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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숙경 Feb 13. 2024

녹색 재킷의 여자

한국학 학자인 박노자의 [비굴의 시대]. 나는 왜 이 책을 읽기도 전에 제목에 사로잡혔을까? 공정의 시대가 요원하다는 메시지가 제목에서 요동치고 있었기 때문일까? 비굴, 그것은 줏대 없이 이해득실에 따라 서슴없이 굽신거리는 그야말로 비위 맞추기에 최적화된 모습이다. 


사람들은 제 나름의 기준으로 자신이 공정하다고 여긴다. 대개가 세상과 타인의 비굴함을 거침없이 비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잣대는 정치적 이슈에서 더욱 빛난다. 좁아진 시야와 빈약한 사고는 즉물적인 인간을 방출해 낸다. 그 사이에 권력을 가진자들은 삶의 형식 즉 제도를 만들어 구체적으로 이득을 챙기고, 진실을 감춘다. 언제나 그렇듯 본질은 비켜가기 십상이다. 


<녹색재킷의 여자>는 그러한 세상을 시니컬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여자는 그림을 마주하고 있는 관객에게 무차별적으로 묻는다. "너는?" 

 

여자는 일과를 마친 듯 쿠션 위에 피곤한 몸을 기대고, 또 진종일 노동으로 지친 두 팔도 들어 올려 휴식을 청하는 모양새다. 이처럼 여자는 고단한 듯 자신의 몸무게를 최대한 내려놓았지만, 태도는 피곤과 멀다. 여자의 표정은 당당함을 넘어서 건방지기까지 하다. 여기에 세상의 유혹에서 돌아온 나른함이 혼합되어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센' 언니의 시선이 완성된다. 



키르히너Ernst Ludwig Kirchner, 녹색 재킷의 여자 Woman in a Green Jacket, 1913



경쟁이 심한 사회는 우월함이 인생의 절체절명인 것처럼 여기게 한다. 꼴등이 있기 때문에 일등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은 사회는 불행하다. 이런 사회는 비굴함이 일등을 견인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은 누구에 비하여 우월할 필요가 없다. 사람은 이미 다양한 달란트를 나누어 가졌기 때문이다. 삶은 평탄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처절한 것만도 아니다. 삶은 우월함을 요구한 적이 없다. 오히려 삶은 나만의 방법을, 또 그대만의 방법을, 그것이 언제가 됐든 깨닫기를 바라며 그 많은 과제를 던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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