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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차 Sep 22. 2024

8월, 사건의 시작(2)

대부업체에서 연락이 왔다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OO 대부입니다."

전화를 받고 화들짝 놀라 회사에서 의자를 밀며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네? 대부 업체라고요?"

큰 소리를 내는 바람에, 주변 동료들의 이목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일부 동료들은 이를 보이스 피싱이라고 생각해 웃기도 했다.

나는 수 만 가지 생각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지난번에 아빠에게 연락했던 사람과 같은 사람일까?

진짜 대부업체인가? 아니면 보이스 피싱일까?

언니가 돈을 빌린 건가?

왜 나한테 전화한 거지?


황급히 자리를 빠져나와 두근거리는 맘을 부여잡았다. 아무래도 보이스 피싱은 아닐 것 같았다. 전화를 받는 사람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차분했다. 수화기 너머로 "OO대부입니다." 하는 소리도 어렴풋이 들려왔다.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언니에게 카톡을 보냈지만 읽지 않았다.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속이 까맣게 타들어갔다. 나는 살면서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려본 적이 없어 이 상황이 더욱 무섭게 느껴졌다.

대부업체라는 게 뭐지? 이렇게 쉽게 돈을 빌려주는 곳인가. 언니가 대부업체에 담보로 넘겼을 것 들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도 같은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아빠도 언니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언니가 누구와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 와중에 연락도 되지 않고 들어오지도 않고 있다. 답답한 시간이 흘렀다.




일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온몸에 피가 너무 빨리 돌았다. 너무 불안해 심장이 두근거렸다. 침착하게 사고를 하기 어려웠다. 연락 안 되는 언니가 밉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했다.

그러고 한창 앉아있는데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왜?" 언니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어디서 물어봐야 진실을 알 수 있을까. 말문이 턱 막혔다. 자칫 언니의 심기를 거슬렀다간 이 문제의 진상을 영영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나는 최대한 차분한 톤으로 물었다.


"언니. 나 OO대부에서 전화가 왔는데, 언니가 진짜 빌린 돈이야?"

언니는 처음엔 말하기를 꺼려하는 듯했다. 언니를 설득하기 위해 내가 어느 정도의 돈은 갚아줄 테니 문제를 말하기만 해달라고 애원했다. 이때쯤엔 내가 도대체 왜 이렇게 저 자세로 언니를 대해야만 하는지 몰랐다.

갑자기 구토감이 몰려왔다. 내가 돈도 갚아주고, 일도 해결해주려 하는데 이렇게 '을'의 태도를 취해야 하다니. 내가 이 정도로 언니에게 정이 있었던가?



하지만 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언니가 돈을 빌렸단다. 그것도 대부업체 8곳에서. TV에서 나오는 장면들이 재생되며 너무 두려웠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했다. 언니의 말을 믿을 수 없었지만, 믿어야 했다. 언니의 말이 아니면 이 사건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언니는 이 사실을 부모님께 일주일 정도 숨겼다. 그 쯤 우리 가족의 신뢰는 박살 나있었다. 언니는 아빠가 무서워서 말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추측건대 그때 언니는 믿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세상에 혼자 살고 있었을 거다. 

아니 근데 돈이 부족해서 부모님의 명의를 빌려 휴대폰까지 개통해 주었다고 했었는데,

대부업체에서 돈을 또 빌렸다니. 이해가 되질 않았다.

언니가 돈이 크게 필요한가? 갚을 카드 값이 있었나?

언니의 휴대폰은 구매한 지 4년이 넘어 액정에 보라색 번인 현상이 있었다. 제대로 된 옷 한 벌 없이 목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다녔다. 먹을 것에 워낙 욕심이 없어 끼니도 제대로 먹지 않는 언니였다. 언니가 어째서 많은 돈이 필요했을까? 짐작이 가질 않았다.


나는 언니가 경계선 지능인임을 알고 있었고, 10대 초반 정도로 추측하고 있었다. 돈을 어디다 썼는지, 왜 필요했는지, 왜 빌렸는지 하는 추궁을 13살 아이에게 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래도 얼마큼 돈을 빌렸는지를 알아야지. 왜 빌렸는지도.


언제. 어디서. 어떻게. 누구와. 무엇을. 왜.

내가 추궁을 해서 알아내야만 했다. 이때쯤 언니는 부모님의 전화는 받지 않았고, 고맙게도 나에게 전화를 걸어주었기 때문에. 책임감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언니와 말하며 '당황하지 말자.' 수 없이 되뇌었다.

상대는 13살이다. 절대 겁먹게 해서는 안된다.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털어놓게 만들어야 한다.

전장에 나가는 마음으로 언니와의 통화를 이어나갔다.



통화를 하다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대부업체'라는 것이 합법이 아닌 것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냥 돈을 빌려주는 개인에 불과한 사람들 같았다. 연락처와 주소를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그런 사기꾼 집단이었다.

그들은 메시지나 전화로 상대를 위협해 돈을 받아내고 있었다. 그런 메시지나 전화가 무서웠던 언니는 중개인에게도 돈을 주었다고 한다. 대부업체와의 연락을 대신해 주는 중개인.

이 말을 듣자마자, '아! 한통속의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문제는 언니는 이런 판단이 어렵다는 것.


언니는 그들과의 연락을 무서워했다.

내가 빌린 돈의 전체 규모를 묻자 어디서 얼마를 빌렸는지 생각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내가 고향에 내려가서 같이 봐 볼까?" 하니 언니는 침묵했다. 내려오라는 긍정의 의미였다.

당시에는 이상한 정의감과, 언니에 대한 연민, 또 문제를 지금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직감에 바로 연차를 쓰고 고향에 가는 차편을 끊어 내려갔다.


내 기나긴 여름휴가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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