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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Sep 05. 2023

단상

주제 불안

우연히 보게 된 사진 한 장이 있었다. 일본의 한적한 마을이었는데 평범한 주택들 사이로 관음상이 비췄다. 문제는 이질적인 사이즈감. 합성사진인가 싶은 이상한 크기에 사진을 한참이나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동상의 정체는 센다이라는 도시에 있는 100미터짜리 대관음상. 그것은 너무나도 매력적인 미끼였고, 그리 멀지 않은 시간 뒤에 나를 백의관음 발가락 밑에 서게 만들었다.

도쿄에서 야간버스를 타고 센다이로 향했다. 도쿄보다 동쪽으로는 처음 가보는 것이었다. 밤새 달린 버스는 일출과 함께 센다이 역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렌터카를 빌리고 목적지로 가기 전에 잠시 벚꽃을 구경하기로 했다. 운이 좋게 벚꽃이 아주 만개했던 때였다. 원래의 목적은 아니었기에 대충 검색하고 별 기대 없이 찾아간 곳이었는데, 말도 안 되게 아름다웠다. 곧게 뻗은 철길이 놓여있고 그 양옆으로 벚꽃이 만발해 있었다. 그뿐이라면 그냥 흔한 벚꽃길이었겠지만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었다. 시선을 조금만 올리면 완만하게 누워있는 산이 보이고, 그 산의 머리엔 털어내지 못한 흔적이 덮어져 있었다. 만년설이었다. 센다이에서 목적은 관음상 하나뿐이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은 거 같아서 신이 났다. 덕분에 생각보다 더 오래 그곳에서 머물러 있었다.

여운에 젖은 채, 관음상으로 향하던 시간은 해가 질 무렵이었다. 목적지가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멀리서부터 그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주변에 큰 건물들이 없어 확연한 존재감이 드러났다. 다가갈수록 위압감은 커지고 박력이 느껴졌다. 고개를 수직에 가깝게 쳐올려야 겨우 끝이 보이는 관음상은 노을빛을 감고 자애로운 표정으로 서있었다. 자신을 보기 위해 바다 건너 이국에서 날아온 나에게 건넨 미소. 목이 아픈 것도 의식하지 못한 채로 한참을 바라봤다. 해가 완전히 저물 때까지 마음껏 즐겼다. 충분한 보상이었다.


나의 모든 감정은 7살 이전에 완성되었다. 그보다도 이전일 수 있지만, 기억의 시작이 그때쯤이니 일단은 7살이라 정해두었다. 지금이나 10년 전이나 30년 전이나 마찬가지이다. 새롭게 느끼는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농도의 변화는 있을 수 있으나, 종류는 변함이 없다.

엄마손을 잡고 운전면허 학원을 따라갔었다. 요즘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였다. 알루미늄 깡통처럼 가벼운 금속소리를 내는 가건물이었다. 날이 추웠던 때라 드럼통에 불을 지펴두어 기다리는 사람들의 몸을 녹였다. 나 역시 불 옆에서 주행연습을 하러 간 엄마를 기다렸다. 똑같이 생긴 차들이 엉켜서 움직이면 엄마는 내 세상에서 사라졌다. 모르는 어른들이 옆에서 말을 걸었다. 몇몇은 얼굴을 자주 봤던 사람들이라 엄마가 미리 부탁을 해놨을 것이다. 그들의 질문에 하나씩 답하며 따듯한 우유를 마시고 있으면, 장작이 타닥타닥 소릴내고 불똥이 올라간다. 그렇게 하늘을 바라보다 차가운 공기 사이로 익숙한 향이 느껴지면 안도감에 웃음을 지었다.


똑똑하다. 상상력이 풍부하다. 예민하다. 감정에 취약하다. 주관이 뚜렷하기에 타인을 잘 읽는다. 그만큼 객관적이고, 타인을 신경 쓰지 않기도 한다. 몰두하지 않으려 하고, 쉽게 함몰된다. 사고방식이 고정된 유동성을 지닌다. 아주 단순하게 이루어진다.

나라는 사람은 그러하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 또한 억지로 적은 내용일 뿐이다. 표현되는 동시에 머릿속에선 거센 반발들이 떠오른다.


걷다가 돌멩이가 발에 채인다. 걷어 차인 만큼 굴러가다 멈춘다. 한때는 커다란 바위였고, 돌산의 일부였다. 폭우와 폭포를 견디지 못하고 떨어져 나왔다. 원시인들의 손에 들려 던져지던 시절도 있으며, 공룡의 앞다리에 눌려 바스라지기도 했다. 화산 속에서 용암으로 존재하기도 했고, 사막을 뒤덮은 모래알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순환하는 대양의 해류를 타고 돌아다니기도 했으며, 멋들어진 일본식 정원에서 호수를 흉내 내며 보낸 시간도 있다. 짧은 시간에 여러 이미지들이 내 상상을 스쳐가지만 그냥 그렇게 사그라든다. 어차피 답은 없고 필요도 없다. 그저 발에 채인 돌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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