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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차 Oct 06. 2024

8월, 사건의 진행(2)

등잔밑이 진짜 어둡다

“나 사실 신천지야”

언니는 말하면서 본인도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속으로는 정말 놀랐지만 티 내지 않으려 애썼다. 언제부터였는지, 거기서 누가 돈을 강요하지는 않았는지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다. 신천지 유튜브 조회수수가 높은 것을 보며 '신천지가 세상에 이렇게 많나?'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우리 언니라니.


“거기 가서는 뭐 하는데?”

“그냥 예배드리고, 사람들 만나고 하는 거지”


"거기에 돈 많이 쓰고 그러는 거 아니지?"

"절대 아니지. 돈은 안 낸다"


언니는 조금은 쑥스러운 듯 이야기했다. 거짓말인지 진짜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신천지가 외로운 사람들을 겨냥한다더니. 그 일이 내 바로 근처에서 일어나고 있었는데 전혀 몰랐다니. 등잔밑이 참 어둡다.


우리 집안은 무교이다. 굳이 따지자면 절을 구경하러 종종 다녔으므로 불교라고 할 수도 있겠다. 때문에 ’ 예배‘라는 단어는 나에게 참으로 생소했다. 더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우선은 오늘 이 일을 마무리한데 집중하고 싶었다.

나는 언니와의 마음의 거리가 상당히 먼 채로 살았다. 그래서 나는 평생 이렇게 사나 보다 했다. 언니와 친하지 않은 사람으로. 그런데 언니는 달랐다. 내가 잠깐 잘해주니 바로 속내를 보였다. 언니가 나에게 마음을 여는데는 채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순진한 언니를 보니 마음이 이상했다.




이런 순진한 태도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사기를 당했을까. 그들에겐 얼마나 쉬운 상대였을까. 가슴이 답답했다. 손 내밀곳 없이 얼마나 오래 살아왔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며 이유 모를 구토감이 들기도 했다.  언니의 몸이 왜 그렇게 말랐는지. 그동안 왜 그렇게 날 선 짜증의 말들을 뱉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서울에선 우울증 치료를 받으며 가족을 원망했었다.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무척이나 이기적으로 느껴졌다. 그 생각의 중심에는 언니와 엄마가 있었다. 때문에 언니와 엄마를 무시하고 살 것이라 다짐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불이 나서 타들어가는 집을 내 두 눈으로 보니 무시하기 어려웠다.

내 원망의 대상을 끝내 이해하게 되는구나.  

내가 결국은 그들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슬펐다. 그게 꼭 내 삶의 몫인 것만 같아서.




아무튼 연락이 닿는 업체에는 돈을 주고 집으로 덜아왔다. 마음이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이럴 때 사람이 참 필요하다. 혼자 있으니 끝없이 불안해져서 아빠에게 커피를 마시러 나가자고 했다. 아빠가 커피를 둘이 마시러 간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카페에서도 아빠와 나는 언니 이야기를 했다.

나는 돈을 갚은 것으로 일을 해결했다고 생각했지만, 아빠는 그렇지 않았다.


"분명히 다른 일이 더 있을 거다. 걔는 파도파도 미궁이다"

아빠는 언니를 불신하고 있었다.

언니는 지인과 주식투자 하는데 돈을 쓴다고 했다. 하지만, 그 지인의 계좌로 하고 있어 본인은 돈 만 주고 있다고. 아빠는 이 말을 듣고 그 지인을 찾아 나섰다. 누구인지, 어디서 일하는 사람인지.

언니는 한 미용실에서 일하는 친구라고 말했고, 아빠는 그 미용실을 찾아갔다.

하지만 그 미용실에 언니가 말한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경찰서에 그 지인을 신고하러 간 날의 이야기를 들었다. 언니는 아빠와 함께 있을 때는 경찰 앞에서 입을 꾹 닫았다고 한다. 아빠가 자리를 비켜줬을 때야 경찰과 긴 대화를 나누었다고. 그런 모습을 보아 아빠는 언니가 분명 숨기고 있는 것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또 계속되는 언니의 거짓말에 언니의 말을 믿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렇지만 나는 언니를 믿고 싶었다. 적어도 나에게만은 솔직했기를 믿고 싶었다.

나는 언니에게 여러 번 물었다. 돈 관련된 문제가 또 있느냐고. 언니는 질겁하며 여러 번 아니라는 대답을 했다. 나는 그 말을 믿었고, 일이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냥 그러고 싶었던 것 같다.




집으로 돌아와 다 같이 저녁식사를 했다.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하는 식사였다.

그동안 우울증 치료를 핑계로 고향에 잘 가지 않았다. 물론 부모님은 그 사실을 몰랐다. 나는 그때까지 한 번도 힘든 기색 한 적이 없었다. 부모님은 내가 내려와서 밥 한 끼 제대로 못 먹고 갈까 봐 내심 걱정한 눈치였다.

그때는 어느 정도 일이 해결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오래간만에 맛있는 식사할 준비를 했다.

밥을 먹으면서 내가 오래간만에 같이 운동을 가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한순간에 분위기가 확 돌아섰다. 가족 모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했다.


하지만 식사를 마쳐갈 때 미묘하게 언니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게 보였다.

돈 문제가 또 있느냐고 내가 재차 물었다. 언니는 울먹이며 말을 못 하겠다고 했다.

혼자힘으로 해결하려 했지만 일이 커지기만 했다고. 그래서 말을 못 하겠다고 재차 아이처럼 울먹였다.


나는 다시 오늘 갚은 돈 말고 또 빌린 돈이 있느냐고 물었다.

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시 집안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내가 언니 문제 해결하려고 서울에서 퇴근도 못하고 내려왔잖아. 나 없을 때는 엄마 아빠한테 말하기 더 어렵잖아 지금 그냥 말해”

“ 문제가 혼자 생각하면 커지기만 하는데, 털어놓고 나면 시원할 수도 있어 “

“오전에 돈 갚은 것도 언니 혼자 생각할 때는 큰 일이었지만, 털어놓고 나니까 훨씬 가벼워졌잖아”


나는 끊임없이 언니는 설득했다. 어쩌면 설득 같은 추궁.

원래 같으면 화를 냈을 부모님도 언니가 말할 때까지 계속 기다렸다.

중간에 힘이 바닥나버린 엄마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도 힘이 없었는데, 엄마가 너무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것 같아 부러웠다. 또 엄마의 그런 선택 때문에 내가 계속 언니 앞에 앉아 그 긴 침묵을 견뎌야 함이 원망스러웠다.

나는 계속 달래면서 물었고, 아빠는 조금 몰아붙이듯이 물어봤다. 속절없이 시간만 계속해서 흘러갔다.


한 시간 여가 지났을 까. 내가 느끼기엔 천년 같은 시간이 지나서야 언니는 드디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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