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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숙경 Jul 07. 2022

예술에도 유행이 있습니다

‘시대와 국가의 내적 분위기, 이 두 가지와 결코 무관할 수 없는 개인의 성향이 콤포지션에 나타나는 여러 경향의 기본 울림을 결정한다.’라는 칸딘스키의 말은 사회 인식이 예술을 좌우한다로 이해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그는 직접 사회운동에 나서거나 정치적이지 않았지만 진보적인 식견으로 사회를 바라볼 줄 알았습니다. 열린 사고 덕분에 추상 세계를 발견하고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겁니다. 


행여 조형요소를 논하는 이 자리에서 예술의 사회성을 이야기하는 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잘못 알고 있는 겁니다. 사회 현상과 예술은 밀접하게 얽혀 있고, 서로를 대변하며 우리들 앞에 있는 겁니다. 예술에도 유행이 있고, 이것을 허락하는 사회적인 무언의 약속이 있기 마련입니다.


칸딘스키에 따르면 유행이란 시간적 현상 외에 심오한 필연성이 있다는 겁니다. 당시 화풍을 예로 들어 설명하는데 최근 십 수년간 중심 집중적 구도가 유행하더니 다시 탈중심적 구도로 쏠리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 유행의 배후에는 평면을 희생시키거나, 평면을 주장하려는 인과관계가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평평한 평면은 입체적인 묘사로 인하여 삼차원의 공간감을 갖게 됩니다. 이와 달리 그림자 처리나 볼륨에 관심이 없고 오히려 평평함을 앞세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회회가 평면 예술임을 강조하려는 것으로 색면주의나 조형주의 등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칸딘스키는 유행 뒤에 숨어 있는 의식, 현상을 불러온 근원에 관심을 둔 것 같습니다. 사실 현대 미술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회화의 경계를 훌쩍 넘어서는 문제들로 즐비합니다. 문화와 역사는 물론이고 정치까지도 연관되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칸딘스키는 문화사와 연결 지어 미술사를 이해하라고 합니다. 그는 두 영역의 연관성을 여느 때와 같이 몇 가지로 나누고 이를 세분화하여 설명합니다. 이에 따라 세 경우가 정립됩니다. 그 내용은 ‘첫째, 예술은 시대에 종속되어 있다. 둘째, 예술은 여러 이유에서 시대에 대항하며 대립을 표출한다. 셋째, 예술은 시대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 시대의 한계를 넘어서며 미래 세계를 제시한다.’입니다. 


칸딘스키는 첫째 항에 대해서만 세분화해서 설명하는데 시대가 강하고 중심 집중적일 때 예술도 강요당함 없이 시대와 더불어 병행하는 경우가 있고, 시대는 강하지만 내적으로 분산된 경우에 예술은 약해지고 해체될 처지에 놓인다는 겁니다. 이집트 미술을 떠올리면 이 부분은 쉽게 이해되리라 생각됩니다. 정형화된 예술 법칙이 어느 때보다 확고했으니 말입니다. 하나의 제국이 흥하고 쇠할 때 미술의 규범도 함께 변화를 겪습니다. 때때로 예술은 시대의 목적에 굴복하여 스스로 자립성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칸딘스키가 이런 분류를 한 이유는 셋째 항에 있습니다. 시대로부터의 해방이 곧 추상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처음엔 무언가 규정할 수 없는 것이거나 완전히 무의미해 보이는 현상들도 억압과 해방이라는 것으로 해명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 출현한 신조형주의와 다다이즘에 대하여 칸딘스키는 호의적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수평과 수직의 선 이외에 여타의 모든 구성적 기초를 거부하겠다는 신조형주의는 순수예술에 대한 사형선고를 의미한다고 보았습니다. 참고로 신조형주의는 몬드리안 그림을 떠올리면 됩니다. 이들은 오로지 수직선과 수평선에만 몰입했고 한치의 변형도 수락하지 않았습니다. 다다이즘에 대한 칸딘스키의 평도 그리 탐탁한 시선이 아닙니다. 다다이즘은 시대의 내적인 분산을 반영하려 했지만 동시에 자신의 예술적 기반을 상실해 버린다고 했습니다. 


칸딘스키는 예술에 있어서 순수한 형태란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칸딘스키의 생각은 ‘모든 것이 다 눈에 보이고 파악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보이는 것과 파악할 수 있는 것 뒤에 보이지 않는 것과 파악될 수 없는 것이 있다.’라는 문제에 머물며 우리에게도 이 과제를 내밉니다. 그는 더 이상 외적인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현대인에게 이 시대의 구제책으로 외적인 것에서 내적인 것을 보고 들으라고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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