 것이다. 내가 감정적으로 반응한 것은 결국 내가 학생들에게 한 높은 기대가 무너지고 학생들과 쌓았던 인간적 신뢰가 금이 갔기때문이다. 이건 분명 미국인들에게는 낯선 행동 양식이다.
❚교수님이 나에게 화를 냈다
좀처럼 화내지 않는 미국인 교수들도 가끔은 ‘아차!’하는 날도 있다. 박사과정 2년차 무렵, 개인별 연구 주제와 관련하여 교수와 개별 면담을 해야 하는 날이었다. 늘 주저리 주저리 말하기를 좋아하시는 나이 드신 여자 교수님은 빡빡하게 잡힌 지도 학생들과 미팅 시간은 잘 맞추지 못하시고 애초에 계획한 것 보다 자꾸만 뒤로뒤로 밀리게 되었다. 여러 명의 학생들이 그 교수님 사무실 앞에서 줄을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직장이 있는 어른 학생이다 보니 어긋나기 시작하는 스케줄에 마음이 다소 불편해 보였다.
나 또한 그 대학교 캠퍼스에서 얼른 미팅을 끝내고 한 시간 거리에 위치한 우리 아이들 학교에 들러서 두 아이를 픽업해야 했었다. 그런데 약속한 시간보다 많이 지체가 되어 버렸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아이들을 픽업해야하는 급한 상황을 설명하고 오늘 미팅 대신 이메일로 내용을 주고받으면 안 되냐고 여쭈었다. 그런데 갑자기 교수님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이곳은 프로들의 세계인데, 그렇게 자신의 개인적인 상황을 들먹이는 것은 실례라고 했다.
❚Yes, Ma’am
나는 순간 당황했다. 내 잘못도 아니고 원래 약속한 시간보다 훨씬 지나 내 차례가 된 것은 분명 그 교수님의 잘못이라는 생각에 억울하기 까지 했다. 하지만 내가 ‘을’이고 그분이 ‘갑’이니 억울해도 참을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나는 곧바로 “Yes, Ma’am”하면서 경어에 해당하는 대답을 했고 이내 공손한 태도를 갖추었다. 계획한 시간을 훌쩍 지나 면담은 끝이 났고 나는 보통보다 한 시간 정도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아이들을 픽업할 수 있었다.
❚화내지 않고 쿨하게 대응해야 진정 프로다
아마 그날 저녁 그 교수님도 속으로는 조금 후회하셨을 것 같다. 대학원은 성인 학습자를 대상으로 한 교육기관이다. 그날 교수님은 교수와 성인 학습자의 공식적인 미팅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감정 조절을 실패한 것에 대해 스스로 자책했으리라 생각이 든다. 물론 나도 그런 공적인 자리에 나의 개인적인 문제를 들먹인 건 분명 프로다운 태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 저녁 한 시간 집으로 운전해오는 내내 타지에서 당한 봉변이라 뭔가 더 서러움이 북받쳐왔다. 손주까지 본 그 나이 드신 여교수님은 자기 딸이 어디 가서 엄마라는 이유로 오늘과 같은 설움을 받으면 기분이 어떨지 한번 당하게 하고 싶은 심술까지 들었다.
아무튼 ‘갑’이 아닌 ‘을’이기에 나는 교수의 짜증을 한마디 변명도 못 하고 고스란히 인내했어야 했다. 씁쓸하긴 했지만, 나는 그날 그 교수의 짜증에 감정적으로 맞대응하지 않고 쿨하게 대응했다. 그 덕분에 그 교수에게 미안한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나는 그날 그 교수를 감정적으로 이긴 셈이다. 비록 우리 아이들은 그날 영문도 모른 채 그날 학교에 덩그라니 둘이 남아 나를 기다려야 했지만, 나는 그날 프로답게 대응하는 내 모습에 그나마 위안을 얻었다.
❚캠브리지대 교수님의 인생 조언
지난 크리스마스 무렵, 내가 가르치던 중3 졸업반 학생들과 캠브리지대 교수님을 줌으로 화상 미팅을 했다. 이 일에 관해선 아래 링크된 글을 보면 된다. 그 교수님은 줌 미팅 끝자락에 좌절을 이기는 법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Don’t take it personally (감정적으로 사태를 받아들이지 말라).”
누구의 지적 질이나 나쁜 결과에 대해 너무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말씀이셨다. 그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가 선택했던 방법이 틀렸을 뿐이지 ‘나’라는 사람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감정을 앞세우지 말고 쿨하게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좀 더 다른 방향에서 문제를 접근해서 새로운 방법을 시도 해보라고 하셨다. 그러면 더 나은 결과를 얻게 된다고 하셨다.
감정의 연결 고리가 참 섬세하고 촘촘한 한국 문화에서 그분의 조언을 적용하기란 쉽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중학교 학생들에게 화라는 감정 없이 대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지만, 나는 좀 더 프로다운 정신을 기르려고 애쓰는 중이다. 오늘 하루도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며 무사히 잘 보냈다. 감사하게도. 내일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