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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차 Sep 29. 2024

8월, 사건의 진행(1)

세상은 넓고, 사기꾼은 많다.

부랴부랴 고향에 도착했다.

도착하니 머리가 아팠다. 출근할 때는 퇴근하고 운동하러 갈 줄 알았는데, 언니 전화 한 통에 고향에 와있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늦은 시간에 도착해 밥을 먹고 집에 가서 쉬고 있었다.

그런데 10시가 넘어도 언니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언니와의 전화에서 내가 몇 번을 일러두었는데. 나 내일 연차 쓰고 오늘 바로 내려가니까 내일 일정 비워두라고. 언니는 이 말을 듣고 정말 다음날만 비워둔 거다.

나는 연차까지 쓰고 언니의 문제를 함께 해결해 주러 왔는데 당사자는 집에 들어오지도 않는다니. 답답하고 원망스러웠다. 한편으로는 언니가 영영 들어오지 않을까 무섭기도 했다. 대부 업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당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카톡도 안되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고향까지 내려간 것도 피곤한데 걱정이 되기 시작하자 불안해서 잠을 한숨도 못 잤다. 무엇보다 나는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서울로 돌아가고 싶었는데, 당사자가 안 들어오니 조급했다.

언니는 밤이 늦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도어록 소리가 들리고 언니의 기척이 느껴지고 나서야 잠에 들 수 있었다.



다음날이 되었다.

나는 한시라도 빨리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언니 방문을 열었다.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문을 잠근 것이다. 방문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었다.

자고 있는 건지, 깼는데 나오지 않는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땐 언니가 내 앞에서만 겨우 입을 열었다. 부모님도 이미 상황을 아셨지만, 마치 언니와 나만의 비밀인 것처럼 이야기를 이어나가야 했다. 언니가 주인공인 트루먼쇼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나는 혼자서 언니의 문제를 취조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버거웠다.


'엄마 아빠 나갔어. 나랑 카페 가자'

나는 카톡을 보냈다. 언니는 그제야 방문을 열고 나왔다.

그날 언니가 잠을 제대로 잤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잠을 한숨도 못 자게 해 두고, 본인은 푹 잤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기분이 나쁘고. 못 잤다면 그것대로 애잔한 마음이 들 것 같다.


상황은 상황이고, 나는 당장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언니를 데리고 카페에 갔다. 카페에 가서 돈을 빌린 곳을 공책에 순서대로 적었다.

돈을 빌린 업체의 이름, 빌린 날짜, 빌린 돈, 갚기로 한 돈을 리스트업 했다.

적다 보니 이상한 점이 있었다. 대부업체라고 하기에는 뭔가 엉성했다. 오로지 연락을 카카오톡으로만 주고받은 곳도 있었다. 그마저도 언니가 차단해 둬서 연락을 할 방법이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사실 그들도 불법 업체 혹은 개인이라는 점.


법적으로 받을 수 있는 최대 이자는 20%이다. 그들은 그 이상을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 불법이다. 모두 50만 원 이하의 소액 대출이었는데 이자가 100%인 곳도 있었다. 정말 어이가 없다.


‘언니의 무엇을 담보로 돈을 빌려줬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언니는 가진 재산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소득을 확인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도대체 뭘 보고 돈을 빌려준 것일까.


그들이 담보로 잡은 것은 가족, 지인들의 전화번호였다. 어떤 곳은 네이버 주소록을 통째로 넘기라고 한 곳도 있었다. ‘전화번호를 팔겠다, 인터넷에 뿌리겠다’ 하는 협박을 하는 것이다. 또 각서와 민증을 들고 찍은 사진 전송을 요구한 곳도 있었다. 나중에는 이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해 부모님에게 협박 카톡을 보내오기도 했다. 각서는 법적 효력이 없는, 언니가 손으로 그들의 말을 받아 쓴 것들 뿐이었다.

예능 '크라임씬'의 한 장면 같은 각서와, 사진.

삐뚤 빼 둘한 언니의 손글씨와 사진 속 순진 무구한 표정을 보자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 앞으로 언니의 인생, 그를 책임져야 할 내가 서글퍼져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들은 언니와 같은 대상을 기가 막히게 고르는 듯했다. '추심'이라는 단어로 사람을 협박하고, 때로는 욕으로 때로는 차갑게 연락을 해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빌린 사람으로 하여금 겁을 줘서 처음 빌린 돈보다 많은 돈을 계속해서 뜯어내는 수법이었다. 언니는 협박 카톡이나 전화에 겁을 잔뜩 먹은 상태였다.

