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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숙경 May 24. 2022

지그재그와 휘어짐

각진 선의 두 선분에 다른 선들이 더해지면 복잡해지기 시작합니다. 여러 힘의 밀침이 생겨서 감내해야 하는 힘이 두 개가 아니라 그보다 더 많아 보이는 겁니다. 그런데 이를 잘 살펴보면 다수의 힘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 개의 힘이 교대로 잇달아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죠.  


칸딘스키는 직각 상태로, 똑같은 길이로, 수 차례 잘린 선을 각이 많은 선의 전형이라고 봤습니다. 갖가지 모습을 띤 여러 가지 각을 보유한 선은 이 전형의 파생 또는 변형인 것입니다. 그는 이 변형에 대하여 두 가지 설정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첫째는 각의 조합입니다. 예각, 직각, 둔각, 자유로운 각 등 모든 각들의 연출입니다. 둘째는 길이가 다른 선들의 만남입니다. 


그러므로 각이 많은 선을 달리 말하면 각기 다른 부분들의 연속체입니다. 즉 둔각의 선, 예각의 선, 동일한 각의 반복, 길이의 다름 등등의 개체들이 연결된 총합이라는 말이죠. 


복합적인 각의 자유로운 선 


이러한 선을 우리는 지그재그 선이라고 부릅니다. 뾰족한 각의 선은 높이를 가리켜 수직적인 성질을 반영하고, 둔각의 선은 수평선의 성향을 보입니다. 그러나 이 모두는 직선이라는 본성을 무시할 수 없답니다. 직선의 무한한 운동성, 앞을 향해 뻗어 나가려는 성질의 지배 아래에 있는 것이죠. 


그러나 둔각이 형성되면서 유난히 힘 하나가 증가하게 되면 분위기는 달라집니다. 이렇게 되면 선은 직선의 본성보다 원의 충동을 앞세우게 됩니다. 둔각의 선은 곡선과 원하고 친하거든요. 이들은 외적인 것뿐만 아니라 내적인 특성까지 서로 닮은 사이입니다. 


곡선은 어떻게 생길까요? 직선에 두 개의 힘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한쪽이 다른 쪽의 힘보다 우월한 강도로 계속 억누르면 곡선이 생깁니다. 칸딘스키는 이때의 곡선을 단순한 곡선, 곧 곡선의 기본 유형이라고 했습니다. 또 직선의 측면을 누르면 직선에서 벗어나 곡선이 되는데 이때 눌림의 힘이 크면 클수록 직선에서 벗어나는 이탈의 범위도 커진다는 게 칸딘스키의 관점입니다. 당연히 긴장에도 변화도 오겠지요. 긴장은 힘의 진행 방향으로 커지다가 종국에 가서는 스스로를 폐쇄하려는 쪽으로 기울어져 원의 성향을 띠게 됩니다.


직선과 곡선의 긴장


직선의 원초적인 긴장은 확고합니다. 서로 당기듯 앞을 향해 직진하는 것이죠. 반면 곡선의 주된 긴장은 궁형의 곡선 안에 자리합니다. 곡선의 휘어짐에는 각진 선의 각보다 오히려 더 많은 힘이 실립니다. 이 힘은 공격적으로 발산하거나 대적하기 위한 힘이 아니라 자체 내에 보다 큰 인내심으로 고여 있는 힘이에요. 각진 선에서 각이 젊고 생기발랄함을 지휘했다면, 궁형의 휘어짐은 성숙하고 당당한 그리고 자의식이 강한 에너지를 품고 있다는 것이 칸딘스키의 지론인 겁니다. 


성숙과 유연성을 지닌 곡선의 완숙된 울림은 직선과의 대립이 각진 선이 아니라 곡선에 있음을 확인시켜 줍니다. 곡선의 성립은 직선의 완벽한 부재를 뜻하지요. 다시 말해서 직선과 곡선은 근본적으로 가장 대립되는 한 쌍의 선이 됩니다. 그래서 칸딘스키는 각진 선을 직선과 곡선 사이에 놓인 중간 과정처럼 관찰할 것을 주문합니다.  이 시선은 직선 – 각진 선 – 곡선 = 탄생 – 젊음 – 성숙이라는 수식으로도 설명됩니다.  


직선-각진 선-곡선 = 탄생-젊음-성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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