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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차 Sep 15. 2024

8월, 사건의 시작(1)

사기의 표적이 되기 쉬운 경계성 지능인

나는 언니와 친한 사이가 아니다. 어느 정도냐면 일 년에 딱 두 번, 서로의 생일날만 카톡을 주고받는 정도이다. 이마저도 부모님의 강요 같은 권유에 못 이겨하는 연락이다. 자매끼리 서로 생일은 챙기라는 그런 말들에 못 이긴 연락. 

 

그런데 어느 날 뜬금없이 언니에게 "잘 지내?"라는 카톡이 왔다. 언니가 내 안부를 물어보는 연락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낯선 연락이 살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로부터 사흘 정도가 지나고, 아빠에게 전화가 왔는데, 전화를 받지 못했다. 나는 평소에 전화를 잘 받는 편이 아니다. 가족의 전화는 더더욱. 사실 가족의 전화는 나에게 너무 무거웠다. 가족으로부터 오는 연락의 안건은 두 가지중 하나였다. 하나는 가족의 대소사를 챙기라는 말. 또 다른 하나는 원망의 말.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고, 부모님 댁을 방문하지 않는 것이 죽을죄인 양 나를 탓하는 연락. 가족에게서 오는 연락은 이 두 가지 카테고리를 절대 넘어서지 않았다. 그래서 부모님의 전화가 울릴 때 가만히 전화를 보고 있을 때가 많았다. 그 전화가 너무 무겁게 느껴져 속이 메슥거릴 때도 있었다. 변명을 하자면 받지 않는 내 마음도 편한 건 아니었다. 받지 않는 것은 받지 않는 대로, 받으면 받는 대로 마음이 불편했다. 


그날도 전화를 받지 않아 부재중이 찍혀있었다. 다시 전화를 걸자 아빠가 대뜸 화를 냈다. 너 지금 집이 어떤 상황인지 알고 있냐고. 너네 언니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아냐고. 전화를 그렇게 안 받으면 어떻게 하냐고. 이번엔 두 가지 카테고리를 합친 연락이구나. 나는 내 일만으로 벅찼다. 집안일에 신경 쓸 에너지가 없었다. 연락을 받으니 아주 무거운 물 폭탄을 맞은 것 같았다. 온몸이 무거워지면서 힘이 쭉 빠졌다. 



언니는 살면서 사기를 꽤 당했다. 최근까지는 사기로 인해 통장 개설을 할 수 없는 상태이기도 했다. 당연히 금전적인 손해도 꽤 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속지 않을 일이었는데, 언니는 곧 잘 속아 넘어갔다. 물론 일반적인 사람도 작정하고 속이는 사기꾼에게는 당하지 못한다. 언니가 경계선 지능인임을 감안하면 언니에겐 그런 유혹이 더욱 많았으리라. 언니가 사기를 당하고 오면 엄마는 곧 쓰러질 사람처럼 굴었다. 나의 엄마는 몇 만 원에도 벌벌 떠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언니가 입힌 금전적 손해에 치명타를 입었다. 멀리서 보는 나조차도 엄마가 진짜 쓰러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나와 나이차이도 있고, 오래전부터 따로 살아 내가 다 알진 못하지만 대충 전해 들은 것만 해도 네다섯 번은 넘는 사기를 당한 것 같다. 상담을 받으며 언니가 경계선 지능인임을 알았을 때 비로소 그동안 왜 그런 사기꾼의 꾐에 넘어갔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사기꾼들은 영악하다. 언니 같은 대상을 한눈에 골라낸다. 법의 테두리를 피해 사람을 이리저리 조종한다. 언니는 쉽게 그런 사람들의 표적이 되었다. 


이번엔 돈을 빌려준다는 말에 넘어가 부모님 명의로 휴대폰을 개통해주었다고 한다. 부모님이 주무실 때 몰래 휴대폰 인증을 해 사기꾼에게 그 정보를 그대로 넘겨준 것이다. 부모님이 신고하면 명의 도용으로 죄 값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 끗 차이로 언니가 가해자가 될 수도 있었다. 실제로 경계선 지능인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해, 가해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의 죄를 대신 받는 일도 생긴다는 것이다. 경계선 지능인도 병원의 진단에 따라 미성년과 같은 법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 적어도 선천적으로 부족한 판단 능력으로 본인이 하지 않은 죄 값을 치르는 일은 없길 바랐기 때문이다. 