그래서 대신 소통을 해주는 '중개인'에게 돈을 주었다고 했다. 중개인은 그들과 대신 소통해 빚 갚는 날짜를 협의한다거나, 금액을 조정하는 일을 해주는 거라고 했다. 세상에...!. 나는 그런 '중개인'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세상은 넓고 사기꾼은 다양하구나' 새삼 느꼈다.

언니가 경찰서에 이들을 신고하러 갔을 때는, 신고가 불가능하다는 답을 받았다고 한다. 이들은 철저히 비대면으로 본인의 신원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찰은 그냥 차단을 하라고. 그들도 불법이기 때문에 절대 대면으로 추심할 일은 없을 거라고. 또 이 수법으로 몇 억을 뜯긴 사람도 있다고 말해주며 원금만 갚고 휴대폰 번호를 바꿀 것을 권고했다.

참고로 6시 넘어서하는 추심은 불법이다. 혹여나 9-6 이후에 추심을 당하고 계시다면 경찰에 신고하시라.


어쨌든 당시에 나는 이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이자를 포함한 돈을 갚아야 하는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돈을 다 줄 필요가 없었다. 그때는 그들이 어떤 정보를 알고 있는지 잘 몰랐기 때문에 무서워서 돈을 주었던 것 같다.

입금할 계좌를 물어보면 잘 알려주지 않았다 갚을 계좌를 찾으려 언니의 휴대폰을 있는 대로 뒤졌다. 세상에 돈 갚는 게 이렇게 힘들다니. 지금 생각해 보면 이상하지만, 사건의 한가운데에 있을 때는 그 생각을 할 정신이 없었다. 계좌 이체를 하려 하니 계좌가 신고당한 곳도 있었다. 카톡으로 욕만 해대고 돈을 아예 받지 않는 곳도 있었다. 아마 대포통장을 구하지 못해서 그런 거겠지. 돈을 갚았다는 증빙도 '채무 해결되었습니다' 하는 카톡 하나뿐이었다. 심지어 하루가 늦었다며 돈을 더 요구하는 곳도 있었다.





일이 끝나고 어제 왜 늦게 들어왔느냐 물었다.

“무서워서”

정말 의외의 대답이었다.

언니는 집 앞 계단에 앉아서 가족들이 잘 때까지 기다렸다가 들어왔다고 했다. 무서워서 안 들어왔다니. 허탈하기도 하고, 내 맘을 몰라줘서 서운하기도 했다. 또 본인의 감정만 생각하는 언니가 이기적이라 느껴졌던 것 같다. 그래도 계속 대화하려고 노력했다.


이때쯤 내가 파악한 언니의 마음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외로움.

언니는 너무 외로웠다. 본인과 비슷한 사람을 쉽게 찾아볼 수 없어 제대로 된 관계를 맺지 못했다. 언니 주변엔 언제고 돈을 노리는 사기꾼들이 가득했다. 또한 가족들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다. 수년간 홀로 사람들 주변을 배회하며 외로웠을 것이다.


둘째, 아빠에 대한 무서움

서울에서 언니랑 전화할 때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아빠가 나를 버릴 것 같다'는 말. 혹은 '아빠가 너무 무서워서 말하지 못하겠다.'는 말들.

아빠는 불같은 성격이었다. 가끔 화를 내면 심하게 말씀하기도 하셨다.

“너 그런 식으로 살 거면 네 방을 없애고 강아지 방으로 만든다”라고 하신 적이 있단다. 우리 집은 강아지를 키워본 적도, 실제로 아빠는 그럴 생각도 없을 텐데 언니는 그 말을 믿었다. 그 말에 겁을 잔뜩 먹었다.

어렸을부터 아빠의 욕심을 만족시키지 못한 언니는 늘 혼나야 했고, 그 두려움은 언니의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셋째. 엄마가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언니눈에도 엄마가 너무 연약해 보였나 보다. '이 일을 말하면 엄마가 쓰러질 것 같다'라는 말을 종종 했다. 그런 엄마한테 그간의 일들을 말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약한 엄마가 결국은 깨져버려 본인을 떠날 거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언니는 이 일을 부모님께 말하지 못하고, 잠 못 드는 날들을 보냈겠지.

나한테는 말하기 쉬웠을까? 어쨌든 나에게라도 입을 열어 다행이라 여겼다.

나에게 말한 건 불행일까 다행일까.

어째서 내가 이런 날벼락을 맞게 되었을까.


아무튼 나는 우리 집의 경찰이 되어 언니를 취조했다. 나는 취조라고 생각했지만, 언니는 나에게 경계를 서서히 풀어가는 듯했다. 그리고 한참을 망설이다 말 못 한 것이 있다며 ‘비밀’을 털어놓듯이 입을 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혈압이 올라 쓰러질 뻔했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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