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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숙경 May 27. 2022

면을 향한 꿈

직선은 평면을 완벽하게 부정합니다. 직선과 면의 관계는 소원해 보입니다. 반면 곡선은 평면의 실체를 이미 갖고 있습니다. 곡선은 평면의 탄생을 대기하고 있는 듯 언제든지 면을 만들어낼 태세입니다. 만약 곡선의 양끝을 변함없이 똑같은 정도로 밀쳐 낸다면 양쪽은 서로 만나며 다시 시작점에 서게 됩니다. 이와 동시에 시작과 끝은 서로를 흡수하고, 서로의 흔적을 없애며 원을 만들어 냅니다. 


칸딘스키는 직선에게도 면을 향한 욕구가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다만 깊이 감춰져 있을 뿐이라는 거지요. 직선이 면을 희망하는 것은 자신의 본질을 더 탄탄하게 하고 스스로에게 더 집중하려는 일종의 욕구 본능과 같은 거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직선이 소유한 두 개의 힘으로는 면에 이르지 못합니다. 이것이 직선과 원의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직선이 면을 만들려면 적어도 세 개의 힘이 필요합니다. 이 말인즉 직선이 면을 만들려면 최소한 세 개의 힘이 충돌해야만 하고, 세 각과 세 꼭짓점을 갖게 되어 시작과 끝이 명확하다는 것입니다. 이 또한 곡선과의 확연한 차이점이지요. 


그래서 칸딘스키는 이들을 가리켜 한 쌍의 원천적인 대립의 면이라고 했습니다. 칸딘스키는 항상 가장 기본이 되는 전형을 찾아 명시하고 분석하는데 여기에서도 그의 탐색은 여전합니다. 그는 이 대립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합니다. 한편에서는 각진 선을 포함한 직선의 부재를, 다른 한편에서는 세 개의 각을 끼고 있는 직선을 고집한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이 둘은 대립으로 맞설 수밖에 없습니다. 


원천적으로 대립되는 한쌍의 평면


이렇듯 원과 삼각형은 대립관계에 놓입니다. 이는 앞서 언급한 선-도형-색채의 삼각관계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소환해 보면 직선-삼각형–노랑, 곡선-원–파랑입니다. 칸딘스키는 이를 통해 원천적으로 대립하는 세 쌍의 요소도 찾아내지요. 그것은 직선-곡선, 삼각형-원, 노랑–파랑입니다.


이러한 연관성은 회화의 고유한 법칙이며 추상의 질서이기도 합니다. 칸딘스키는 이러한 정리를 통하여 예술을 바라보며 실제 예술 활동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밝히고자 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예술 법칙이란 홀로 홀연히 존재하는 게 아니라 반드시 자연법칙과 동행해야 한다는 견해를 펼칩니다. 예술과 자연, 그 어느 쪽도 정신과 마음을 소유한 인간에게 소홀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이지요.  


추상 법칙은 다른 예술에서도 각각의 고유성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게 칸딘스키의 생각입니다. 조각과 건축에서는 공간 요소, 음악에서는 음향 요소, 무용에서는 운동 요소, 문학에서는 언어 요소가 제각기 자신의 고유성으로 그가 말하는 울림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죠. 오지랖이 넓은 건지 칸딘스키는 늘 여타의 예술 분야까지 자신의 관점으로 살피기를 즐겼습니다. 특히 음악에 관심이 많았지만, 건축에도 조예가 깊었어요. 


아무튼 직관적 체험을 중시하는 감정에 치우치면 자칫 궤도를 벗어나 엉뚱한 길로 빠질지도 모른다는 게 칸딘스키의 지론입니다. 정확한 분석 작업은 그런 위험을 모면하게 하는 방법 중의 하나라는 겁니다. 체계적인 연구작업으로 조형 요소의 문법과 사전이 만들어지는 게 그의 희망이었습니다. 이를 발판으로 콤포지션 이론이 정립되기를 바랐고요. 만약 예술에서의 문법이 타당하지 않다고 여긴다면 칸딘스키의 예술관이 불편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지금까지 한 이야기는 직선과 곡선의 면을 향한 여정으로 삼각형과 원에 관한 것입니다. 다음은 이들의 변형을 살필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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