사기꾼이 빌려준 돈은 부모님이 물어야 할 기기값과 위약금과 비교하면 미미했다. 그들은 수수료 명목으로 많은 돈을 떼어갔다. 언니의 손에 쥐어지는 돈은 기기값 보다도 적었다. 당연히 아빠는 화가 잔뜩 난 상태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부모님은 그들 명의의 휴대폰을 누군가 개통했다는 사실을 거의 바로 알아차렸다. 바로 다음날 휴대폰 대리점을 방문해 휴대폰을 해지하셨다. 자칫 그대로 두면, 휴대폰 소액 결제나 인앱 결제로 금전적인 손해가 더 발생할 가능성이 있었다. 더 큰 피해를 방지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부모님이 물어야 할 돈은 최신 휴대폰 기기 값 두대와, 통신사 위약금이었다. 한 사람당 적어도 200만 원 어쩌면 그 이상의 손해를 봤을 것이다.


아빠는 이 일의 원인을 파악하려 했다. 언니에게 돈을 빌려서 어디에 쓰려고 했는지 추궁했다. 아빠의 추궁은 언니를 얼게 만들었다. 오랜 침묵 끝에 언니는 지인과 공동투자를 명목으로 돈을 빌렸다고 말했다. 언니는 지인의 계좌로 투자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직접 투자하는 게 아니라 보여줄 수는 없다고 덧 붙였다. 아빠는  같이 투자한다는 그 지인이 사기꾼이라 생각하셨다. 며칠간 그 지인을 수소문해서 찾다가 지친 아버지는 언니와 함께 경찰서를 방문했다. 답답한 마음에 경찰서를 방문했지만 정작 어떤 신고를 해야 할지 몰랐다. 그때쯤 아빠와 언니는 한참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을 거다. 신고해야 할 사람이 부모님 명의로 휴대폰을 개통해 준 언니일 수도 있고, 개통해 주면 돈을 주겠다는 사람일 수 도있고, 언니가 말하는 투자를 함께한 지인일 수 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언니는 입을 열지 않았다.  경찰서에서 의미 없는 두 시간 여의 시간을 보내고 언니와 아빠는 돌아왔다. 


나중에서야 언니는 투자를 함께하는 지인이 있다는 말이 거짓이었다고 했다. 정말 언니의 거짓말일까...? 누군가 언니의 입을 빌려 말하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아직도 진실여부를 알지 못한다. 





내가 아빠의 전화를 받았을 때 이런 중요한 일이 집에 일어나고 있는데, 무관심한 나를 탓하는 말을 들어야 했다. 이런 일들이 과연 나에게 중요한 일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 삶 살기도 힘든데... 

전화를 받으면 문제 해결에 내가 나서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까지 그래왔다. 글을 읽는 것, 머리는 쓰는 것은 모두 내 몫이었다. 나 말고는 모두가 문맹인 것처럼 굴었다. 나는 그게 버거웠다. 중학생 때부터 엄마의 연말정산을 도왔다. 컴퓨터를 써야 하는 일은 거의 내가 다 했다. 서울에 올라오고도 마음의 부채가 계속해서 있었다. 그래서 머리를 조금이라도 써야 하는 일이 있으면 가족들은 나에게 의지했다. 그 무게가 나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언니가 경계성 지능인이라는 것을 알고 난 이후 마음의 부담이 더욱 커졌다. 언젠가는 언니의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다시 우울에 빠뜨리기도 했다. 그 막막함에 일주일간 술에 기대 잠에 들기도 했다. 


일주일 후 아빠가 가족 단톡방에 카톡 캡처 사진을 하나 올렸다. 누군가 아빠에게 언니를 아냐고 묻는 카톡이었다. 그리고는 바로 저급한 욕과 함께 돈을 갚으라는 내용. 언니는 단순 보이스 피싱이라고 말했다.  명의 도용 과정에서 정보 유출이 있었다는 것이다. 불안한 가족들은 모두 휴대폰을 초기화했다. 물론 초기화와 큰 관련은 없지만, 불편한 마음을 안심시키는 행위였으리라. 

카톡을 보낸 사람을 신고하고, 일은 일단락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카톡은 앞으로 일어날 모든 사건의 시작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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