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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숙경 May 16. 2022

수평선과 수직선의 파장

앞서 ‘점’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정사각형 중앙에 자리한 점은 면과 어우러져 하나의 울림을 자아낸다고 했어요. 칸딘스키는 이때 만들어진 이미지, 즉 정사각형 중앙에 점 하나가 있는 모습이 회화 표현의 원천이라고 했습니다.(그림a) 선 표현의 원천, 선적인 콤포지션의 원천, 이러한 개념도 이와 같은 경로로 생겨요. 이 점을 중심으로 수평선과 수직선을 만드는 것이지요.(그림b)


https://brunch.co.kr/@e2efb0b22da14c2/15


원천이라는 말이 너무 중복되어 복잡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점과 선에는 장식이나 변형이 없는 가장 기초적인 조형 언어임을 염두에 두어야 해요. 이를 재료 삼아 칸딘스키가 시도하는 일련의 과정은 표현, 울림, 콤포지션 등 모든 영역에서 고유성을 찾는 작업입니다. 그러므로 이 조형 언어가 일구어 내는 현상에 원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겁니다.


그림 a


그림b


수평선과 수직선은 고독하다고 말했어요. 왜냐면 이들은 반복될 수 없는 존재이니까요. 그러므로 홀로 살아가야 하고, 이들의 울림은 강해집니다. 절대로 완전히 제압될 수 없는, 또 소멸되지 않는 울림이 이들의 특징으로부터 형성되는데, 이것이 칸딘스키가 말하는 직선의 원천적인 울림이에요.


위 그림b에 대한 칸딘스키의 설명을 더 살펴보겠습니다. 정사각형의 중심을 기점으로 수평선과 수직선이 오고 가면 이 자체가 이미 선적인 구성이에요. 칸딘스키는 이를 가장 기본적인 선의 구성으로 보는 것이고요. 그러나 울림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칸딘스키는 울림의 파장을 다음과 같이 분석해 놓아요.


“이 구성은 4개의 정사각형으로 분할된 하나의 정사각형으로 도식적인 면 분할의 가장 단순한 형태이다.

긴장의 총합은 정적인 차가움의 6개 요소와 정적인 따뜻함의 6개 요소 = 12. … 12개의 울림은 면의 4가지 울림 + 선의 2가지 울림 = 6가지 울림으로 성립되고, 이 울림들이 상호 연결됨으로써 이 6가지 울림은 배로 늘어난다.”


https://brunch.co.kr/@e2efb0b22da14c2/18


위의 설명에서 차가움의 6개 요소와 따뜻함의 6개 요소는 정사각형이 4개라는 것에 해답이 있어요. 큰 사각형의 변이 아니라 작은 사각형의 입장에서 보면 수평선이 6개, 수직선이 6개입니다. 면의 4가지 울림도 작은 사각형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선의 2가지는 수평선과 수직선이라는 종류를 말하고요.


이것은 분명 콤포지션 이론입니다. 칸딘스키는 무엇 때문에 직선 이야기 중에 콤포지션으로 주제를 확장하는 걸까요? 그 이유는 기본 요소들이 어우러지면서 발생되는 변모를 시사하는 데에 있어요. 요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 작용에 대한 실험입니다. 기본이란 상대적인 것임을 주장하는 개념에 대한 반론으로 생각돼요.


회화가 수학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관찰과 실험을 거쳐야 하는 것인지 의구심이 듭니다. 그러나 그의 빛나는 실험 정신 덕분에 회화가 오로지 감성에 맡겨지지 않았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 역시 이러한 실험과 관찰에 대하여 섣부르게 단정 짓거나 결론을 내리지 않아요. 칸딘스키는 자신의 시도가 회화 본질을 탐구해 나가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으니까요.  


수평선이 비중심적 자유로운 선을 향하여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움직이면 수평선이 보유한 서정적인 차가움은 점점 따뜻한 쪽으로 변해갑니다. 이 과정이 지속되면 수평선은 자신의 속성을 완전히 변모시키는 상황과 마주하게 돼요. 하지만 직선의 서정성은 언제나 그대로 유지된다는 게 칸딘스키의 주장입니다. 그것은 직선의 힘이 하나이기 때문이랍니다.


힘이 하나라는 것은 저항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수평선이 움직여서 수직선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이죠. 칸딘스키가 직선의 성질은 언제나 서정성을 유지한다고 말한 것이 이러한 모습에 근거한 거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힘이 둘이면 달라지겠죠?

 

드라마틱한 긴장은 힘이 하나 더 작용할 때 일어납니다. 수평선이 점차 비중심적 직선으로 움직일 때 한 편에서 그 움직임에 수긍하지 않는 내부의 힘이 있다면 긴장은 고조될 게 뻔하죠. 결국 선은 꺾이고 맙니다.


이러한 힘의 양상에 대하여 칸딘스키는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긴장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죠. 앞서 말한 것은 힘의 교체입니다. 다른 하나는 힘의 상호 협력입니다. 전자의 결과는 꺾인 선이고 후자는 구부러진 선으로 나타납니다. 칸딘스키는 후자의 경우가 더 뜨겁고 활발하다고 표현하는데 과정상 여러 힘의 작용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아무튼 곧은 직선이 변모하는 과정은 제각기 울림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그래서 선의 묘사는 겉으로 드러난 현상뿐만 아니라 직관의 세계까지 섬세한 묘사가 가능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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