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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숙경 Nov 14. 2022

빨간 집

절대주의 정사각형에서 다루어야 할 또 하나의 테마는 ‘절제’이다. 말레비치는 정사각형을 평면 작용의 절제로 완성된 현대성의 결정체라고 정리한다. 이 견해를 바탕으로 말레비치는 절제가 또 하나의 가치 척도임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표명을 통하여 그는 절대주의가 조형적 측면에 국한되지 않고, 더 넓게 범위를 확장해 나아가 현대적 사고의 표준이 되기를 바란 의지를 드러낸다.   


“모든 기계와 건축 장비뿐 아니라 회화, 음악, 시와 같은 예술 창작물 모두 이 절제라는 기준의 지배를 받는다. 더욱이 후자는 세계의 환영화 된 촉각의 내적 움직임을 표현하는 체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레비치는 절제가 예술과 창작의 현대성을 평가하고 정의하는 기준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정사각형은 절대주의의 조형을 대변하는데 최적의 상태이다. 마찬가지로 절대주의의 철학을 구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상태가 정사각형이라는 게 말레비치의 논리이다. 다시 말해서 정사각형은 비대상적 감각의 첫 형태이며 동시에 사고의 절제라는 관념을 가장 잘 표현해내는 순수한 형태의 응집이라는 설명이다.  


말레비치는 절대주의가 조형세계를 넘어서 철학적 이론을 갖추고 정립되기를 원했다. 그는 항상 철학적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새로운 세계를 수립해 나아가는 데 있어서 절대주의의 임무를 증명하려는 듯 예술 외적인 영향력을 가진 또 하나의 절대주의를 구현시키려는 목표를 갖고 있었다. 이러한 조형적 구상에 정교한 철학적 기반을 부여하려는 말레비치의 열망과 노력은 몇 편의 논문으로 남아 있다.  



두 사각형, 1927.



<두 사각형>은 차분한 침묵에 싸여 있지만, 조금만 응시해도 이들이 묵묵하게 조용히 있지 않다는 걸 눈치챌 수 있다. 젊음이 지나간 사각형은 자기주장만 내세울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원숙하고 조용한 목소리가 자란다. 부딪칠 것도, 비교할 것도, 설명할 것도 없는 두 형태는 찍어낸 듯 같으며 대칭된 자리에 놓여있고, 둘의 속성은 동일해 보인다. 이들은 관계의 끈을 조성하며 서로의 존재를 지지한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쓸쓸한 공기가 안개처럼 밀려와 이들 앞을 가린다. 


1927년, <두 사각형>의 제작 연도이다. 이 시기 러시아는 격동의 세월을 보냈다. 레닌의 사망, 스탈린의 독재, 이와 맞물려 혁명적 러시아의 미술가 연합은 1922년에 결성되었다. 시대는 구체적이지 않은 예술, 모호함으로 전달력이 희미한 예술, 또 공공의 목적에 공헌하지 않는 예술을 용인할 수 없었다. 이제 예술은 사회 이념을 선전하기 위하여 그리고 집단 문맹을 해결하기 위하여 유용한 매체가 되기로 한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준비 태세를 갖춘 것이다. 


이로써 인간의 의식을 고양하고 고차원의 깨달음이 현대사회에 공헌할 수 있다는 추상주의의 믿음은 스탈린 치하에서 폐기될 수밖에 없었다. 추상화가 칸딘스키와 가보는 러시아를 떠났지만 조국에 남은 말레비치의 위상은 점점 쪼그라들고 결국 구상 표현으로 회귀하도록 압박받게 된다. 이러한 말레비치의 처지가 <두 사각형>에 담겨 있다. 



빨간 집, 1932.



빨강은 노랑처럼 무턱대고 확장해 나아가는 색이 아니다. 그렇다고 자신 안에 무겁게 침잠하는 색도 아니다. 빨강은 자신의 의지가 또렷한 색으로 자기주장에 진심이다. 말레비치의 생의 말년에 그려진 <빨간 집>은 고즈넉한 가운데 묵묵하게 서 있다. 두툼하게 가로지르는 수평선은 집이 부유하도록 또는 고정되도록 조절한다. 반면 수평선은 파도의 거품을 싣고 집을 향해 달려온다. 푸른 톤의 그러데이션이 집을 덮칠 수 있다는 경고를 보내지만 집은 그리해도 좋다고 무심함으로 답한다.  


철 지난 해변, 왁자지껄한 흥분 또는 열정이 지나가면 비로소 드러나는 것이 있다. 그건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존재들이다. 소란이 모든 것을 송두리째 뽑아버릴 듯해도 실상은 그렇지 않다. 흔들렸던 모두는 시간이 걸려도 제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우리에게는 주어진 자리가 있고 토양이 있다. <빨간 집>은 그런 나의 영토를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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