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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숙경 May 20. 2022

꺾인 선

꺾인 선, 즉 각진 선은 두 힘의 억누름으로 생겨납니다. 두 힘은 직선의 끝과 중간 부분에서 교차하며 작용해서 선분 두 개를 만들죠. 이것이 각진 선의 가장 단순한 모습입니다. 각진 선은 다음 그림과 같이 두 힘이 한번 충돌한 후 그 작용이 고정된 것입니다. 



이 단순한 작용 하나가 직선과 각진 선의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두 개의 선분을 갖는다는 것은 직선에서 느낄 수 없는 면의 감각을 예보하니까요. 칸딘스키 말마따나 각진 선에는 이미 무언가 평면적인 요소가 스며들어 있습니다. 마치 면이 막 생겨나려는 찰나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칸딘스키는 각진 선들 간의 차이는 다음 두 가지에 의하여 조절된다고 봤습니다. 첫째는 무엇보다 각도의 차이인데요. 기하학에서 각의 전형을 예각(45°), 직각(90°), 둔각(135°)이라고 정의하듯 칸딘스키도 이 각에 따라 예각의 선, 직각의 선, 둔각의 선이라고 분류합니다. 여기에 속하지 못한 각의 선은 자유로운 각의 선이라고 부릅니다. 둘째는 절단된 선의 길이입니다. 선분의 길이에 따라 울림도 변하니까요. 


각의 전형은 예각, 직각, 둔각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칸딘스키는 이 각의 전형에 따라 꺾인 선을 분류했습니다. 여기까지는 기하학과 칸딘스키의 관점이 같습니다. 그러나 기하학에서는 각의 수치가 모든 것을 결정하지만 칸딘스키의 각은 성향과 역할 그리고 울림이 중요합니다. 각의 세 가지 타입을 칸딘스키는 어떻게 해석했을까요? 


“세 가지 각의 전형 가운데 가장 객관적인 각은 직각이다. 따라서 가장 차디찬 각이기도 하다. 직각의 수는 단 네 개이고, 사각형의 평면을 완벽하게 네 부분으로 나눈다. 

예각은 가장 긴장된 각이지만 가장 따뜻한 각이기도 하다. 예각은 기초 평면을 균등하게 여덟 개로 나눌 수 있다. 

직각을 넘어서면 둔각이 생긴다. 이 둔각에는 면을 장악하려는 충동이 있지만 이내 저지당한다. 둔각이 면 전체를 균등하게 분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둔각은 자신의 두 배까지 평면에 표기되고 나머지 90°는 그대로 남겨진다.”

 

이를 기반으로 칸딘스키는 세 각의 울림과 표현력의 차이를 설명합니다. 예각의 예리함은 능동적인 활동을, 직각의 냉철함은 자제력을, 둔각의 허약함은 수동적인 무력감을 나타낸다는 겁니다. 이는 각이 뾰족할수록 공격성, 찌르는 듯한 성질, 따뜻함 등의 긴장이 더해지고 각이 무디어질수록 약화된다는 뜻입니다. 


예각에서 직각으로, 직각이 둔각으로 각을 점차 넓혀 가는 각의 비약은 꺾인 선이 직선으로 가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앞서 수평선은 차가움을 수직선은 따뜻함을 의미하며 파랑, 빨강과 평행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에 준하여 각진 선의 여정에 색을 입혀 봅니다. 


칸딘스키는 예각을 노랑이라고 했습니다. 예각의 뾰족함과 능동적인 성질이 노랑이 갖고 있는 에너지, 즉 활달한 운동성과 평행을 이루는 겁니다. 이 예각의 뾰족함이 점차 무디어져 직각에 이르면 노랑의 각은 빨강이 됩니다. 직각의 차고 따뜻함 그리고 편편함이 사각형의 빨강과 닮았다는 것이죠. 


이어서 직각이 수평선을 향하여 더 기울어지면 둔각이 생기는데, 칸딘스키는 둔각을 파랑의 전형이라고 했어요. 그 이유를 찾자면 둔각은 원을 목적으로 하는 각이기 때문입니다. 둔각은 원을 향해 가고 있는, 구부러지는 과정에 있는 각인 것이죠. 둔각의 수동성, 다시 말해서 긴장이 거의 소멸되어 버린 상태가 파랑을 불러옵니다. 파랑은 하늘의 색입니다. 우리를 무한의 세계로 안내하는 색이죠. 


이와 더불어 칸딘스키가 관심을 둔 것은 60°의 각입니다. 이는 90°의 직각과 45°의 예각 사이에 있는 각으로 정삼각형의 각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각은 삼각형과 소통하는 각인 거죠. 그렇다면 직각은 사각형의 각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벌써 눈치챘겠지만 둔각은 원의 도형이 됩니다. 이렇듯 각진 선에서 생성된 면은 칸딘스키에게 새로운 도식을 안겨줍니다. 


그것은 선-면-색채의 삼각관계입니다. 예각의 선 ⇄ 정삼각형 ⇄ 노랑, 직각의 선 ⇄ 정사각형 ⇄ 빨강, 둔각의 선 ⇄ 원 ⇄ 파랑, 이 도식에서 두 개의 화살표는 서로의 내적인 교류를 의미하며 고유성과 울림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죠.  


칸딘스키의 이러한 분석은 스스로에게도 실험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향해 어떤 미지의 법칙에 직면하여 아직 해결되지 않은 모호함을 난해한 말로 늘어놓고 있는 꼴일지도 모른다고 말했으니까요. 그러나 그에게는 원동력과 같은 확실한 신념이 있었던 겁니다. 그는 모든 요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유기체적인 연관성을 입증하고 싶었으니까요. 모두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한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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