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로 열 주고받기
중고 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에는 ‘매너온도’ 시스템이 있다. 이 시스템은 거래를 진행한 상대방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거나, 채팅 답장을 빠르게 하는 등 바람직한 활동을 하면 온도가 올라가고, 반대로 부정적으로 평가받을 만한 활동을 하면 온도가 내려가는 식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당근 이용자들이 온도가 높은 사람들과 거래하는 것을 선호하는 현상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당근에서 높은 온도는 친절과 배려의 증명서나 다름 아니다.
당근에서 친절과 배려를 온도로 측정하듯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온도로 측정할 수 있다면 나는 꼭 하나쯤은 고열에 시달리다시피 하는 관계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앓는 열병처럼, 그 관계만 생각하면 머리가 띵해질 정도의 사람을 원한다. 그렇게까지 뜨거워지려면 시간을 오래 들여야 할 것이다. 오래 끓여 구석구석 다 뜨끈해져서 시간이 흘러도 오래오래 여전히 뜨거운 수프처럼. 관계도 그렇다.
관계를 덥히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고, 종류마다 그 온도를 올리는 정도도 다를 것이다. 심지어는 같은 방법이라도 사람마다 와닿는 온도가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누군가와 무언가를 나누어 가질 때 그 관계가 더 돈독해진다는 것에는 많은 사람이 동의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그만큼 보편적인 온도를 높일 수 있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나누어야 하는가? 물질적인 것―이를테면 커플 아이템―을 함께 갖는 것도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겠지만, 그런 것은 이미 많이들 알고 있고, 실천하고 있을 방식이라 이 글에서 새삼스럽게 소개하기는 민망하다. 그래서 내가 오늘 소개하고 싶은 건 ‘시’ 나누어 갖기이다.
지난해 여름, 일본에 여행을 갔다가 오래된 문구점에서 먼지가 쌓인 편지지 두 세트를 샀다. 하나는 토마토와 붉은 꽃이 가득 차 있었고, 다른 하나는 초록과 하늘이 가득한 콘셉트였다. 각각 같은 디자인의 편지지 몇 장과, 다른 디자인의 편지지 몇 장, 엽서와 작은 카드 편지지를 포함하고 있었다. 그중 토마토가 그려진 엽서를 어떤 친구에게 주고 싶었는데, 왠지 욕심이 생겨서 뒷장에 좋아하는 시를 써서 전달했다. 그때 쓴 시는 고선경 시인의 「돈이 많았으면 좋겠지」였고, 그렇게 나는 2주 동안 17명을 위해 시를 필사했다. 아주 대단한 이유가 있던 것은 아니고, 그냥 한 번 하고 나니까 마음에 가속도가 붙었다.
그 뒤로 조금이지만 답 편지를 받기도 했고, 그중에는 마찬가지로 시를 필사해준 이도 있었다. 김은지 시인의 「초여름」을 전달했던 친구에게서 답장으로 고명재 시인의 ‘능’을 받은 것이다. 시를 주고받은 지 약 1년이 지난 지금, 나에게 「능」을 준 친구 ‘윤’과 진행한 인터뷰를 여러분께 공유한다.
캉: 작년 여름에 김은지 시인의 ‘초여름’을 전달했었는데, 해당 글을 받고서 어떤 기분이 들었나? 그리고 답장을 주게 된 계기나 까닭이 있나?
윤: 일단 작년에 시 선물을 받은 게 처음이었다. 그래서 ‘시도 선물할 수 있구나, 되게 신선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계기가 돼서 나도 시를 선물할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게다가 원래 필사를 좋아하기도 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 고명재 시인의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를 읽고 있었고, 그 시집을 정말 좋게 읽어서 거기에서 시를 고르게 되었다. 당시에 시를 전하고 싶은 주변 사람들을 몇 명 추렸었다. 그리고 그중에 캉이 포함됐던 건, 소설이나 시 같은 것들을 읽게 된 계기에 모두 캉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캉: 시집에 있는 많은 글 가운데서 「능」을 고른 이유가 무엇인가?
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이유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웃음) 그래서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그 시를 다시 읽어 봤다. 그 시가 꽤 긴 편인데, 그중에 ‘언젠가-꼭-다시-같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 구절이, 지금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난 뒤 내가 애정하는 친구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해서 ‘시 나눔 후보’에 넣어뒀었다. 또, ‘시가 뭘까요’와 같은 시의 정체성을 묻는 부분도 있어서, 나에게 처음으로 시를 읽게 해준 사람에게 이 시를 전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생각해보면, 시를 읽게 해준 사람에게 주고 싶은 시가 자발적으로 읽은 첫 시집에 있다는 것도 낭만적인 것 같다.
캉: 그 이후로 다른 주변인에게도 시 선물을 했던 걸로 알고 있는데, 답장으로써의 시가 아닌 시를 선물하게 된 까닭이 있나? 그리고 그중 기억에 남는 작품이나 일화가 있다면 공유해주시길 바란다.
윤: 사실 그 이후로 ‘시 나눔 리스트’가 생겼다. 한 13명 정도? 지금 1차, 2차까지 진행했고…. 너무 자주 주면 받는 사람들의 감흥이 떨어질까 봐 요즘은 좀 자제하는 중이다. (캉: 아, 그런 것까지 고려를…!)
그런데 아까도 얘기했었지만, 어떤 시집을 선정했었는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중에 어떤 시를 누구에게 줬는지가 기억이 안 난다. 그래서 얼마 전에 지인이 ‘너 그때 나한테 「검은 닭」 줬었잖아!’라고 말했을 때는, 포커페이스하고 ‘아 맞아, 내가 「검은 닭」 줬었지?’ 하고 대답했던 적도 있다. (캉: 이거 인터뷰로 밝혀져도 되는 내용인지. / 윤: (웃음) 당연. 언니 사랑해!)
최근에는 바빠서 시를 쌓아두기만 하고 전달을 못 하고 있었다. 그 안에 캉에게 전달하려던 것도 있어서 오늘 가져왔다. 박준 시인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인데, 이 안에 ‘일기’라는 키워드가 등장한다. 그 키워드를 봤을 때 딱 캉이 떠올랐다. 캉이 일기를 매일 쓰고, 그래서 나도 그런 점을 손민수 했기 때문에. 그러고 보니 나 되게 너 손민수 많이 한다, 하하. 아무튼 그래서 그 시를 보고 네가 생각이 났다. 그리고 마지막에 ‘모든 글의 만남은 아름다워야 한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 구절을 보며 글을 쓰는 캉이 생각나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시를 주고받음으로써 ‘글의 만남’을 성사하고 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캉: 마지막으로, 최근에 읽은 글 중에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글이 있나?
윤: 최근에 시집을 읽고 있는데, 그게 김은지 시인의 『여름 외투』다. 그런데 어라? 캉이 나에게 처음으로 줬던 시가 이 시집에 수록된 「초여름」이었다. 어젯밤에 이걸 발견하고 너무 소름 끼쳤다, 하하하. 이게 이렇게 연결되다니! 아직 시집을 읽는 중이기에 특정한 글 하나를 고르지는 못할 것 같고, 조만간 시 나눔을 또 하게 된다면 이 시집 안에서 시를 고르고 싶다. 이 시집 안에서 캉에게 선물해주고 싶은 건… 시를 읽고서 캉 생각이 좀 나는 것. 예를 들어 ‘일기’라는 키워드가 나타났던 것처럼.
캉: 그럼 윤이 다른 사람에게 시를 선물해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그 시를 읽고서 그 사람이 떠오르느냐, 마느냐 하는 것인지?
윤: 음… 그런데 그게 되게 한계가 있는 것 같다. (떠오르는 사람이) 굉장히 한정적이다. 일단 나는 시집을 읽고 느좋인 시들을 쭉 뽑아놓는다. 그리고 시를 전달하고 싶은 사람들 리스트도 쭉 나열해놓고. 그렇게 해두면 ‘아, 이건 진짜 얘 줘야겠다.’ 하는 것들도 있다. 그 사람이 떠오르는 키워드가 있다든가, 그 사람과 나눴던 대화의 내용이 떠오른다든가. 그럼 그 시와 그 사람을 연결해준다. 그런데 사실 안 그런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그냥 랜덤으로 돌린다. 얘는 이 시 주면 좋아할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캉: 맞다, 나도 그랬던 것 같다, 하하하. 오늘 인터뷰 협조해주셔서 감사드린다.
editor. 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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